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장롱이쥬

 

 

 

대부분의 사람은 100만원이 생기면 은행에 맡긴다.

서랍에라도 넣어 뒀다간 가족 중 다른 이가 그 돈을 발견할 테고,

"이게 무슨 돈이냐?"고 따져 물을 테고,

여차저차해서 생긴 돈이라고 하면 "간만에 쇠고기 좀 먹자"고 졸라댈 거다.

남은 돈을 다시 서랍에 넣어 두면 고기 먹는 데 빠졌던 막내아들이 "왜 나는 고기를 안사주냐"고 따질 것이고,

막내만 데리고 나가자니 다른 가족들이 "그때 충분히 못먹었다"며 우르르 따라나서리라.

그러니 돈을 보존하는 데 있어 은행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하지만 모든 이가 다 은행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장은 공금 11억을 횡령한 것도 모자라

교사 채용 대가로 억대의 돈을 받았는데,

그렇게 모은 17억을 자기 집 금고에 넣어 뒀다.

은행을 제외한다면 금고만큼 안전한 곳이 없으니, 이 교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며,

그래서 그런지 검찰과 법원은 불구속 기소라는 너그러운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금고의 용량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은행에서 쓰는 가장 큰 대여금고는 높이와 폭이 각각 2.5미터 정도인데,

5만원짜리로 채운다 해도 10억원 남짓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전북 김제에 살던 이모씨는 그래서 마늘밭을 택했다.

그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처남으로부터

110억에 달하는 돈을 보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집에 보관하기 불안하고 은행에 맡기면 추적당할 것 같아" 마늘밭에 묻었단다.

하지만 그는 2억8천만원을 처남 몰래 캐내 개인용도로 쓴 뒤

처남에게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굴착기 기사를 이용해 자작극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는데,

그 돈을 전부 담을 금고를 구하기 어려웠던 건 이해가 되지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밭에 그 돈을 묻고도 잠이 왔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좀 고급스러운 곳에 돈을 숨긴다.

수술비를 현금으로 내게 한 뒤 그 돈을 탈세해 온 한 의사는 오피스텔을 얻어 거기다 돈을 숨겼고,

한 성형외과 의사는 병원 안에 비밀창고를 만들어 탈세한 돈을 보관했다.

 

 

내가 아는 한 고귀한 집안엔 장롱에 돈을 보관하는 전통이 있어 화제가 됐다.

각하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은 7억원을 여비서의 계좌에 넣어 뒀다가 들통이 났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돈은 부동산 매각대금과 집안 행사 때 들어온 축의금이며,

그 동안 안방 장롱 속에 보관해 왔단다.

장롱 속에 그런 돈이 있었으니 얼마나 든든했을까?

 

 

오랜 전통답게 그 집안의 큰형님 이상은 씨도 장롱을 이용했다.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가 내곡동 땅을 살 때 큰형으로부터 6억원을 빌렸는데,

큰형님 이상은 씨는 돈의 출처를 묻자 "장롱 속에 보관해 온 돈 중 일부"라고 대답했다.그러니까 이상은 씨는 10억원을 장롱 속에 넣고 보관해 왔으며,

그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는 방법으로 돈이 있다는 걸 위장했다.

하기야, 자전거 뒤에 돈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과연 큰형이구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상의 결과로 보아 보통 사람은 장롱에 옷을 넣어 두지만,

이 나라의 노블레스들은 장롱을 큰 걸로 장만해 거기다 돈을 넣어 둔다.

이름하여 "노블레스 장롱이쥬"인데

뭐, 자기 돈을 어디다 보관하든 그건 자유겠지만,

한 가지는 알아두자.

마늘밭과 오피스텔처럼 은행 이외의 곳에 보관되는 돈은 대부분 검은 돈이고,

장롱 브라더스의 돈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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