신종플루가 남긴 것

2009년 하반기, 우리나라를 지배한 단어는 ‘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였다.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신종플루의 공포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이름을 거창하게 붙여서 그렇지, 신종플루도 사실은 우리가 평소 알고 지낸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1918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스페인독감과 같은 H1N1 타입이기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신종플루가 제2의 스페인독감이 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신종플루의 독성이 스페인독감에 비해 훨씬 약해 보이고, 타미플루라는 약이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의 감염자 대비 사망률이 1.2%라고 발표한 바 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사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3%다. 8월15일 첫 사망자가 나온 이래 지난달 28일까지 우리나라의 사망자 수는 총 117명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고위험군인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2009년 12월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소아과에서 어린이가 예방접종을 받으며 울먹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타까운 인명이 희생되긴 했지만, 신종플루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도 미쳤다. 첫 번째로 사람들이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언젠가 남자 화장실에서 잠복하며 사람들이 손을 씻는지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23명을 관찰한 결과 소변을 보고 손을 씻은 사람은 단 4명, 그나마도 물만 묻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대변을 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저들은 그 손으로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고, 그 손으로 점심 때 만두를 집어먹겠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악수할 때 손가락 한 개만 내미는 버릇이 생긴 건 그때부터다. 하지만 신종플루 유행 후부터는 용변을 본 후 손을 씻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1년이 지나도 닳지 않던 화장실 비누가 새 것으로 교체되는 감격스러운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기침과 재채기가 나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고자 하는 바이러스의 음모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향해 재채기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됐다. 좀 답답하긴 해도 신종플루에 걸린 분들이나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들, 즉 만성 질병이 있거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마스크를 써주시면 좋겠다.

두번째로 신종플루는 아플 때 쉬는 게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독감에 걸렸을 때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는 건 우리 몸이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 제발 좀 가만히 있어 달라고 몸이 요구하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몸의 외침을 따르기보단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면서 회사에 나가고, 약을 먹어가면서 일을 한다. 회사 상사도 부하 직원이 독감으로 끙끙대도 “들어가 쉬라”고 배려해 주는 대신, 아픈 걸 빌미로 일찍 가지나 않을까 감시를 해대곤 했다.

독감에 걸렸을 때 해열제를 먹는 경우 병의 회복 기간이 더 길어진다는 통계가 있다. 열 자체도 바이러스를 죽이는 효과가 있어서란다. 물론 해열제를 안 먹고 버틸 필요까진 없겠지만,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소진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은 필요하다. 신종플루 진단 후 요구되는 1주일의 격리기간이 모든 독감에 적용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개인위생과 충분한 휴식도 중요하지만, 고위험군의 경우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하다. 백신 접종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이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률보다는 훨씬 낮다는 걸 명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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