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이라니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문재인 당시 후보는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역부족’이란 그의 말에 난 전적으로 동의했다.
안철수 후보와 이정희 후보가 사퇴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기 때문이었다.
정책에서 차별화하지 못한 거야 민주당의 역량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토론회에서마저 그 말 못하는 박근혜를 압도하지 못했던 건 한스러웠다.
‘다까끼 마사오’를 부르짖은 이정희가 오히려 문재인보다 더 주목을 받았을 정도.
물론 국정원 댓글 등 선거과정에서의 부정이 있었긴 했지만,
그게 대선패배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4년간, 정치인 문재인의 존재가 돋보였던 적은 내 기억에 없다.
박근혜의 한심한 정치가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지리멸렬’로 대표되는 야당은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하게 했다.
정치인 문재인의 인기가 오르기 시작한 건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밝혀진 뒤부터였다.
탄핵과 대통령 하야를 외치다보니 그 후의 대안이 필요해진 국민들은
지난 대선 때 2위를 한 문재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오르기 시작한 지지율은 대선 때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지난 대선은 생애 처음으로
“저쪽이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 없이 투표를 한 대선이 됐다.
문재인 후보는 그렇게 문재인 대통령이 됐다.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게 아닌, 때를 잘 잡아서 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그가 잘 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한 것도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이명박이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왔다는 그의 청렴결백이야 익히 알았지만,
이번 대통령은 단지 자신만 깨끗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그가 과연 단호함이 필요한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까,
박근혜 때 고통받은 서민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여우가 돼야 하는 국제외교전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다 의문투성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난 한때나마 그를 의심했던 걸 부끄러워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만 해주면 만족한다, 라는 내 나름의 기준을
문대통령은 가뿐히 뛰어넘었다.
심지어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다.
적폐청산에는 추상같았고,
서민들을 위하는 정책은, 아직까진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가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 백미는 단연 외교였다.
사드 때문에 심기가 뒤틀린 중국의 홀대 속에서 실리를 챙기는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트럼프마저 사로잡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심지어 그렇게 북한을 욕하던 트럼프가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정은을 만난단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고,
그 상당부분은 남북관계의 개선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미국을 제쳐둔 남북관계의 진전은 정권이 바뀌면서 도루아미타불이 된 반면,
문대통령이 추진하는 그것은 향후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정착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품게 해준다.

이런 대통령이 나왔다는 게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만 같은데,
정치판에 뛰어든 게 10년밖에 안된 분이

도대체 언제 이렇게 준비를 완벽하게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니면 원래 이런 분이었나?)


이제 유일한 걱정은 암흑의 세월 동안 날 버티게 해준 5년 단임제다.
“2년만 더 참자” “이제 1년 남았다”가 지난 9년간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외웠던 주문이라면,
지금은 4년 후 다른 대통령이 온다는 게 두려워질 정도다.
이런 두려움을 준 건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땐 또 그때 걱정하면 되는 일이고,
지금은 그냥 현재를 즐기련다.
고마워요, 문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