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수는 좋겠다

 

 

얼마 전, 서울 갈 일이 있어서 터미널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들끼리 무선으로 대선에 관한 얘기를 교환하고 있다.

“요즘 통 손님이 없어요...이게 다 경제가 안좋기 때문이죠.”

한 기사님이 넋두리를 한다.

날 태운 기사님이 답을 한다.

“저도 한참 기다리다 터미널 가는 손님 태웠어요.”

상대 기사가 말한다.

“이번 대선, 정말 잘 선택해야 해요.”

날태운기사: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잘 택해야죠.

휴대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다가 상대 기사의 다음 말이 궁금해 귀를 쫑긋했다.

그런데 막상 나온 말은 식스센스급의 반전을 내포하고 있었다.

“누가 북한하고 친한지를 봐야 해요. 북한이 어느 후보를 더 좋아하는지.”

그러면 안되는데, 나름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일텐데, 난 그만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경제가 안좋은 게 북한의 음모가 아니라면,

거기서 갑자기 튀어나온 북한 얘기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웃자 기사가 잠시 뒤를 돌아보는 것 같아 휴대폰을 보는 척 했는데,

택시에서 내린 뒤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는 동안 그 기사의 대화가 계속 생각났다.

순간 어릴 때 사라진 줄 알았던 시인의 자질이 갑자기 되살아났고,

그래서 시를 한 수 읊었다.

 

 

 

 

제목: 보수는 좋겠다

성격: 자유시, 서정시, 막시

주제: 잘먹고 잘살아라

 

보수는 좋겠다

지난 보수정권이 아무리 경제를 말아먹어도,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쳐 돈을 쓸어가도

측근들이 수십, 수백억원을 해먹어도

또 보수를 찍어주는 골수 유권자들이 있으니까

 

보수는 좋겠다

보수가 내세운 후보가 아무리 아는 게 없어도

수첩이 없으면 한 마디도 할 줄 몰라도

국가경영에 대한 일말의 철학이 없어도

단지 보수후보라는 이유로 찍어주는 유권자들이 있으니까

 

 

보수는 좋겠다

야당 후보가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몇 년을 뒤져도 먼지 하나 안나와도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도

친북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승리할 수 있으니까

 

보수는 좋겠다

젊은 애들이 점점 정치에 무관심해서

5년간 자기네 삶을 좌우할 중요한 날에

젊은 애들 태반이 투표 안하고 놀러가니까

20, 30대 투표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12월 19일 보수층의 빵빠레가 전국에 울려퍼지겠지

 

보수는 좋겠다

한국사회가 점점 고령화되니까

우리는 공주님한테서 유신의 잔재를 보지만

나이든 분들은 그녀로부터 박정희의 향수를 느낀단다

그분들이 20%가 되는 2026년이 되면

모든 선거에서 보수가 이기겠구나

 

아아 보수 우리의 보수

그 이름 찬란히 빛나리

그 보수가 지배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세계 7대 강국이 눈앞에 펼쳐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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