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와 정신




새 식구가 생겼다.
우리 집의 다섯 번째 강아지인 ‘오리’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녀석이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여워 ‘오리’가 됐다.
원래 난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오리가 우리집에 온 날이 12월 9일,
대통령의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이다.
게다가 오리가 출생한 날은 10월 29일인데,
그날은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제1차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던 날이다.
그래서 난 새 식구의 이름을 ‘탄핵’이라 부르자고 했지만
아내의 완강한 반대로 거부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 말이 맞았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녀석에게 왜 ‘탄핵’이라는 굴레를 씌운단 말인가.

게다가 내가 착각한 게 있다.
난 대통령 탄핵이 되면 어느 정도 사건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개 이름에 탄핵을 붙이자고 했다)
헌재의 판단도 국민여론에 영향을 받을테니, 그것 역시 시간문제라 생각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달여 동안 박근혜-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1) 박대통령의 뻔뻔함
국회가 합의하면 물러나겠다고 할 때만 해도 혹시나 했는데
이분은 인간의 밑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게 잘못한 게 없으면 대국민 사과는 도대체 왜 한 것일까?
뻔뻔함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전두환이 초라해질 정도인데,
성형시술로 얼굴이 빵빵해지는만큼 뻔뻔함도 커지는가 싶다.


2) 핵심증인들의 거짓말
청문회와 그밖의 신문기사들에서 내가 본 것은 엄청난 양의 거짓말이었다.
“학점 부여라든가 이런 것은 교수 개인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라며
정유라에 대한 특혜를 부인했던 김경숙 전 이대학장을 비롯해서
맹연습 후 귀국해 준비된 거짓말을 읊고 떠난 조여옥 대위,
모른다로 일관한 김기춘과 우병우 등등,
가끔 궁금해진다.
이들을 상대로 거짓말 대회라도 열면 누가 1등할까?


3) 박사모 (꼭 카페에 가입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박근혜 편을 들면 박사모라 칭한다)

언제 강의를 갔다가 귀가하려는데, 청중 한 분이 차를 태워달란다.
그분과 나눈 대화.
박사모: 촛불집회 가면 일당 5만원씩 준답니다.
나: 엥? 전 못받았는데요?
박사모: 교수님이야 돈 안줘도 나올 분이니 안준 거죠.


엊그제 60대 여성이 보낸 메일의 일부다.
그때 그분이나 이분이나, 말 그대로 확신범이다.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것,
이건 사이비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992년인가 지구가 망한다며 종말론을 펴던 아이 (10대 초반 추정)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 그래, 지구가 안망하면 그때 사과할래요?
그 아이: 지구가 왜 안망해요?
나: 혹시 안망할 수도 있잖아요.
그 아이: 그런 일은 없어요.
그 아이와 박사모가 매우 닮지 않았는가?


4) 법위에 있는 최순실
난 국가기관에서 부르면 일단 쫀다.
죄가 없음에도, 단순히 참고인임에도 그랬다.
다른 일이 있어도 그들이 원하는 날짜에 나갔다.
하지만 최순실. 이영선. 윤전추. 우병우 등등을 보면
나와는 다른 인간이란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국가기관의 출석요구를 받으면
일단 안나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러다 나가는 게 유리하다 싶으면, 그때서야 나간다.
정신적 충격 어쩌고 하면서 특검의 요구에도 불응하는 최순실이
공판에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영선. 윤전추는 청문회에서 부르니 연가를 내고 안갔고,
이재만과 안봉근은 아예 잠적했다.
그러다보니 엊그제 헌재가 불렀을 때 나와준 윤전추에게 고마운 느낌이 들 정도.

내가 이상한 거였나.



종합
박근혜가 탄핵되면 모든 게 다 끝이라는 착각은 그만해야겠다.
이들의 권력은 아직 잘 작동되고 있고,
그 세력은 언젠가 있을 반격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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