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진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는데,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많이 아팠나보다.
내 몸이 아파서 우는 것, 이건 아이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육체적 고통 이외에도 아이들은 자주 운다.
과자를 땅에 떨어뜨린 게 아까워서 울고,
잘못해서 혼났다고 울고, 무서워서 운다.
간혹 억울해서 울기도 하며, 부모에게 내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우는 애도 있다.

어른이 되면 우는 이유가 좀 더 다양해지는데,
아이와 다른 점은 타인의 고통 때문에 운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는 것에 슬픔을 느끼는 건 아이들에서도 나타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구 배우자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주로 어른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건 그 친구에게 감정이입을 한 결과로,
‘내가 저 상황이면 정말 슬프겠구나’라며 역지사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어른들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비극에 울기도 한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미증유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을 생각하며 울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진도체육관을 찾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이하 박근혜)은 울지 않았다.
비극 앞에서 대통령이 꼭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 본다면 냉정을 유지한 채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더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에게 눈물이 필요한 이유는
그게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한다는 신호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해결이 시작될 수 있어서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가 짜증이 나겠지만,
그 반대라면 만사 제쳐두고 유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사태의 진정한 수습이 가능해진다

.
세월호와 관련된 대국민 담화 때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긴 했다.
하지만 그게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감정이입을 한 결과가 아니라는 건
그 후의 행보에서 드러난다.
만나달라는 유족들의 거듭된 요구를 대통령은 거부했고,
원래 약속했던 세월호특별법과 진상조사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대국민 담화 때의 눈물이 눈을 깜빡이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시중의 낭설이
사실일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고, 박근혜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가끔씩 눈물을 흘렸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뒤 2차 대국민 담화 때,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명언을 남기면서
박근혜는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들이 억울해 죽겠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눈물을 이용해 당장의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수단이었을 텐데,
이런 눈물은 전형적으로 어린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박근혜가 눈물을 보인 적이 몇 번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으로, 당시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을 맞고 총선에서 전멸할 위기였다.
그때 박근혜는 TV에 나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는데,
그 덕분에 한나라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다.
이것 역시 “나 이거 사줘!”라며 칭얼대는 어린아이의 눈물과 같은 맥락이었으니,
박근혜의 눈물은 어린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눈물이 많은 분이다.
내가 별로라고 평했던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도 우셨다니,
정말이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 같다.
내가 주목한 장면은 세월호 유족들을 만났을 때 문대통령이 보인 눈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를 했다.”1)
참사 직후에도 울지 않는 분이 있는 반면
3년이나 지난 일에 대통령이 울 수 있었던 것은 유족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호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돼야 이 눈물이 의미있는 것이 되겠지만,
정치 지도자의 눈물은 그 자체로 문제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는지라
이전 정권에서 눈의 가시같은 존재 취급을 받았던 유족들이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전혀 몰랐던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
박근혜에겐 없고 문재인에겐 있는 이 능력이
앞으로도 대통령으로 하여금 ‘어른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억울해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를 빈다.

 

1) 文대통령, 눈물 속 '세월호 진상규명-미수습자 수색' 약속, 머니투데이 20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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