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Sign)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국방장관 호프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연락 받았소. 벌써 3년이 된 거요?”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라도 인사를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 국방장관 김보수는 호프만에게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호프만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도장만 찍어주면 되는 건가요?”

“네, 늘 그렇듯이...”

머리를 조아리는 김보수를 보면서 호프만은 6년 전 일을 떠올렸다.

 

 

2051년, 부임 2년째를 맞은 호프만에게 비서가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한국 사내는 한국 국방장관 김극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전시작전권을 3년 연장해 달라고 찾아왔다고 했다.

업무 인수인계 도중 얼핏 들은 적이 있지만, 그땐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안갔었기에

한국 장관을 만난 김에 설명을 부탁했다.

“네, 그러니까 1950년 북한국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때는 우리나라 군사력이 약해서 부득이하게 전작권을 넘겼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미국의 보살핌이 필요해서....“

호프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지금부터 100년 전 일이잖소? 왜 한국은 아직도 전작권을 가져가려 하지 않는 거요?”

그도 그럴 것이, 세계 7위인 100조원의 국방비를 쓰는 한국이

연간 5천억원의 국방비를 쓰는 북한을 핑계대면서 전작권을 미국이 가져달라는 게

호프만으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안갔다.

“그것이 말입니다...”

김극우 국방장관은 머리의 땀을 닦았다.

그의 말은 이랬다.

“원래는 2051년에 전작권을 저희가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사정거리가 100미터인 불화살을 잔뜩 구입한 정황이 포착됐지 않습니까?

아직도 북한괴뢰집단은 남침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3년은 더 전작권을 가져야 합니다.

아, 물론 3년간 저희가 준비를 열심히 해서 3년 후에는 꼭 전작권을 가져가겠습니다.“

 

 

호프만은 전작권 관련 일지를 살폈다.

지난 40년간의 전작권 연기 서류와 그 사유가 적혀 있었다.

-2012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공격 등 북한의 도발이 날로 심해짐. 대통령이 지하벙커에서 집무를 봐야 하는 상황임.

-2015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날로 심해짐. 게다가 대통령이 여성이라 전쟁이 났을 때 대처가 어려움.

-2018년: 북한이 러시아에서 장갑차 세 대를 샀음. 게다가 정권교체기라 정국이 불안할 수 있음.

-2021년; 4대강 공사 때 지어놓은 보들이 연이어 붕괴됨. 북한의 도발에 의한 것으로 추측됨. 무서움.

-2024년; 북한이 내려보낸 간첩이 붙잡힘. 간첩의 말에 의하면 2-3년 내 남침을 할 것이라고 함. 국민들, 특히 여당의원들이 공황상태임.

........

-2048년: 북한 김정은 위원장 입원. 욱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이라 미국의 보호가 필요.

서류를 확인한 호프만은 머리가 더 어지러워 옴을 느꼈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 한국이 1인당 GDP가 1천달러가 안되는 북한이 두렵다니.

설사 두렵다 해도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전시작전권을 자기가 먼저 갖겠다고 우겨야할텐데,

안 가져가겠다고 이 난리를 치다니 한국은 대체 어떻게 된 나라일까?

 

 

고개를 절래절래 젓던 호프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요. 6.25 때 쓰던 탱크를 아직도 쓰고 있는 북한이 무섭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이걸 3년마다 재계약하나요? 어차피 안가져가갈 거, 한 20년 후로 미뤄버리죠.“

호프만은 정말 이해가 안갔다.

무슨 전세계약도 아니고, 일국의 장관이 도장 하나 받으려고 매번 미국까지 비행기 타고 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김극우는 다시금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게 말입니다, 저희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도 10년, 20년짜리로 하면 편한데, 국민여론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10년으로 하면 영원히 안가져간다는 느낌을 주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호프만은 답답한 나머지 책상을 탁 쳤다.

“지금 그런 식으로 연기한 게 벌써 60년이 넘었잖소! 자존심이 있는 나라가 그런 짓을 합니까?”

김극우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면목이 없습니다. 한미간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봐서 좀 사인해 주십시오.”

 

결국

호프만은 그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로부터 3년 뒤엔 다른 남자가 국방장관이라고 찾아왔고,

또다시 3년 후 김보수 국방장관이 똑같은 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사인을 하려는데 사인 말미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3년간 한국도 열심히 준비를 해서 3년 뒤에는 아무런 이의없이 전작권을 가져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 구절을 읽자 갑자가 웃음이 나왔다.

“왜,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김보수의 말에 호프만은 정색하고 답변했다.

“아니, 눈에 뭐가 좀 들어가서. 그나저나 당신, 영어는 정말 잘하는군. 어디서 배웠소?”

김보수가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아 네, 전 미국 땅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원정출산을 해서 저를 낳으신 뒤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유학을 보내줘서, 대학까지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 미국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호프만의 큰 눈이 더 커졌다.

“아니, 미국 국적자가 그 나라 국방장관을 할 수도 있습니까?”

김보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능력만 있으면 됐지, 글로벌 시대에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허허허.”

사인한 서류를 받아들고 돌아서는 김보수에게 호프만은 혀를 끌끌 찼다.

“What a guy without the guts! Is Korea a real nation?"(배알도 없는 놈! 한국은 제대로 된 국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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