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와 감금

 

 

새정치민주연합 (이하 민주당)이 큰일을 저질렀다.

열명이 넘는 공무원들을 19시간 동안 감금한 것.

이를 두고 새누리 의원께서는 화적떼냐?”고 했는데

사전에서 화적을 찾아보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라고 돼있다.

즉 화적들은 돌아다니며 재물을 빼앗을지언정 감금은 하지 않는다는 뜻,

그런 면에서 화적떼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딴죽을 걸었지만, 난 오랜 시간 감금당했던 공무원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민주당을 옹호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닌 걸 보면

사람들이 감금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것 같다.

   

 

5년 전, 감금을 당한 적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외국에서 관련 원서를 들여와 책을 파는 분이 있는데,

성은 이씨지만 그분이 볼 수도 있으니 편의상 박사장이라고 하자.

박사장이 주로 취급하는 분야는 미생물과 기생충이다.

박사장은 어렵게 책을 사온 거라 가져온 책은 다 팔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러다보니 일일이 대학을 찾아다니며 판매를 한다.

어릴 때 친구가 없었던 탓에 거절을 잘 못했던 난

시시때때로 그분이 내미는 책을 샀다.

안사려고 하면 그가 이랬다.

기생충학자들이 기생충학 원서를 읽어야지, 누가 읽겠습니까? 좀 도와 주십시오. 애 결혼도 시켜야 하고 흑.”

그의 간절한 눈망울을 난 외면하지 못했다.

좋은 책도 있지만 읽은 건 솔직히 별로 안 되며,

오늘의 면역학” “오늘의 기생충학이란 이름의 수십권짜리 시리즈는

그저 책꽂이에 꽂힌 채 연구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책값이 싸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원서다보니 책값이 다 수십만원이라,

한번 지르고 나면 몇 달간 살림살이를 줄여야 했다.

    

2010년의 어느 날, 박사장이 전화를 했다.

오늘 천안에 올 일이 있는데 들르겠단다.

그 전화를 받을 때 난 연구실에 있었지만,

그땐 내가 유난히 돈이 없었던 터라 책을 절대 사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 어쩌죠? 제가 지금 외부에 있는데요.

: 그럼 언제쯤 오시나요. 제가 오실 때 맞춰서 갈게요.

: 글쎄요, 많이 늦을 거 같은데....

: 그래도 한번 가볼게요.

난 연구실 문을 잠그고 그 뒤부터 아예 밖에 나가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한시간쯤 뒤, 누군가가 내 방을 두드렸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만히 있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시 30분이 지났을 무렵 또 노크 소리가 났고, 이번엔 문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느낌이 딱 박사장이었다.

숨을 죽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가 조금 나다 멈췄다.

아마도 내 문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한 듯했다.

, 절대 안 나갈 거야!~’

평소 소변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감금을 당하고 나니 이상하게 소변이 마려웠고,

평소보다 몇배쯤 더 배가 고팠다.

하지만 난 나갈 수 없었다.

책값을 지불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와서 나가다 들키면 내가 뭐가 되겠는가?

한시간이 지났을 무렵

다시 전화가 울렸다. 진동으로 해놓기 다행이었다.

언제쯤 오십니까? 저 문앞에 있는데.”

난 최대한 숨을 죽인 채 말했다.

죄송해요. 오늘 못들어갈 것 같아요.”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난 한동안 바깥에 나가지 못했다.

결국 문을 열고 나간 건 오후 4시쯤,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역시 화장실이었다.

거기서 난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그 사건 뒤 그를 몇 번 더 만났고, 그가 내미는 책을 사준 적도 있지만,

그때의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연구실 문을 열 때마다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박사장과 문앞에서 마주치는 꿈을 꾸곤 한다.

감금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불과 6시간 갇혔는데도 이렇게 충격이 큰데,

19시간이나 갇혀있던 (추정컨대) 국정화 태스크포스 팀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공포감으로 몸을 뒤척여야 할까?

국정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국민의 높은 반대여론이나 교수들의 집필거부 선언이 아닌,

감금됐던 공무원들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 그 뒤 박사장은 아예 책을 청구서와 함께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역시 박사장은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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