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의 첫 장면에선 임무를 수행하던 킹스맨 요원이 막판 방심으로 죽는다.

그의 후임 자리를 놓고 몇 명의 젊은이가 테스트를 치른다.

물속에서 탈출하기,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기 등등을 거쳐 조직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지까지,

그 테스트는 하나하나가 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그런 테스트를 거친 킹스맨 요원이니 당장 실전에 투입돼도 아무 문제가 없다. 



킹스맨 요원 한 명을 뽑는데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테스트를 치른다면,

한 나라를 운영하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훨씬 더 복잡다단한 시험들을 거치는 게 맞을 것이다. 

경제와 사회, 군사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시작해 

배가 침몰하는 등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북한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테스트한 뒤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게 한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 실제로 대통령이 되실 분이 거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란 제도는 마법과도 같아,

단순한 지식을 묻는 1단계에서 탈락하셨을 분을 대통령이 되도록 해준다.

당신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라고 치자.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 된다.

1) 자기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나가 당선된다.

물론 이 과정이 쉬운 건 아니지만, 집안이 아주 좋다면,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계속 그 지역에 영향력을 미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2) 나오면 당선되는 축복의 땅이니 4년이 지난 뒤 당연히 재선이 된다.

또 4년이 흘러 3번째로 당선되고 나면 당신은 어느덧 당의 중진이 돼있다!

그쯤되면 무슨 위원장을 맡을 수 있고, 기회를 보아 당대표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당대표를 하느냐고?

당대표가 하는 일은 당이 어려울 때 천막에서 며칠 동안 자면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지역감정을 일으켜 총선승리에 기여하는 등 별다른 지식이 필요없는 것들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눈 몇 번 부릅뜨고, 

쓰잘데기 없는 것에 고집을 부리고 나면 그는 어느덧 “원칙의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각인된다.


3) 그러다 명성이 높아져 대권후보가 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머리 쓸 일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여러 기관의 검증을 견뎌내야 하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검증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걸 알지만, 

TV를 보는 국민들은 당신이 뭘 아는지 모르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선거 때 당신을 지지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결정적인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얘기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말을 해야 할 때는 짧게 하시라.

“잘 해 나가면 된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는 거 아닙니까" 같은 두루뭉술한 대답이 최선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면 굳이 대선후보간의 토론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괜히 나갔다 실수를 하느니 그 편이 지지율을 지키는 방법이니까. 

혹시 우리 편의 부정이 발각됐을 땐 “나도 피해자” "난 덕본 거 없다" 같은 말로 연막을 치자.

그러면 당신은 어느 새, 대통령에 당선돼 있을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는 ‘인류가 구현한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칭송된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자.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선고하게 만든 이들은 아테네 시민들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었고,

그의 제자 플라톤이 ‘소수의 철인이 지배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은 

우매한 다수의 존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비이성의 세계사, 정찬일 지음, 3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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