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이번엔 좀 바꿔야지 않을까?” 


김 노인의 말에 황 노인은 입에 넣으려던 라면을 내려놓았다. 


“바꾼다니? 대체 뭘 바꾼단 말이야?” 


 황 노인이 말할 때 라면 조각이 날아가 김 노인의 이마에 튀었지만, 황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저 위쪽에 있는 북한이 안 보이나? 걔네들이 로켓에 핵을 실어 우리나라로 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가겠어?” 


김 노인은 이마에 붙은 라면을 떼어냈다. “자네 말도 이해해. 공산화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지 않아? 곧 겨울이 오는데 정부에서 난방 보조금을 깎았다잖아.”


라면 국물을 마시던 황 노인은 젓가락으로 탁자를 찍었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당장 월북이라도 하게. 자네는 공산당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


“공산당, 공산당. 그 공산당 타령은 이제 지겨워.” 한마디도 안 하던 마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뭐라고 해도 이번만은 2번을 찍을 거야. 핵폭탄에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경향신문DB)



서기 2032년, 대한민국은 25년째 보수파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그 서막을 연 것은 2007년이었다. 연평균 4.5%의 성장률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은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경제파탄’을 노래했고, 거기에 현혹된 유권자들은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임기 내내 전국의 강바닥을 파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 5년간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쳤고,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친·인척과 측근들이 모두 감옥에 가는 등 비리 면에서는 연평균 50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으니, 2012년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전 세계의 예측과는 달리 정권은 교체되지 않았다. 당시 야당 후보를 빨갱이라고 생각한 50,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열광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로켓까지 쏴 올렸으니, 보수 후보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힘들게 했던 독재자의 딸이란 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나이든 유권자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났다는 거였다. 특히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2000년만 해도 전체의 7.2%에 불과했지만, 2010년 11.3%, 2020년 14.4%에 달했고, 2030년에는 24.3%로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인구 5200만명 중 1300만명이 65세 이상인데, 투표율도 높은 데다 똘똘 뭉쳐 1번을 찍어대니, 선거는 해보나마나였다. 2012년에도 지지리 못살았던 북한은 2032년에도 망하지 않고 버티는 생존력을 보여줬는데, 그 어려운 와중에도 핵개발을 성공시켰고, 선거 때마다 한 번씩 로켓을 쏴줌으로써 2번으로 갈지도 모를 표를 결집시켜 줬다.



정치를 개판으로 해도 어차피 선거에선 이길 터였기에 보수정권은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기 바빴다. 경제는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됐고, 국민소득은 다시 1만달러를 돌파했다(아래쪽으로). 돈이 없어지자 보수파는 주 지지층인 노년층에 칼날을 들이댔다.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해마다 삭감했고, 수도권 미화사업의 일환으로 65세 이상은 서울과 경기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32년 선거는 진보파에게 25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자신들을 홀대하는 보수정권에 대한 노년층의 반발이 확산된 것.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노년층의 절반 이상이 2번에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층도 적극적인 투표의사를 나타냈다. 여론조사는 20년 만에 박빙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북한의 로켓이 발사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보수파는 이런 성명을 냈다. “20년 전 좌파정권이 퍼준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직도 도발을 해대고 있습니다.” 김 노인도, 마 노인도 1번으로 선회했다. 선거가 끝났다. 1000만표 차이, 보수파의 승리였다.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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