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새 책이 나와서 어머니한테 갖다드렸니 이런 문자를 보내신다.
“초등학교 때 그런 고민이 있었구나. 엄마가 그것도 모르고, 미안하다.”
책 앞부분에 내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고생한 이야기가 있었던 탓이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지금은 다 잊었다고 얘기하려는데,
갑자기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가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을 인물이 아니기도 했지만,
6학년 담임은 유난히 날 미워했다 (이제부터 그분을 임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
비교적 조용했던 내게 떠든다는 명목으로
교실 뒷벽에 머리를 붙이고 서있게 한 적이 여러 번이었고,
음악시간에 노래를 안 따라부르고 립싱크를 한다며 갑자기 내게 분필을 던지기도 했다.
마음이 여렸던 난 그런 일들에 쉽게 모멸감을 느꼈다.
내가 발표를 끝내자마자 “넌 참 목소리가 이상하구나”라고 했던 임선생의 말은
오랜 기간 공공장소에서 입을 열지 않게 만들었다.
음악시험을 볼 때 노래를 시작한 지 1초도 안돼서 “그만!”이라고 말한 뒤 ‘양’을 준 것은
내가 음치라는 점에서 그닥 불만은 없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미워한다고 하느냐고 할 것 같아
두 가지 사례를 더 들겠다.

1) 임선생은 뭔가를 측정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뒤 “운동장 대각선 길이를 재라”
등의 미션을 우리에게 내주셨다.
상품은 그 당시 최고 인기품목이었던 자장면을 점심식사로 사주는 것이었다.
1등을 해서 자장면을 먹는 친구들이 무지 부러웠는데,
학교 건물의 높이를 재는 미션에선 놀랍게도 내가 1등을 했다.
임선생은 내가 1등을 하자 무척 놀라더니
“이번엔 문제가 너무 쉬웠다”면서 1등에게 자장면을 주는 대신
연필 한 다스를 사와 비슷하게 맞춘 10명에게 한 자루씩 나눠줬다.
그리고는 1등에게 주려고 시킨 자장면을 자신이 먹었다.


 


2) 한번은 수학시험이 꽤 어렵게 출제됐다.
우리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던 친구가 시험 도중 “이거 다 맞추면 컴퓨터지 인간이 아니다”라고 푸념을 할 정도였는데,
다른 과목은 다 못했어도 수학만 잘했던 난 놀랍게도 33문제를 다 맞춘다.
유일한 만점이었고, 90점이 넘는 친구도 없다시피 했는데,
내가 100점을 맞았다는 사실에 임선생은 심사가 뒤틀린 나머지 애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다.
“이게 한 문제에 3점이잖아? 그런데 문항 수는 33개야.
그럼 다 맞아도 99점인 거야. 100점이 아니라고.
그래서 1점을 위한 시험을 별도로 봐야 해.“
그러면서 담임은 칠판에 1점을 위한 문제 다섯 개를 출제한다.
그 중 난 4개를 맞췄고, 하나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라 틀리고 말았다.
담임은 쾌재를 불렀고, 내 성적표의 수학점수엔 ‘99’가 적혔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는 건 그게 너무 억울해서였다.
지금이라면 1) 그전까지 33문제 가지고 이런 적은 없었지 않느냐?
2) 임선생의 논리대로라면 5문제 중 하나를 틀렸으니 99.8점이 적혀야 맞다.
이렇게 반박을 했을 테고, 그게 안된다면 교장선생에게 항의라도 했겠지만,
어린 초등학생이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쯤되면 임선생이 날 미워했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학기 초부터 대놓고 미워했으니 밉상인 얼굴 탓이 크겠지만,
다음과 같은 악연도 있었다.
어느날 임선생은 아이들 앞에서 이런 제안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일부터 아침 6시에 일어나
라디오로 뉴스를 들으세요. 그 뉴스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시험을 볼 겁니다.“
그 다음날 난 엄마한테 6시에 꼭 깨워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취지에서 7시가 훨씬 지나서 깨우셨다.
그날 난 뉴스내용 적기 시험에서 하나도 쓰지 못했고,
못쓴 사람은 나가서 매를 맞았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짝한테 가르쳐달라고 사정해 봤지만 짝은 가르쳐 주기를 꺼렸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화를 냈더니 엄마는 학교로 임선생을 찾아갔다.
다음날 임선생은 날 보면서 말했다.
“서민, 너희 어머니가 어제 학교에 오셨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6시에 일어나는 건 어렵겠다고 하시네?”
아니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뉴스 가지고 시험보는 건 그만해야겠어.”
말을 하면서 임선생은 날 노려봤다.
이게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학생들과 달리 촌지를 갖다주지 않은 게 이유였을까?


 


갑자기 4학년 담임도 생각난다 (김선생이라 부르겠다).
김선생은 나한테는 아주 무관심한 분이셨는데,
그분에게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시험을 본 결과 김모양이 반에서 1등을 했는데, 그게 뒤집혀 장모군이 1등을 해버린 것.
그럴 수 있었던 건 김모양이 약세인 과목들만 가지고 성적을 매겼기 때문인데,
김모양이 거기에 대해 항의를 했던 모양이다.
김선생은 우리가 모두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화를 냈다.
“이 과목들을 가지고 성적을 내면 김모양이 1등이고,
저 과목들을 가지고 성적을 내면 장모군이 1등인데,
자기 유리한 것만 따져서 1등을 정하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나?”
나와 관계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김선생의 말이 도무지 말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원래 석차라는 건 전 과목을 모두 합산해서 따지는 것이지,
일부만 가지고 성적을 매기는 건 말이 안되니까.
전체 1등은, 우리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듯이, 김모양이었지만,
우리 앞에서 마구 화를 낸 김모 선생은 결국 장모군을 1등으로 정했다.


종합적으로 초등학교 시절은 내게 악몽 그 자체였다.
집에서는 무서운 아버지가 계셨고, 학교에서도 외톨이였으니 말이다.
담임선생이라도 내게 좀 친절을 베풀어 줬다면 그 시절이 그리 악몽은 아니었을 테지만,
한 반 아이들은 무려 60명이나 됐고, 촌지를 바치는 애들을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을 것이다.
그건 이해한다만, 수학점수 1점을 빼앗아 간 임선생은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원망스럽다.

엊그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대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만나뵌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좋은 분들이었고-물론 피학습자가 되면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선생님들 밑에서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궁금하다. 지금 학생들은, 우리 때보다는 스승의 은혜를 훨씬 더 느끼며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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