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니야?”

지난주에 쓴 ‘조선시대 체험’을 보고 친구가 보낸 문자다. 덜컥 겁이 났다.

나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잡혀가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이번 주엔 정치 말고 좀 다른 얘기를 하려 했는데, 마침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대한양돈협회가 KBS 2TV `비타민`의 삼겹살과 낭미충에 대한 방송이 잘못됐다며 지난 9월30일 KBS를 항의 방문했다.”

‘비타민’이란 프로에서 삼겹살을 덜익혀 먹으면 낭미충에 걸릴 수 있다고 했던 것이 사건의 발단, 관련 댓글을 보니 ‘양돈업체가 이기적이다, 왜 좋은 정보를 알려준 방송사를 괴롭히냐’는 쪽이 우세하다.

진실은 무엇일까?





유구조충, 혹은 갈고리촌충은 사람에서만 어른이 되어 알을 낳고, 그 알은 대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제주도에서 똥돼지를 키우던 시절, 갈고리촌충에 걸린 사람이 변을 보면 그걸 돼지가 먹었고, 변 속에 있던 알들은 유충으로 부화해 돼지 근육으로 갔다.
그런 돼지의 삼겹살을 덜익혀 먹으면 갈고리촌충의 유충이 사람 몸으로 들어가 장 속에서 몇 미터에 이르는 벌레가 된다.

갈고리촌충의 어른은 그 길이에 비해 별다른 증상을 일으키진 않지만, 어찌어찌하여 갈고리촌충의 알이 그 안에서 부화하는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십대가 방황을 잘하듯, 갈고리촌충의 유충은 우리 몸 여기저기를 오가며 증상을 일으키는데, 가장 흔히 침범하는 곳이 바로 뇌고, 어른이 돼서 갑자기 간질발작이 왔다면 갈고리촌충의 유충, 즉 낭미충을 한번쯤 의심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돼지에게 변을 먹이는 풍습은 진작 사라졌고, 이제 우리나라 돼지들은 사료를 먹으며 배를 채운다. 사람 변 속에 있는 알을 먹지 못하니 돼지가 낭미충에 걸릴 염려도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돼지를 먹고 낭미충에 걸리는 일은 1990년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삼겹살을 먹어도 낭미충 감염 우려 없다.”는 양돈업체의 주장은 진실이다. 돼지고기가 국내산이라면, 삼겹살을 조금 덜 익혀 먹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수입고기는 어떨까? 우리나라야 낭미충의 청정지대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아 낭미충의 유행지는 아직도 많다.

멕시코, 남미,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최근 조사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콩고라는 나라에선 팔리는 돼지의 40% 가량이 낭미충에 걸려 있단다. 그러니 수입 삼겹살을 먹어서 감염되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낭미충의 유행지에서 돼지를 수입하지 않고 있으며, 유구낭미충의 크기가 크고 눈에도 잘 띠므로 검역 과정에서 얼마든지 걸러낼 수 있다.






그렇다면 유구낭미충이 계속 발생하는 건 왜일까?

유구낭미충에 걸려 걸음을 잘 못걷고 두통이 있는 44세 환자의 사례가 2010년 신경외과 학술지에 실린 것처럼, 유구낭미충 환자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 대목에 주의하자.

“그는 젊은 시절 삼겹살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삼겹살은 국민의 음식이니 지금이라고 그가 삼겹살을 안먹는 건 아니겠지만, 구태여 ‘젊은 시절’을 지목한 건, 뇌증상의 원인이 젊은 시절에 있기 때문이다.
뇌로 간 유구낭미충은 증상 없이 10-20년을 버티다 죽는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건 바로 그때부터다. 그러니 해마다 한두명씩 유구낭미충 환자가 발생한다 해도 그게 얼마 전 먹은 돼지에 의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돼지에 사료만 먹이던 양돈업자들이 KBS를 항의방문한 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유구낭미충증의 뇌CT. 조그맣고 둥근 구멍들이 다 유구낭미충이다


낭미충이 방송에 나온 건 한두번이 아니다. 환자가 극히 드문데도 낭미충이 단골메뉴가 되는 이유는 뇌를 침범한다는 게 공포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리라.

광우병과 달리 낭미충에는 좋은 치료약도 있는만큼,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지만 낭미충을 걱정해서 삼겹살을 안먹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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