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당뇨병

 

 

당뇨병이라는 병이 있다.

세포가 포도당을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쓰려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있어야 하는데,

인슐린이 부족하다보니 포도당이 세포에서 이용되는 대신 혈액 속에 머물러 있고,

혈당이 높아지니 소변으로 포도당이 나가고,

그러다보니 신장도 망가지는 등 여러 합병증이 당뇨병으로 인해 초래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슐린을 분비해야 할 췌장 세포가 파괴되는 게 1형 당뇨병이고

살이 쪄서 인슐린에 대해 저항성이 생겨버리는 2형 당뇨병이다.

당뇨병이 왜 생기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유전성도 어느 정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당뇨병 (1)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탓에

나 역시 혹시 당뇨병에 걸리지 않을까 무지 걱정하기도 했는데,

진화를 생존에 필요한 것은 선택이 되고 해로운 것은 배제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당뇨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삶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유전자이며,

진화의 과정에서 걸러졌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당뇨병같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유전자는 도대체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일까?

 

샤론 모알렘이라는 의학자가 쓴 <아파야 산다>를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자.

인간의 몸은 냉동에 취약한데,

이유인즉슨 혈액 속의 수분이 얼어붙으면 얼음결정에 의해 혈액세포가 찢어지고 모세혈관이 터지기 때문이다.

추울 때 수도관이 터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얼음결정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몸의 수분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우리가 추울 때 소변을 자주 보는 것도 그런 방어기제의 일환이다.

둘째, 그냥 물보다 설탕물을 얼리는 게 더 어려운 데서 알 수 있듯이,

혈액 속에 포도당이 높으면 얼음결정이 생기기 어렵다.

지금부터 13000년 전, 지구에는 빙하기가 찾아왔다.

우리나라도 추웠겠지만 우리보다 더 북쪽에 있는 지역 사람들은 장난이 아니게 추웠을 거다.

영하 40, 50도가 됐을 때 많은 이들이 혈액 속에 생긴 얼음결정 때문에 죽어갔겠지만,

혈액 속의 혈당이 높은, 즉 당뇨병 환자들은 그런 추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게다가 추운 지역 사람들에게 있는 갈색지방은 포도당을 바로 열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데,

당뇨병 환자들의 높은 혈당은 갈색지방에 의해 열려 바뀌었으니 그들의 건강에 치명적이지 않았다.

 

21세기,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다.

북극곰이 엉덩이를 붙일 얼음이 부족하다고도 하고,

해수면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애기도 들린다.

이런 판국이니, 빙하기에나 적합한 당뇨병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높아진 혈당은 신장을 비롯해 눈과 신경 등 우리 몸 전체에 두루 악영향을 끼친다.

인슐린 요법의 발달로 혈당관리만 잘 하면 자기 수명껏 살 수 있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때에 맞춰서 주사를 맞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온난화 시대에 당뇨병은, 천덕꾸러기 그 자체다.

 

남북이 비슷한 전력으로 신경전을 벌이던 냉전 시대,

국정원-그전에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로 불렸다-은 국가안보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정권안보를 위해 무리한 일을 벌이기도 했지만,

워낙 중요한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다보니 국정원장의 지위는 하늘높은 줄 몰랐다.

중앙정보부장은 권력 면에서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으며,

전두환 당시 안기부장이던 장세동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전력이 쪼그라들고,

전쟁을 일으키기는커녕 자기 나라 국민들도 굶기기 일쑤인 나라가 되자

국정원의 존재감은 빛이 바랐다.

 

제일 두려운 건 할 일이 없어진 거였다.

무작정 데려다가 일단 족치고, 고문도 해가면서 자백을 받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정예요원들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에 찬성과 반대를 누른다든지,

야당후보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일에서 무슨 보람을 느끼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국정원은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고 있다.

먼지가 쌓인 정상회담 회의록을 시시때때로 유포해 분란을 일으키고,

공무원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사건 등은

자신들의 적성을 살린 기발한 전략이긴 하지만,

일이 없으면 조직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대공업무보다는 정권의 안보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본연의 업무에는 소홀해지기 마련,

김정일이 죽었다는 사실을 경북 영주에서 3대째 농사를 짓는

황씨 할아버지보다 더 늦게 안다든지,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지 안쏘는지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북한이 다시 과거의 전력을 회복해 우리와 맞짱을 뜰 그날을 오매불망 기다려 보지만,

그것보다는 빙하기가 오는 게 더 빨라 보인다.

천덕꾸러기가 돼서 자기 국민들을 괴롭히는 국정원의 모습에서

빙하기 때는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당뇨병 유전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국정원 여러분, 일이 없으면 좀 쉬세요.

자꾸 뭔가를 하려는 그 모습 때문에 우리네 삶이 더 피곤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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