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검장의 욕망



검사는 외로운 자리다
.

자기 관할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검사만이 기소할 수 있는데,

매년 일어나는 범죄의 수가 장난이 아닌지라 검사는 늘 바쁘다.

워낙 시간이 없다보니 술도 폭탄주로 마시고 (빨리 취하려고)

골프도 싱글을 친다 (빨리 경기를 끝내고 일하려고).

기대수준에 비해 월급이 많지 않으니 일부긴 하지만 스폰서를 받는 검사도 있는데,

3년 전 변호사한테 샤넬백을 사달라고 조르던 여검사의 이야기는 전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혹시라도 CCTV에 찍히면 자기가 아니라고 우겨야 하고 (김학의는 지금 2년째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

승진을 위해서는 정치적 사건마다 높은 분의 의중을 헤아려야 하는 게 또 검사,

이러다보니 검사들은 그 스트레스를 지검장에게 푼다.

사전에 의하면 지방 검찰청의 우두머리, 해당 지역에 있는 검사들을 통솔하는 자리가 바로 지검장인데,

지검장 또한 검사의 일원이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일반 검사들과 달리 지검장은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고,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분도 지검장이다.

지검장의 고충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한편 써본다.





제주도는 관광객이 많은 특성상 범죄가 제법 많이 일어나는 곳,

그래서 제주지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검사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지켰다.

813일 밤, 김수창 지검장은 밀린 업무를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제주도에 온 지 벌써 8개월, 일은 끝이 없었고, 아무리 밖을 봐도 보이는 건 바다 뿐이었다.

회포를 풀기 위해 관사 옥상에 올라가 소리를 쳐봤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에 묻혀 버렸다.

내 나이 52, 아직 한창 때인데 이러고 있다니!”

갑자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관사에서 일을 봐주는 황씨였다.

지검장님, 안주무십니까? 이상한 소리가 나서 와봤습니다.”

어어..? 난 괜찮아. 들어가 봐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자 조금 짜증이 났다.

, 사면이 바다인 이곳에서 나만의 공간은 없는 것일까?’

지검장은 밖으로 나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위는 적막했고,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을 무렵, 여고생 하나가 그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는데, 잠시 후 경찰이 다가왔다.

걸렸구나 싶어 반대로 걸었지만, 경찰은 이내 지검장을 따라잡았다.

누구십니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너는 누구냐, 인류가 탄생의 순간부터 직면해 왔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피노자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골머리를 앓았는데,

법밖에 모르는 지검장이 대답을 하기엔 질문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지검장은 자기 동생 이름을 댔고,

뭐하냐는 질문에는 산책을 좀 했다고 둘러댔다.

그 자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고 사실대로 말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까 그 여고생이 지검장을 보고 비슷하다고 증언한 게 결정적이었다.

지검장은 하늘을 보며 원망했다.

경찰은 그 여고생이 새벽 한시에 뭘 하고 돌아다녔느냐를 조사할 일이지,

왜 나같은 건실한 시민을 붙잡고 난리인가?’

 

그로부터 사흘 후, 인터넷은 지검장의 이름으로 도배가 됐다.

검사 생활을 한 지 어언 20, 그에게 이런 수모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바람에 피부가 상할까봐 가지고 나온 베이비 로션도 의혹의 대상이 됐다.

지검장은 억울했다.

피의자와 성관계를 한 것도 아니고, 샤넬백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욕망을 스스로 해결하려 했을 뿐인데,

그게 이토록 큰 죄가 되는가.

내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한민국 남자가 있으면 나와 보시라.

나만의 공간이 없는 관사에 살았던 게 죄라면 죄다.”

그가 CC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했던 건 그 억울함 때문이었다.

관사에 가서 짐을 챙겨 나오면서 지검장은 생각했다.

밀실이라도 만들어 놓을 것을.’

자신도 어쩌지 못할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아침에 옷을 벗은 김수창 지검장,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