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말 그림

 

 

작년 언제쯤, 천안 백화점 식당가에서 보리밥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오더니 A4 용지를 내민다.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인지도로 봐서 그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천안에는 유명 연예인이 살지 않는데다 스타들이 천안까지 오는 일도 드물기에

나같은 사람한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싶었다.

정성스럽게 말 그림을 그려 줬더니, 붙여 놓겠단다.

솔직히 좀 뿌듯했다.

몇주가 지난 뒤 아내를 데리고 그 식당에 가면서 그때 일을 자랑했다.

이 식당이 내 사인이 붙어 있는 유일한 곳이야!”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알 듯 모를듯한 연예인들의 사인은 잔뜩 붙어 있었지만,

내 사인은 아무리 봐도 없었다.

좀 무안했고, 밥을 먹다가 결국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여기 오지 말자. 맛도 별로 없네.”

사인을 받고서도 붙여놓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기에,

그 후 식당에서 사인을 해줄 기회가 가물에 콩나듯 있었지만,

지나친 흥분을 자제한 채 말만 그리고 말았다.

   

 

지난 토요일, 지인 몇이 놀러와서 먹자골목 안의 음식점에 갔다.

음식점 이름이 기린으로 시작되는 곳이었고,

입구에 진짜로 기린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여기 매운갈비찜이 유명해요라는 지인의 말에 그러자고 했는데,

좀 맵긴 했지만 맛은 엄청났다.

알고보니 그집은 유명한 맛집이었는데,

더 고무적인 것은 그집 사장님이 날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셨단 거였다.

내게 쿨피스를 서비스로 주시면서 사인을 요구했던 것.

어제, 난 요즘 입맛이 없어진 아내를 꼬드겨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사장님은 날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그 다음 말이 감동이었다.

그때 해주신 사인, 저기다 붙여 놨어요.”

사장님이 가리킨 컴퓨터 모니터 위에는 정말 내 사인이 붙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모니터를 차고 나갈듯한 말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몰려왔다.

간만에 포식을 했다는 아내와 함께 그 집을 나오면서

시시때때로 그집에 가서 매운갈비찜을 먹자고 다짐했다.

내 사인이 붙어 있는 유일한 식당인데 내가 안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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