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씨, 재필이랑 꼭 결혼하셔야 합니다.”

민자는 노민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인가? 게다가 평소 재필씨와 친한 것도 아닌데, 날 언제 봤다고 저런 말을 하지? 민자는 좀 말려 달라는 뜻으로 재필이를 쳐다봤지만, 술이 약한 재필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새 술 한잔을 들이킨 노민이 말을 이었다.

민자씨 곁에서 얼쩡거리는 그 근박이, 그놈 진짜 나쁜 놈입니다. 그놈이 계속 민자씨를 괴롭힌다면 제가 가서 해코지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원래 민자는 재필이와 사귀었었다. 조금 답답하긴 해도 비교적 정직하고 나름의 꿈도 있는 건실한 젊은이었기에 이 남자와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근박이가 나타났다. 근박은 재필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었으니, 그가 100억대 부자라는 거였다. 아버지가 조폭 출신이란 소문이 도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민자는 100억원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민자는 결국 재필을 버리고 근박과 사귀었다. 1년은 민자에게 힘든 시기였다. 근박은 민자에게 나쁜 남자였으니까.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주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집에 데려다 준 적도 거의 없었다. 민자와 만났을 땐 밥값을 내는 건 고사하고 한강변에서 카페 사업을 하겠다면서 오히려 민자에게 돈을 빌려갔다. 그러면서도 1억짜리 스포츠카를 샀고, 조폭을 연상케 하는 친구들에겐 돈을 팍팍 썼다. 결정적으로 근박은 바람둥이었다. 결국 민자는 근박과 헤어지고 말았다.

 

 

민자의 이별 소식을 듣자마자 재필이가 달려왔다. 자신은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기회를 준다면 정말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민자의 마음이 움직이려는 찰나 근박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다. “너한테 왜 그랬는지 몰라. 이제 난 더 이상 네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게 기회를 줘.” 민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기 싫은 욕심에서 비롯된 거였지만, 민자는 다시금 고민했다.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타워팰리스에 사는 근박과 두루마기에 도포를 걸치고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재필 사이에서. 50대 후반인 민자의 어머니와 60대를 넘긴 아버님은 그런 민자를 타박했다. “네가 가난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고민할 게 뭐가 있니? 무조건 근박이랑 결혼해야지.”

 

 

재필과 마주한 자리에서 민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친구로 지내자.”

재필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왜재? 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민자가 말했다. “노민씨 때문이야. 난 그런 사람이 자기 친구라는 게 용납이 안돼.”

재필은 억울했다. “노민이는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아. 그때도 우연히 만나 합석한 거잖아? 앞으로는 아는 체도 하지 않을게.”

민자는 단호했다. “그래도 안돼. 나중에 결혼해서 노민씨가 우리집에 찾아올 생각을 하면 현기증이 나.”

결국 민자는 재필과 헤어지고 근박과 결혼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재필이가 민자와 헤어진 건 노민이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