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의 추억

 

평소 자주 가는 극성 문빠 (이하 문빠) 사이트 ‘엠팍’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문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 ‘빈 댓글’로 응수하기로 한 것이다.

빈 댓글이란 댓글을 달긴 달되, 내용을 하나도 쓰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 댓글만 20-30개 달리면 글을 쓴 이는 허탈감을 느낀다.

글의 목적은 토론을 하기 위함인데, 빈 댓글은 그런 토론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 이전에도 그곳에서 활발한 토론이 오갔던 것은 아니다.

글 내용에 대한 반박보다는,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글을 쓴 이에게 우르르 몰려가 집단린치를 가했던 게 그간의 풍경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말꼬리를 잡을지언정 내용에 대해 반박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작금의 빈 댓글 운동은 아예 일체의 대화조차 거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문빠들에 따르면 그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엠팍에 상주하는 자한당 알바를 걸러내기 위함이란다.

알바들은 댓글 수에 따라 돈을 받는데, 빈 댓글만 주르르 있으면 돈을 받지 못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하지만 ‘지난 글 보기’ 기능을 써보면 그들이 빈 댓글을 다는 대상은 지난 대선 때 문대통령을 지지한 이들이 대부분,

그러니까 문빠들은 지금 일리가 있는 비판을 한 이마저 알바로 몰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행동은 대개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문대통령 편을 들긴 들어야 하는데, 옹호할 명분이 점점 줄어들 때 지지자들은 외부와 말을 섞기보단 자기들끼리 내부결속에 힘쓴다.

‘문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이 글에 대해 ‘적극 추천합니다’ 같은 댓글이 한아름 달리는, 소위 ‘문빠들의 부흥회’가 유독 자주 열리는 것도 그들의 위기감을 보여준다.

빈댓글 운동이 다른 문빠 사이트에도 확산되고 있는 것도 그 증거,

한때 거칠 게 없었던 문빠들이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문대통령의 경제정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아서다.

적폐청산과 남북관계의 개선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클린턴의 선거구호처럼, 사람들은 먹거리 문제에 예민하다.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50%대로 추락한 것도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문빠들은 ‘이게 다 이명박근혜 때문이다’ ‘몇 년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대통령을 옹호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말에 동조하는 이는 문빠들을 제외하면 별로 없어 보인다.

초조한 것은 문빠들만은 아니어서, 문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를 제공하지 않은 통계청장을 해임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번에 해임된 통계청장. 문빠의 일부는 '자의로 사표를 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기도 했다

사실 문대통령의 경제정책이 그리 순조롭지 않을 것은 집권 초기부터 예상됐던 터였다.

김동연 부총리와 함께 경제의 키를 쥔 정책실장에 장하성 교수가 임명됐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20년 전, 그는 소액주주운동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소액주주운동이란 쉽게 말해 대기업의 지배권을 빼앗자는 운동이다.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는 이유를 재벌 총수들이 기업에 대해 전권을 휘두르기 때문으로 전제한 뒤

주식을 조금씩 갖고 있는 이들, 즉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총수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다.

난 이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외환위기가 일어난 데는 재벌총수의 책임도 컸던 만큼, 그들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게 한국경제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 장하성의 행보는 나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투기자본 ‘소버린’이 2003년 당시 경영권 공백이 있었던 SK의 주식을 사들이며 지배권을 노렸을 때,

장하성은 소버린 관계자를 만나는 등 이 사태에 직접 개입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몇 년을 걸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소버린이 단 1년 만에 해냈다”며 소버린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부도덕한 재벌총수라 해도 투기자본보다는 한국경제를 더 생각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소버린은 그로부터 2년여 뒤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9천억원의 이익을 남긴 채 떠났는데,

이는 기업이야 어찌되든 자신이 이익만 보면 된다는,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소액주주운동은 대기업에 반감을 가진 학자가 벌인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소액주주운동이 잦아들자 그가 주창한 이론은 소득주도성장,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의 이윤도 늘어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학자로서 그런 이론을 갖는 건 문제가 안되지만, 그가 정책실장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이론은 날개를 달았다.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시행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700만에 육박하는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깎아먹었고,

자영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쓰던 직원들을 해고해 버렸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든 것은 이 때문인데,

최저임금이 여기서 11% 가량 더 오르는 2019년엔 더 큰 재앙이 올까 걱정이다.

그럼에도 장하성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세 가지만 지적한다.

첫째,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국민들은 기다려 달라는 말에 공포감을 갖고 있다.

둘째, 이대로 간다면 정권재창출은 물건너 갈 수 있다.

셋째, 재산이 93억에 달하는 장실장이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가 한 학자의 독특한 이론을 실험하는 장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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