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여 년 전 파블로 선생의 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생물문학이 되겠다.”

지금부터 14년 전,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책을 낸 적 있다.

책에 관한 내 흑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이 책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부분은

위에 옮긴 저 추천사인데,

이 추천사를 쓴 분이 바로 김어준 당시 딴지일보 총수였다.

김총수와의 인연은 또 있다.

2004, 난 김어준 총수가 진행하던 시사프로 CBS <김어준의 저공비행>

게스트로 들어갔다.

물론 날 뽑은 분은 그 프로의 피디였지만,

방송 게스트로서 능력이 없다시피했던 날 리드해 주고,

재미도 없는 내용에 웃어주신 김총수 덕분에

난 잘리지 않고 몇 달이나마 방송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게 고마워 그 즈음 목동에서 회전초밥을 대접한 적이 있지만,

은혜의 총량으로 따진다면 초밥을 100번쯤 사도 모자랄 것이다.

 

 

 

 

진짜 큰 빚은 그 다음이었다.

전혀 자격이 없는 두 명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난 김총수가 만든 <나꼼수>를 들으며 우울함을 달랬다.

또한 이 프로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수많은 이들을 각성시키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김총수가 겪어야 할 고초는 나같은 범인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가 탄압받을 때 내가 김총수에게 도움을 준 바는 거의 없었지만,

지금 난 박근혜 탄핵과 정권교체의 과실을 열심히 따먹고 있는 중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평생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다.

현재 김총수는 뉴스공장과 블랙하우스 등의 공중파와 팟캐스트 다스뵈이다 등

여러 프로를 진행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능력있는 방송인이었던만큼 그를 여러 프로에서 볼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좋은 일이고,

그가 그간 겪어야 했던 고초를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것 같아 더 좋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이걸 보면....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겁니다...올림픽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 혹은 기사들이 몰려나올 타이밍이다, 예언 한번 해드립니다.”

그가 <다스뵈이더> 도중 한 말이다.

누가봐도 미투운동에 대한 폄하로 보이는 이 발언에 대해 여론은 들끓었다.

김어준은 미투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고 했지 미투가 공작이라 한 적 없다.”라고 했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그런 공작을 예방해야 한다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며 반문한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문제가 있는 이유는

그게 성범죄 피해자로 하여금 미투 발언을 하기 꺼려지게 만들어서다.

안그래도 미투운동은 적시하는 자로부터 명예훼손을 당할 위험을 안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자신의 발언이 공작으로 몰려 공격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감히 입을 열겠는가?

게다가 미투를 공작에 이용당하지 않게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림픽은 물론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마저 정권 공격에 이용하는 저들을

어떻게 말리겠는가?

미투운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믿는지라, 그의 이번 발언이 아쉽다.

 

유쾌함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0년간 김총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가 창간한 딴지일보는 물론이고 그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는 죄다

유쾌함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데,

뉴스공장이 청취율뿐 아니라 수천개의 프로가 난립하는 팟캐스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것도

딱딱한 정치시사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그가 변한 부분도 있다.

바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의 차이로,

20년 전의 김총수는 마이너의 왕정도였다면

지금의 그는 손석희도 능가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다.

그가 하는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여파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난 김어준이 미투에 대해 반대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페미니즘이 지금처럼 대두되기 전에도 여성의 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니까.

이번 발언이 아쉬운 이유는 그래서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보배인 그가 이 발언으로 인해 여러 곳에서 공격받는 것도 안타깝다.

약자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만큼은 그가 자신의 위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주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