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에 해당되는 글 56건

  1. 투여사님, 10% 내놔요 (20)
  2. 박근혜 정부와 톡소포자충 (17)
  3. 관대한 채식 (26)
  4. 경제학과 기생충 (31)
  5. <공부논쟁>을 읽고 김두식 교수를 배신하려 한다 (28)
  6. 오세훈의 십년 꿈, 어벤져스2 (70)
  7. 전 지방선거를 목표로 뛰고 있지 않습니다 (26)
  8. 내가 여자였다면 (95)
  9. 기상청과 한파 (30)
  10. 20년 후 (26)
  11. 삼성과 박근혜 (15)
  12. [서민의 과학과 사회]중남미 국가들의 은혜 (12)
  13. 007과 박근혜 (6)
  14. 국토부의 무릎반사 (5)
  15. 권력은 고래도 숙이게 만든다 (9)
  16. 평강의 후예 (13)
  17. 디스토시드와 의사 처방 (17)
  18. ‘떡’에 관한 추억 (16)
  19. 검사들에게 상상력 교육을 (9)
  20. 휠체어의 또 다른 용도 (5)
  21. 문대성, 나한테 전화하지 그랬니 (38)
  22. 마마보이의 고백 (35)
  23. 강용석과 학벌 (32)
  24. ‘막말녀’가 횡행하는 사회 (37)
  25. 내 아내를 MBC 사장으로 (16)
  26. 기생충학과 새누리당… 누가 먼저 (8)
  27. 우리들의 ‘황금청계상’ (22)
  28. 한나라당 ‘디도스 공격’의 이유 (21)
  29. 고위 공직자 다루는 법 (22)
  30. 북한과 선거 (4)

투여사님, 10% 내놔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가 오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캠벨과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 그리고 중국의 투유유,
이렇게 세명이 공동수상을 했습니다.
앞의 두 명은 ‘강변실명증’이라고, 사람에게 실명을 유발하는 회선사상충의 특효약을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받았고요,
투유유 여사는 말라리아의 치료제를 만들어 내 수많은 인명을 구했습니다.



한 해 200만명 가까운 인명을 살상하던 악성 기생충 말라리아는
원래 기나나무에서 추출한 퀴닌을 원료로 한 클로로퀸을 썼지만,
웬만한 나라에선 다 저항성이 생겨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에 뜻이 있는 학자들은 말라리아의 신약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죠.
기생충학에서 노벨상을 탄 두 명은 모두 말라리아를 연구했으니,
대체약을 먼저 만든 사람이 세 번째 노벨상을 탈 확률이 있었죠.


많은 나라에서 신약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성공한 나라는 의외로 중국이었습니다.
개똥쑥으로 말라리아를 고쳤다는 전통의서에서 힌트를 얻은 투유유 여사가
‘아르테미시닌’이란 약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지요.




이 약은 말라리아에 아주 잘 들어, 2006년부터 세계보건기구는
투유유 여사가 만든 아르테미시닌을 말라리아에 우선적으로 쓰도록 했습니다.
그 뒤부터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기 시작,
작년엔 60만명 선으로 떨어졌지요.



하지만 노벨위원회에선 투여사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매년 후보에 올리긴 했지만, 계속 다른 사람에게 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생충학계의 명저로 추앙받는 <기생충열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씁니다.




그 사실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글세 투여사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지 뭡니까?
이건 그냥 농담이지만, 회의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오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투여사가 노벨상 상금의 10%는 저한테 줘야 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기생충학에서 노벨상이 나오자 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더군요.
“서민은 도대체 뭐하냐? 노벨상도 못타고.”
하지만 이건 아셔야 합니다.
노벨상 위원회를 움직여서 투여사가 타게 만들 정도면,
제가 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참고로 기생충학계에서는 다음 노벨상이 나온다면 그건 아마 말라리아 백신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어요.
백신을 통해 사망자를 팍 줄여버린다면 그보다 더 큰 업적이 또 어디 있겠어요?
문제는 제가 그쪽 일을 전혀 안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러느라 몇주간 업데를 못했답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아무튼 결론은, 투여사님, 10% 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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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소포자충은 고양이를 종숙주로 삼는, 아주 작은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이 유명해진 것은 이것이 쥐로 하여금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 덕분인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톡소포자충이 종숙주인 고양이로 건너가야 짝짓기와 자손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톡소포자충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까?

처음에 쥐에게 들어오면 톡소포자충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활발히 증식을 한다.

며칠 후, 숙주가 톡소포자충에 대해 면역을 갖게 되면 톡소포자충은 도망칠 곳을 찾다가 쥐의 뇌로 가고,

거기서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서 숨어있다.


파란색이 톡소포자충으로, 쥐의 뇌로 숨어들어가 21일째부터 보이지 않는다



쥐가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면역이 약해지면 톡소포자충은 주머니를 깨고 나와 뇌에 엄청난 염증을 일으키지만,

쥐가 건강한 상태로 있으면 고양이에게 가서 짝짓기를 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 궁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쥐로 하여금 고양이를 덜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는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 중 편도체 (amygdala)라는 부위에 주머니를 만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

편도체는 공포반응을 조절하는 기관, 

그곳에 기거하는 톡소포자충은 쥐에게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결국 쥐로 하여금 고양이에게 잡혀먹게 만든다. 



세월호에 대처하는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톡소포자충 생각이 났다. 

현 정부는 톡소포자충, 면역계는 세월호, 쥐는 우리 국민으로 생각하면 대충 들어맞는다. 

집권 1년차 때 현 정부는 대선 때 했던 공약을 파기하면서, 또 종북몰이를 하면서 활발히 보냈다. 

이는 톡소포자충이 쥐의 몸속에 들어와 활발히 증식하는 시기와 비교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후, 세월호 사태가 터졌다.

박근혜 정부는 숨을 죽였다.

정제되지 않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비난이 돼서 돌아오던 시기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을 찾아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고, 

유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이 시기는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에 주머니를 만드는 시기에 해당된다.





그 후 정부는 새누리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월호에 대한 여론을 바꾸어 나간다.

이는 톡소포자충이 쥐를 조종하는 것에 해당되는데,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우리의 기본 입장은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라는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의의장과 

같은 당 홍문종 의원의 말은 발언 당시에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렇게 생각하는 여론이 더 많아졌고,

지금은 세월호 기사마다 교통사고 운운은 물론이고 유족들을 욕하는 댓글이 더 많으니,

현 정부의 숙주조종은 완전히 성공했다.

박대통령이 자신의 약속과 달리 특별법 제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점,

그리고 특별법이 어렵사리 통과된 뒤 새누리당이 훼방을 놓을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다. 


유족들의 절규에 눈도 안돌린 채 카펫을 밟고 있는 대통령님. 저 초연함이 존경스럽다. 




심지어 인양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정부에 조종당하는 국민들도 “돈 드는데 뭐 하러 인양하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톡소포자충이 쥐를 조종하는 이유는 고양이에게 먹히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 때문이지,

결코 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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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채식


                                                                                                 전성기 때 배가 나온 모습. 지금도 여기에 근접했다

                                                                                                       


월요일, 기생충학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두시간 동안 중요한 안건을 결정하고 난 뒤여서 다들 배가 고팠습니다.

삼겹살 집으로 갔습니다.

연대 앞에 그렇게 맛있는 삼겹살집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평소 삼겹살이 나를 살게 해주는 이유라고 말하던 전

조조의 십만대군 앞에서 조자룡이 헌칼을 쓰듯이 젓가락을 휘둘렀습니다.

제 앞에 놓인 삼겹살을 다 해치우고 누룽지를 시키려는데

옆 테이블, 그리고 그 옆옆 테이블에서 미처 굽지 못한 고기를 제 테이블로 건네 줍니다.

전 다시금 조자룡이 됐지만,

마지막 대여섯 점은 솔직히 힘이 들어군요.



 

수요일날, 간만의 사우나에서 체중을 달아보니

제 체중은 생애 최고, 전문용어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었습니다.

월요일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렇다고 그 이전에 덜 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결심을 하나 합니다.

채식만 하기로요.

먹는 걸 줄여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수도 없이 실패했지만,

채식으로 배를 채워가며 하는 식생활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목요일 점심 때, 조교선생과 나가서 냉면을 먹었습니다.

12시에 먹었는데 2시부터 배가 고팠습니다.

서울서 일이 있었는데, 일을 마친 뒤에는 허기가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었습니다.

김치찌개집에 들어갔습니다.

맛도 좋았지만 고기가 많이 들어있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 고기를 먹는다면 그게 뭐 채식이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먹은 냉면에도 분명히 고기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냉면을 먹고 난 뒤 육식을 했다, 이렇게 말하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치찌개에 고기가 있다고 그게 육식은 아닌 겁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이 범죄자를 만드는 것처럼,

너무 엄격한 채식은 오래 지키기 어려운 법입니다.

이참에 지속 가능한 저의 채식 원칙을 정했습니다.

1) 음식에 고기가 몇 점 딸려 나온다고 해서 채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2) 밥에 불고기 몇 점이 있다고 채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건 백반이지, 육식은 아니니까.

3) 닭은 조류다. 따라서 삼계탕을 먹는 게 채식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4) 내 뜻과 관계없이 고기집에서 회식이 잡히는 경우,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의 고기는 먹어 줘야 한다. 내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선 안되니까.

제 스스로 관대한 채식이라 이름붙인 이 원칙이라면 몇 달이고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오늘 저녁에는 모임이 있고, 장소는 고기집입니다. 딱 스무점만 먹을 생각입니다.

근데 이상하게 체중이 줄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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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기생충

 

 

 

경제학을 쉽게 풀어주는 조준현의 책 <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를 읽다가 감동했습니다.

저와 그리 친하지 않던 경제학이란 단어가 이젠 그리 멀리 있지 않게 느껴졌거든요.

좋은 책은 독자에게 작가가 되려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가봅니다.

갑자기 경제학과 기생충을 연결시켜 글을 써볼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겁나 유치하다는 거 명심하시고 읽어 주시길.

 

 

 

 

--

 

 

 

플라톤, 이데아론

어떤 기생충이 몸안에 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성충을 끄집어내서 보는 게 제일 정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 대신 대변검사를 통해 기생충의 알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기생충이 있는지 유추하려고 하는데, 여기서 성충을 이데아라고 한다면 기생충의 알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는 참이 아니듯 알도 비슷한 게 워낙 많아 알만 가지고 성충을 짐작하려 하면 틀리는 경우가 많다.

  

아담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

요충은 항문 주위로 나와 알을 낳으며, 사람의 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도록 가렵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항문을 긁던 아담 스미스는 어느날 내가 잘 안씻어서 가려운 게 아니지 않을까?”에 생각이 미쳤고,

항문을 간지럽히는 그 존재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했다.

나중에 흰 팬티 위에서 꼬물거리는 흰색의 벌레를 발견한 스미스는

요충과 사람이 각자 자신의 이기심을 쫓아 노력하다 보면 항문이 찢어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맬더스, “사람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회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사람은 보통 한 번에 한 명의 아이를 낳고, 그나마도 열달 동안 몸에서 기른 뒤 낳을 수 있다.

반면 회충은 암컷 한 마리가 하루 20만개까지 알을 낳으며,

짝짓기를 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알을 낳는다.

그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떤 맬더스는

이런 추세면 100년이 지난 뒤에는 모든 사람이 1인당 회충 1000마리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구충제를 갖고 있는 자가 지배계급이고, 구충제가 없어 기생충한테 영양분을 착취당하고 있는 자가 피지배계급이다.”

  

 

리카아도, “국가 간 이동은 기생충간의 감염률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회충과 편충의 감염률이 모든 나라에서 같다면 굳이 다른 나라에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국의 회충 감염률이 80%, 편충 감염률이 5%,

프랑스는 회충 감염률이 5%, 편충 감염률이 80%라면

편충에 걸리고 싶은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로 갈 것이고

편충 때문에 지겨워 회충에 걸려볼까, 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으로 감으로써

국가 간 이동이 생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봄 가을로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

기생충에 걸린 사람에게 구충제를 줘서 치료를 해봤자 오래지 않아 기생충에 다시 걸릴 것이고,

기생충에 안걸린 사람은 안걸렸으니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봄 가을 구충제는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기생충이 아름답다

4.5미터짜리 광절열두조충에 걸려 고생한 직후에 한 말.

 

기생충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기생충이 많은 것은 인분비료를 통해 기생충 알이 잔뜩 묻은 김치를 먹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노동자들이

배추밭에 심은 배추를 뽑아 내동댕이쳤던 사건.

 

다시 마르크스, 사회 발전단계설

사회의 성숙도는 기생충에 의해 결정된다. 발전이 덜 된 나라에서는 회충이 유행하고, 그 뒤 간디스토마의 시대를 거친 뒤 결국 광절열두조충의 시대가 온다. 얼마 전 한 소년의 몸에서 3.5미터짜리 광절열두조충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국은 가장 성숙도가 높은 나라다.”

로버트 오웬, 8마리 회충제

지금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회충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우리는 한 사람당 8마리 이상의 회충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칼 포퍼, 열린 기생충과 구충제

회충은 사람에서만 성충이 되어 알을 낳지만, 간디스토마는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 , 멧돼지 등 거의 모든 포유동물에서 성충이 된다. 칼 포퍼는 한 동물에서만 삶의 전부를 보내는 기생충을 닫힌 기생충’, 여러 동물을 오가며 사는 기생충을 열린 기생충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그는 지금은 회충이 번창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열린 기생충의 시대가 열린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열린 기생충최대의 적은 디스토시드라는 구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르크스. 엥겔스, 기생충 선언

한 기생충이 내 뱃속을 해집고 있다. 구충제 먹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드레스덴 선언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기생충박멸 방안을 묻자 한마디로 기생충은 대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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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죽기전에 존경한다고 꼭 말씀드리고픈 10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 분이 작년에 그 명단에서 빠진 건 창비에서 팟캐스트를 같이 하느라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께는 강교수님 모친상 때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8명 남았다).

첫 저서인 <헌법의 풍경>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분이 그렇게 훌륭한 분인 줄 몰랐다.

그리 잘생기지 않은 얼굴을 책 표지에 싣기에 책 팔 마음이 없는 걸까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 책이 꽤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안사고 버텼는데,

한 지인이 정말 좋은 책이라며 주는 바람에 결국 읽어 버렸다.

책을 덮자마자 김두식 교수의 팬클럽에 합류했고,

그분이 내는 책은 모조리 사면서 내 존경심을 보여드리고자 노력 중이다.

김두식 선생의 형님이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형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그 두분 중 김두식 선생이 내게는 훨씬 더 대단한 분이었다.

조곤조곤한 존댓말로 만들어진 책을 통해 내 나아갈 바를 밝혀주는 김두식 교수님을

난 서울대 교수 100명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그 두분의 대담집 <공부논쟁>을 보니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책날개에 소개된 김두식 선생의 형 김대식 교수의 프로필 때문이었다.

1963년생인데 1994년에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된 건 내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그 다음 구절이 문제였다.

“<피지컬 리뷰 레터즈> <네이처 포토닉스> <나노 레터즈>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 등 여러 저널에 논문을 기고했다.”

하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난 학자고, 그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학자의 정체성 중 하나는 유명한 저널에 논문을 싣는 분에게 약하다는 점이다.

우리 기생충학계에 삽십이세의 나이로 <네이처>1저자로 논문을 실은 분이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를 만날 때마다 90도까진 아니지만 60도 정도는 고개를 숙였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이언스-네이처-셀 중 하나인 그 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었다니!

나머지 학술지들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학술지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평균 인용빈도인데,

내가 내는 학술지는 높아봤자 2가 고작이다.

김대식 교수가 논문을 실은 학술지의 인용빈도를 보자 (2012년 기준).

-피지컬 리뷰 레터즈: 7.9

-네이처 포토닉스: 27

-나노 레터즈; 13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10

-사이언스: 31

 

이런 우주적인 학술지에다 논문을 내는 김대식 교수를 정체성은 학자인 내가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본문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저는..박사급 연구원 두명,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열명, 스태프 한명, 비서.행정요원 각 한명, 대충 15명 정도 되는 연구팀을 이끌고, 주로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아서 일을 해요 (57)]

이런 큰 규모의 연구팀을 이끄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를 받고, 또 연구비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 팀의 연구비 규모가 1년에 5억 정도 될 거예요.”

학자의 정체성에는 연구비 많이 따는 교수한테 약하다는 것도 있는데,

5억 정도 받고, 또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교수라면,

내가 반드시 존경해야 할 분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담집에서 말씀하시는 걸 보니, 너무 모범생같은 김두식 선생에 비해서도 훨씬 매력있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살 뿐이에요. 욕먹을 게 있으면 먹는 거고요...어쨌든 저에게 중요한 건 독립적인 사고입니다.”(45)

 

언제 김대식 교수를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뵙는다면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제가 사실은 동생 분보다 형님을 더 존경하고 있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이런 것도 배신에 포함되는지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말이 안나오는 현실 앞에서 글은 참 무력하더군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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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스 웨던, 어벤져스 감독 (이하 감독)= 이번 영화는 어벤져스가 악당로봇을 물리치는 내용이야. 악당들이 IT가 발달한 나라의 연구소를 공격해 그 기술로 울트론이라는 악당로봇을 만드는 거지.

제작진=, 정말 참신한 내용이야. 근데 연구소로 쓸 장소는 어딜 생각하고 있어?

감독 =그게 문제야. 도심에 있으면서 경관이 좋은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렵단 말야. 연구소로 만들기 좋게 비어 있으면 금상첨화고.

제작진= 그건 걱정 마.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데서 찾으면 돼.

감독 = 그럼 안 돼. 내가 말했잖아. IT가 발달해야 한다고.

제작진 = , 웨던! 그건 불가능해. 경관이 좋은 곳에 첨단스러운 느낌을 주는 빈 건물이 서 있다고? 그것도 IT 강국에?

 

그때 맨 뒤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내 = (매우 재수없는 표정으로) 내가 그런 곳을 하나 알고 있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그것도 강 위에 있어.

 

사람들의 표정이 그쪽으로 쏠렸다.

사내 = 처음 그 건물을 봤을 때 정말 놀랐다고. 강에 건물이 둥둥 떠있는 것 같았거든. 이름도 마침 세빛둥둥섬이더라고.

감독 = 그래서? 그 건물의 용도는 뭐야?

사내 = (더 재수없는 표정으로) 나도 그게 궁금해서 6개월을 관찰했어. 도대체 저기가 뭐하는 곳인가. 별로 할 일도 없었기에 아침마다 조깅하다 말고 두시간씩 관찰했지. 그런데 놀랍게도 드나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제작진 = 리얼리? 아닐 거야. 지하통로로 사람이 드나든다든지, 아니면 비밀프로젝트를 하느라 6개월간 출입이 안된다든지 그러겠지.

사내 =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한번은 내려가 봤어. 그랬더니..

감독 =그랬더니?

사내 = 문이 열려 있더라고. 들어가 봤더니 세상에, 먼지가 자욱이 쌓여 있고, 사람의 흔적은 없는 거야. 악취가 어찌나 심한지, 꽤 오래 비어있던 모양이야. 준비한 후레시를 비췄더니 웬 쥐 한 마리가 날 째려보더라고. 근데 그 쥐의 머리에 O란 글자가 찍혀.....

 

 

제작진 =그건 말이 안돼. 설마 비워 두려고 강에다 건물을 만든 거야?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사내 = 나도 그게 신기했어. 그런데 지난번 회의 때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고. 그걸 지은 사람이 혹시 어벤져스 촬영을 위해 그 건물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제작진 = , 스미스. 농담도 지나치군. 언제 찍을지 모르는 영화촬영 때문에 수천억을 들여 강 위에 건물을 만든다고?

 

 

 

 

사내 = 그래, 나도 안다고. 내 생각이 지나치다는 거. 그런데 말야, 만든 사람의 사진을 봤어. 범상치 않게 생겼더라고.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 알아봤지. 이 사람이 서울시장을 지냈었는데, 왜 그만둔 줄 알아?

제작진 = 몰라. 혹시 그 섬 같은 건물 지은 것 때문에 쫓겨난 거 아냐? 예산낭비라고.

사내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 사람은 아이들한테 공짜로 밥을 줄 수 없다면서 시장직을 때려 치웠어. 정말 놀랍지? 그 얘기를 듣고나니까 그 사람이라면 어벤져스 때문에 수천억짜리 건물을 지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제작진 = 그건 말이 안돼. 정말 그랬다면 그 사람이 어벤져스2의 제작비를 대는 셈인데,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시민의 혈세를 짜서 다른 나라 영화사를 돕는다는 게 말이나 돼?

사내 = 그렇지?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 중엔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잖아. 우리 쇠고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나라에서 도와준 거 알지? 그것 때문에 시민들이 몇 달씩 시위를 하고...

감독 =자자,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그 나라에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좋은 거니까.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밥먹으러 가자고.

 

 

십년 앞을 내다본 오 시장님, 한치앞을 못본 저희들의 비난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사람은 내일을 사는 사람에게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십년 후를 사시는 오 시장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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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가 너무 오른 탓일까요?

저보고 이번 지방선거에 나가야지 않느냐는 덕담이 하루 두번씩 들리기에

네이버 검색을 해본 결과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정당에서 연락온 적이 없는데, 웬 검색어가 저리도 많이 뜰까요?

어제는 제가 충남 도의원에 나간다는 기사도 떴습니다.

 

 

 

 

 

 

제가 충남 도의원을 목표로 뛰고 있답니다.

저...뛰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서울에 다녀온 건 주름을 없애려고 한 것이지, 선거와는 무관합니다.

제 스물아홉 때와 지금 현재를 비교하면, 분명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1995년, 스물아홉살 때 제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후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서울에 간 것은, 과거의 저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믿어 주시면 감사하겠고요,

저와 지방선거를 키워드로 넣고 네이버에서 검색하지 말아 주세요.

전 기생충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쭉 기생충을 사랑하는 학자로 남겠습니다

 

 

* 추신: 모태범의 아쉬운 4위를 위로하려는 제 나름의 노력이었구요 네이버 검색과 기사는 모두 합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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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자였다면

 

 

 

저는 못생겼습니다

 

 

 

어릴 적부터 못생겼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더 못생기게 보입니다

 

 

화장을 해도 못생긴 건 변함이 없습니다

 

 

김제동보다도 눈이 작습니다.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향숙이'를 닮았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희 누나나 여동생도 못생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저희 누나는 제 친구 중 몇 명이 중학생 시절부터 짝사랑했을 정도로 괜찮은 외모고,

여동생은, 제 동기와 후배가 따라다녔을 정도로 미모입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합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엊그제 베란다쇼 때문에 여장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과연 그랬습니다.

여장을 한 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그래도 전 제가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입니다.

여자로 가봤자 미모로 따져서 하위권을 벗어날 수 없을테고,

못생긴 남자보단 못생긴 여자로 사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몇백배 더 힘든 일이니까요.

못생기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게, 우리네 여성들의 삶이긴 합니다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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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과 한파

 

 

작년 12월 5일, 눈이 많이 내린 그날, 각 언론은 ‘32년 만의 폭설’을 대서특필했다.

서울의 적설량이 7.8㎝였으니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지만,

25.9cm라는, 생애 최고로 많은 눈이 내린 게 2010년 1월 4일이었으니,

몇십년만이라며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보도가 나가는 건 기상청이 교묘한 방식으로 기록을 만든 덕분이다.

7.8cm의 눈도 “12월 초순 기록으로는 1980년 이래 32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라는 식으로 포장되어 기록에 추가되고,

이틀 전 폭설 또한 12년만의 폭설로 기사를 탔다.

해마다 기상에 관한 수십개의 기록이 매스컴을 장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뭐 이런 걸 가지고 기록이라고 하나 싶은 게 많다.

“5월 4일만 놓고 봤을 때는 77년만”이라든지,

“오후 세시 강우량으로는 109년만”이라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매일매일 기록을 만들 수 있겠다.

 

 

한파에 관해서도 기상청은 비슷한 기록 만들기를 시도한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50년만의 추위” 같은 기사가 얼마나 많이 나가는가?

그냥 온도만 측정하는 것도 부족한지 ‘체감온도’라는 희한한 잣대를 만들어가지고

“체감온도 영하 25도”라고 떠들어대는 걸 보고 있노라면

기상청이 원하는 건 사람들이 밖에 안나가고 집구석에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모여서 테니스를 치기로 했는데,

매스컴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니 어쩌니 하고 난리를 친 적이 있다.

지레 겁을 먹은 동료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소수의 사람만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별로 춥지도 않았다!

그 후부터 기상청의 발표에 뭔가 음모가 있다 싶어 그들 말을 잘 안믿고 있다.

그들 말대로라면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은 올해 여름이고, 가장 추운 겨울도 올해 겨울이니까.

 

물론 올 겨울이 춥지 않은 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겨울은 해마다 추웠고,

올 겨울도 왜 이렇게 추운지 신경질이 날 때가 많았다.

게다가 기상청도 관심을 받고 싶은 존재인 만큼

자꾸 언론에 노출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고픈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최소한 올 겨울엔 기상청과 매스컴이 춥다는 얘기를 너무 과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이란 원래 편견의 동물인지라 춥다, 춥다 하면 더 춥게 느껴지는데다,

작년 12월 19일 이후 많은 이들이 엄청난 심리적 한파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마음이 영하 30도인데 바깥 온도도 영하 20도라고 떠들어대면

더 춥지 않겠는가?

 

이왕 기록 만드는 걸 좋아하니, 기상청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온도나 강우량 가지고만 기록을 만들 게 아니라

다른 기록도 좀 만들어보면 어떨지.

예를 들어 특정 정부에 대해서도 수많은 기록을 만들 수가 있다.

“광해군 이후 측근비리 연루자 수 403년만의 기록”

“유신수립 이후 환경파괴 32년만의 기록”

“자신과 측근이 해먹은 액수 단군 이래 최다”

“선조 이래 얼굴 두껍기로 421년만의 기록”

이런 기록들이 수시로 언론에 보도됐다면 그 5년이 조금은 덜 지겨웠을 테고,

유난히 기록에 집착하던 대통령도 그런 보도에 기뻐했을 거다.

뭐, 앞으로도 기회가 많다.

좋은 측근과 능력있는 올케를 둔만큼 새 당선인도 여러 가지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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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이번엔 좀 바꿔야지 않을까?” 


김 노인의 말에 황 노인은 입에 넣으려던 라면을 내려놓았다. 


“바꾼다니? 대체 뭘 바꾼단 말이야?” 


 황 노인이 말할 때 라면 조각이 날아가 김 노인의 이마에 튀었지만, 황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저 위쪽에 있는 북한이 안 보이나? 걔네들이 로켓에 핵을 실어 우리나라로 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가겠어?” 


김 노인은 이마에 붙은 라면을 떼어냈다. “자네 말도 이해해. 공산화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지 않아? 곧 겨울이 오는데 정부에서 난방 보조금을 깎았다잖아.”


라면 국물을 마시던 황 노인은 젓가락으로 탁자를 찍었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당장 월북이라도 하게. 자네는 공산당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


“공산당, 공산당. 그 공산당 타령은 이제 지겨워.” 한마디도 안 하던 마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뭐라고 해도 이번만은 2번을 찍을 거야. 핵폭탄에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경향신문DB)



서기 2032년, 대한민국은 25년째 보수파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그 서막을 연 것은 2007년이었다. 연평균 4.5%의 성장률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은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경제파탄’을 노래했고, 거기에 현혹된 유권자들은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임기 내내 전국의 강바닥을 파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 5년간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쳤고,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친·인척과 측근들이 모두 감옥에 가는 등 비리 면에서는 연평균 50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으니, 2012년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전 세계의 예측과는 달리 정권은 교체되지 않았다. 당시 야당 후보를 빨갱이라고 생각한 50,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열광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로켓까지 쏴 올렸으니, 보수 후보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힘들게 했던 독재자의 딸이란 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나이든 유권자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났다는 거였다. 특히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2000년만 해도 전체의 7.2%에 불과했지만, 2010년 11.3%, 2020년 14.4%에 달했고, 2030년에는 24.3%로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인구 5200만명 중 1300만명이 65세 이상인데, 투표율도 높은 데다 똘똘 뭉쳐 1번을 찍어대니, 선거는 해보나마나였다. 2012년에도 지지리 못살았던 북한은 2032년에도 망하지 않고 버티는 생존력을 보여줬는데, 그 어려운 와중에도 핵개발을 성공시켰고, 선거 때마다 한 번씩 로켓을 쏴줌으로써 2번으로 갈지도 모를 표를 결집시켜 줬다.



정치를 개판으로 해도 어차피 선거에선 이길 터였기에 보수정권은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기 바빴다. 경제는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됐고, 국민소득은 다시 1만달러를 돌파했다(아래쪽으로). 돈이 없어지자 보수파는 주 지지층인 노년층에 칼날을 들이댔다.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해마다 삭감했고, 수도권 미화사업의 일환으로 65세 이상은 서울과 경기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32년 선거는 진보파에게 25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자신들을 홀대하는 보수정권에 대한 노년층의 반발이 확산된 것.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노년층의 절반 이상이 2번에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층도 적극적인 투표의사를 나타냈다. 여론조사는 20년 만에 박빙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북한의 로켓이 발사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보수파는 이런 성명을 냈다. “20년 전 좌파정권이 퍼준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직도 도발을 해대고 있습니다.” 김 노인도, 마 노인도 1번으로 선회했다. 선거가 끝났다. 1000만표 차이, 보수파의 승리였다.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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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박근혜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벌써 20일이 지난 얘기지만, 올 시즌 프로야구는 삼성의 우승으로 끝났다. 시즌 전부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삼성의 우승을 예상했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올 시즌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가 없을 정도였다. 삼성이 2011년 우승팀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성은 어느 팀보다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었고, 홈런타자 이승엽이 가세했으며, ‘끝판대장’이란 호칭에 빛나는 철벽 마무리 오승환이 있었다.


그렇다고 삼성의 우승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즌 초반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작년 30개로 홈런왕에 올랐던 최형우가 올 시즌 친 홈런은 고작 14개였고, 10승을 올리며 작년 삼성의 우승에 기여한 차우찬은 방어율 6점대로 6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삼성의 순위는 8개 팀 중 7위였다. 이 공백을 메워 준 게 바로 두꺼운 선수층이었다. 한 선수가 부진하면 갑자기 나타난 다른 선수가 빛나는 활약을 보여줬다. 무더위가 시작된 7월부터 1위를 지킨 삼성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2위와의 차이를 벌렸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를 여유있게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12월19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가 드물 정도였다. 그렇다고 박근혜의 대선 행보가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작년 9월 안철수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한 뒤 지지율이 급상승해 박근혜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올해 7월에는 다자대결에서도 1위로 나서는 기염을 토한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9월에는 문재인 후보가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박근혜에게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추석을 지나면서 박근혜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 3자대결에서 40%를 돌파하며 20%대에 그친 두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린다. 안철수가 사퇴한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는 5%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문재인 후보를 앞서고 있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인지 물었을 때, 단일후보인 문재인이 승리할 것이란 응답은 30%인 데 반해 어려울 것이란 응답은 52.4%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걸 감안하면, 대선 당일 웃는 이는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DB)


신기한 것은 왜 박근혜가 1위를 달리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이력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분석해 봤을 때 어느 하나 뚜렷이 내세울 만한 게 없으니 말이다. 자신이 한 건 아니라 해도 박근혜는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최근 몇 년간 박근혜가 잘했다고 할 만한 업적이 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네이버를 보면 ‘박근혜의 업적이 뭐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여럿 있는데, 답변을 보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을 낸 게 유일한 업적인 듯하다. 그렇다고 미래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다. 평생의 소신일 것 같던 ‘줄푸세’를 갑자기 포기하고, 경제민주화를 외치다 하루아침에 폐기하는 걸 보면 국정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를 뒷받침할 캠프의 선수층이 두꺼운 것도 아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비판하며 ‘홍어X’이란 표현을 쓴 김태호 의원이 선대위 공동의장이고, “(2008년 촛불집회를)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한다”고 한 김무성 전 의원이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인 것에서 보듯, 박 후보의 캠프는 하나같이 막말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로 짜여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현재 흔들림 없는 1위다. 전력이 센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은 야구와 달리 선거는 능력 있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이길 확률이 높은 건 아니니까. 민주주의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엔 십분 동의하지만, 가끔은 민주주의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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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땅을 파 내려가면 아르헨티나 근처로 나온단다. 축구를 잘하고 마라도나라는 축구신동을 배출한 탓에 아르헨티나는 대부분 알 것이다. 근처에 있는 브라질은 축구를 더 잘하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우루과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칠레는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라서, 자메이카는 우사인 볼트, 쿠바는 카스트로, 멕시코는 전통의상 때문에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다. 이 나라들을 중남미 국가라고 부르는데, 중남미에는 이들을 포함해 총 33개나 되는 나라가 있지만 위에서 예를 든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가 모르거나 알아도 이름 정도밖에 모르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이 중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남미를 상대로 한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일은 중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 재벌들에게 기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준 거였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이 2010 남아공월드컵 멕시코전에서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예를 들어 보자. 어느 재벌그룹이 세금도 거의 내지 않고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고 치자.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효과적인 장소를 찾다보니 해당 재벌의 본사 앞으로 몰려가기 마련이다. 자기 건물 앞에서 ‘○○그룹은 편법상속을 철회하라’는 시위가 벌어지면 해당 재벌은 영 기분이 좋지 않을 거고,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인 나머지 본연의 임무인 기업 활동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중남미 국가들이 나섰다. 그 국가들은 재벌그룹의 사옥에 자기 나라 대사관을 입주시킴으로써 이런저런 시위를 원천봉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1호는 대사관이 있는 곳 100m 내에서는 집회 자체를 불허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때 재벌기업 본사마다 중남미 국가들의 대사관이 있었다. 현대상선 건물에는 파나마, 삼성생명 본사에는 엘살바도르, 종로 삼성타워에는 온두라스, 롯데호텔에는 과테말라 대사관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는 등 억울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건 불가능했고, 재벌들은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파는 데만 전념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 재벌들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중남미 국가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의 지도층 인사, 즉 돈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내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있다 보면 적응도 잘 못하고, 탈선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 고민이었다. 그들이 대안으로 찾은 건 바로 외국인학교. 영어교육 면에서 탁월하고, 자식을 해외 명문대에 보낼 때도 유리하다니 얼마나 좋은가? 교육비가 연간 3000만원 선이지만 지도층 인사이니만큼 그 정도 액수는 아무것도 아니다. 



외국인 학교 전경 (경향신문DB)


문제는 외국인학교에 입학하려면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어야 한다는 것. 자식 문제가 잘 해결돼야 지도층 인사들이 우리나라를 잘 지도할 텐데 엉뚱한 조항이 발목을 잡는 안타까운 현실, 그래서 중남미 국가들이 나섰다. “강남에 거주하는 중견기업체 사장의 며느리 박모씨는 4000만원을 주고 과테말라 위조여권을 발급받아 셋째를 ㄱ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다.” 이뿐이 아니다. 강남의 병원장 이모씨는 아예 국적을 도미니카로 바꿨고, 중소기업 사장 부인인 이모씨는 남편과 위장이혼을 한 뒤 에콰도르인과 위장결혼까지 했다. 이 밖에 1억원을 주고 니카라과 위조여권을 발급받은 재벌가 며느리 등 수많은 지도층 인사가 중남미 국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여권에 국적, 그리고 남편까지 제공하는 나라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음만 있으면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그 나라들은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안정된 것도 자식 문제를 잘 해결한 지도층 인사들이 지도를 잘한 덕분, 중남미 국가들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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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과 박근혜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20년 전만 해도 스파이물 하면 다들 ‘007 시리즈’를 떠올렸다. 1962년 처음 만들어진 후 20편이 제작된 007 시리즈는 어렵고 고독한 직업일 스파이에 대해 그릇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미끈하게 잘생긴 얼굴에 고급양복을 입고 미녀들을 마음껏 유혹하는 스파이라니, 한번쯤 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황당한 설정이 반복되자 팬들은 점점 식상감을 느꼈다. 게다가 강력한 적이던 소련이 해체된 탓에 007이 왜 필요한지조차 의문시됐고, 이런 회의감은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007 영화에 관객이 발길을 끊는 것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DB)



 그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게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다. 세계 제일의 미남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이 시리즈는 몸을 사리지 않는 주인공의 연기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1편에서 주인공이 줄 하나에 매달려 CIA에 침투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작년 말 개봉한 4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28m짜리 빌딩에 대역도 없이 올라갔는데, 빌딩 벽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첨단 무기와 정예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긴 해도, 그의 대담한 액션에 사람들이 열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2002년부터는 <본 아이덴티티>를 필두로 소위 ‘본 시리즈’가 만들어진다. 최첨단 무기나 미녀들이 등장하지 않는 게 특징인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제이슨 본은 고급차 대신 기차나 지하철을 타고, 잠도 허름한 모텔에서 혼자 잔다. 그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주먹이며, 가끔씩 쓰는 폭탄도 전자레인지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만드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에게 열광했고, 비현실적이기만 한 007 시리즈를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됐다. 위기감을 느낀 007 제작사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느끼한 미남 배우 대신 터프한 이미지의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임스 본드로 낙점했고, 최첨단 무기보다는 주먹을 쓰고 몸을 날리는 액션에 더 비중을 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007은 다시금 부활했고, 최근에는 크레이그가 주연한 세 번째 시리즈물 <007 스카이폴>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007이 스파이물의 대명사였던 것처럼, 박근혜는 지난 4년간 줄곧 차기 대통령 1순위로 꼽혀왔다. 그래서였을까? 자만심에 빠진 그녀는 국민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신비주의 콘셉트로 일관했고, 어쩌다 하는 언론 인터뷰에선 황당한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MBC 파업에 대한 의견을 묻자 “노사가 슬기롭게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는 하나마나한 답변을 하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고 한 바 있다. 두 번째 판결이 과거의 판결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상식은 그녀에게 없었다. 심지어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에서는 법원의 판결문조차 읽어보지 않았는지 “강압은 없었다”고 해 나중에 정정발언을 해야 했다.



국민들은 점차 그녀의 무성의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답변들에 지쳐 갔는데, 그 틈을 비집고 나온 사람이 바로 안철수였다. 기성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신선함을 바탕으로 등장한 그는 서울시장 후보를 통 크게 양보하면서 여론조사 사상 처음으로 양자대결에서 박근혜 후보에 앞서는 후보가 됐다. 이어 문재인이 등장했다. 민주당 경선 내내 1등을 차지하며 제1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그는 파격적이진 않지만 꾸준한 모습으로 점점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거듭된 흥행실패로 위기에 몰린 007 시리즈는 기존 본드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다니엘 크레이그를 기용하며 부활의 계기를 만들었다. 역시 지지율 저하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는 DJ 측 인사들인 한광옥과 김경재 등을 영입한 데 이어 며칠 전에는 철새 정치인의 대명사인 이인제 의원을 받아들였다. 과연 이들이 박근혜에게 다니엘 크레이그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나니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한광옥부위원장과 악수하는 박근혜 후보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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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의 무릎반사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어떻게 될까? ‘아프다’라고 할 분이 계시겠지만, 원하는 정답은 발이 위로 올라간다, 즉 ‘무릎이 펴진다’다.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무릎반사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며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해서 ‘무조건반사’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조건반사는 특정 조건을 경험한 사람만이 보이는 반응으로,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외삼촌이 집에 올 때마다 조카에게 용돈을 준다면, ‘외삼촌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조카는 가슴이 뛰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며, 그 돈으로 뭘 살 것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그런데 조건이냐 무조건이냐가 실제 세계에선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대통령 각하의 숙원사업인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기관은 4대강 사업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법조계를 보자. 5000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니만큼 땅을 파면 문화재가 묻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선 문화재가 나오면 일정 기간 공사를 중단한 채 문화재가 얼마나 묻혀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소위 매장문화재보호법이다. 



 하지만 무리한 공사로 인해 마애보살좌상이 박살났고,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된 합천보 등에서는 아예 문화재 조사를 시행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 밖에 하천법이나 환경영향평가법 등을 위반한 사례도 있단다. 하기야, 속도전을 표방한 4대강 공사에서 그런 법규 따위에 일일이 얽매여서야 어느 세월에 마무리를 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법조계는 4대강 공사와 관련된 소송에서 번번이 국가의 손을 들어줬는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지 않다든지 법 규정대로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피고가 4대강 사업이 되면 무조건 무죄를 선언하는 재판부의 태도가 거의 무릎반사 수준이라, 이게 법조인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조건반사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국토해양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4대강 사업이 홍수와 가뭄을 모두 다스리겠다는 취지였으니, 피해가 있으면 4대강 공사가 언급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을 하기 전보다 피해규모가 더 커졌다면 4대강 공사에 원인을 돌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국토부는 4대강 사업 얘기만 나오면 즉각적인 반박을 해댄다. 홍수가 나면 “4대강 사업 탓은 아니다”라고 하고, 104년 만의 큰 가뭄이 나도 “4대강 사업 탓은 아니다”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이니만큼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조사를 해보고 결과를 발표해야 할 텐데, 어쩜 그렇게 초스피드로 반박을 하는지, 이건 망치로 무릎을 때리기도 전에 무릎을 펴는 수준이다. 압권은 공사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피해를 입힌 녹조현상. 전문가들의 모임인 대한하천학회는 그 원인을 4대강 공사로 돌렸다. 


한강 녹조 증식 (경향신문DB)



비단 이분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번 녹조현상은 4대강의 보로 인해 유속이 느려져 생겼다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4대강 사업이 홍수와 가뭄을 훌륭하게 해결했다”는 대통령의 말이 맞는다면, 그깟 녹조 정도야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녹조현상이 4대강 사업과 관계없다고 반박을 하는데, 너무 그러니까 갑자기 실험을 해보고 싶어진다. 국토부 관계자를 앉혀두고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우리나라 공기가 맑아졌다”처럼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 머릿속에 각인된 반박 DNA 때문에 “공기가 맑아진 것은 4대강 사업 때문이 아니다”라고 즉각 반박하는 국토부 관계자의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환경부가 빠질 수는 없다. 원래 환경부는 환경을 지키라고 만든 곳일진대, 녹조현상의 원인이 가뭄 때문이라는 등 4대강 사업 변호를 일삼는 중인데, 최근 빗물요금제가 논란이 됐다. 20여조원을 써서 4대강 사업을 벌였는데 수질이 오염되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니 새로 세금을 만들자는 취지. 위에서 말한 것처럼 4대강 사업의 긍정적 기능이 많다면, 세금을 더 내는 건 국민이 당연히 감당할 몫이리라. 그럼에도 환경부는 “인구 증가가 원인일 뿐 빗물오염요금제는 4대강 사업과 관계없다”고 말한다. 최근에 인구가 줄어서 문제라더니 웬 인구 증가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심지어 4대강 사업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가 줄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도 다 줄고 있다”고 했다니, 이게 무릎반사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국가기관들이 무조건반사만 일삼지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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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 내내 군부독재와 싸워온 투사였다. 1979년 그는 뉴욕타임스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은 부산과 마산의 대규모 시위, 즉 부마항쟁의 계기가 됐다. 유신정권은 그로부터 한 달을 못 넘기고 막을 내린다. 그 뒤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과도 대립각을 세우던 YS는 난데없이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뜻을 같이하게 되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대통령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싫었을 사람들과 한방을 쓰게 만드는 것, 권력욕이란 이런 걸 가능하게 해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거짓말을 잘한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다른 정치인보다 DJ가 거짓말을 특별히 자주 한 건 아니었겠지만, 군사독재 세력이 그에게 빨갱이와 더불어 거짓말쟁이의 이미지를 덧씌웠기에 그렇게 믿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이야 어떻든 그런 세간의 여론이 있다면 거짓말을 자제함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도 있겠지만, DJ는 그러지 못했다. 19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했던 그는 YS의 실정으로 자신이 될 수도 있겠다 싶자 다시 정치에 복귀함으로써 큰 거짓말을 했고, 대통령이 되는 데 꼭 필요했던 김종필과의 ‘DJP 연합’을 이루기 위해 평생의 소신이던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제 개헌을 약속한다. 물론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고, DJ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분으로 남아 있다. 거짓말쟁이의 낙인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권력욕이 가진 대단한 힘이다.


이명박 현 대통령은 오랜 기간 현대건설에서 일했고 평사원으로 시작해 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업이란 영리추구가 목적인 곳, 현 대통령도 기업에 계시는 동안 돈에 대한 사랑을 무럭무럭 키웠을 것이다. 혹자는 3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분이니 돈에 욕심이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우표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우표 한 장에 벌벌 떠는 것처럼, 돈에 대한 대통령의 사랑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찡하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이 발견된다. 자칫하면 대통령이 못될지도 모르는 험난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은 당선만 되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돈 사랑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재산헌납 약속에 까무러쳤으리라. 돈을 가장 사랑하는 분에게 돈을 버리겠다고 약속하게 만드는 것만 봐도 권력욕은 정말이지 무소불위다.


박근혜 후보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외환위기로 박정희 향수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던 1998년이었고, 경북 지역의 맹목적 지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얻은 것도 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래서 박근혜는 정치를 하는 내내 ‘아버지’를 외치는데, “박근혜에게 정치는 효도이자 제사”라는 김어준의 말은 정말이지 핵심을 찌른다. 심지어 박근혜는 명백한 군사쿠데타인 5·16을 ‘최선의 선택’이라 말하고,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그래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한 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억지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아버지가 한 일은 모조리 옳다는 것. 그래서 난 지난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박근혜가 허리를 90도로 숙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그녀가 사상 처음으로 그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한 거였으니까. 과거사에 대한 그녀의 완강한 태도가 지지율을 떨어뜨렸다는 위기감이 사과를 한 이유겠지만, 단군 이래 최대의 효녀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하다니, 정말이지 권력욕은 미션 임파서블인가 보다. 다른 대통령들처럼 그녀가 그 대가를 받을지는 미지수지만.



과거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 는박근혜 후보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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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의 후예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전에도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었다. 현대건설에 다니는 동안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재산을 모았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여생을 보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아주 가끔씩 재산의 0.1%도 안될 몇 천만원 정도를 좋은 일에 기부하면 “훌륭한 분”으로 칭송도 받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치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그리고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는 절반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중이다. 수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300억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헌납했음에도 시선이 싸늘한 건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그분은 정치 같은 것을 해서 스스로 피곤한 삶을 사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보통 사람의 한계다. 보통 사람이야 수백억원의 재산에 만족하며 살 수 있지만, 그 정도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야심가라 부른다. 보통 사람은 10억원을 은행에 넣어두고 매달 300만원의 이자를 받으려 하는 반면 야심가들은 그 10억원을 투자해 그보다 몇 배의 이익을 내려는 사람이다. 재임기간 중 이 대통령의 재산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사 그의 재산이 몇 억원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해도,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주위 사람들이 단체로 부유해진 건 확실한 것 같다. 그가 아버지처럼 모시는 형님을 비롯해서 그의 멘토라던 최시중씨도 한몫을 잡았으리라 추정되고, 대통령 고향 분들과 고교 동문들 중 많은 이들이 대통령을 잘 둔 혜택을 본 듯하다. 물론 이분들 중 많은 수가 감옥에 있긴 해도, 병보석도 있고 특별사면도 있으니 기회가 있을 때 한탕 크게 하는 건 여전히 이익이리라.이런 야심이 꼭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자가 대통령이 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해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8년이나 세계 최강국을 통치했고, 그걸로도 성이 안 차 현재 국무장관으로 재임 중이다. 여성 야심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평강공주.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는 어려서부터 자주 울어 아버지로부터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는 농담을 듣고 자랐는데, 그녀는 진짜로 온달과 결혼해 그를 고구려의 명장군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평강이 공주였던 만큼 누구와 결혼해도 안락한 삶을 보장받았을 터였지만, 그녀가 온달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후세 사람들이 평강이란 이름을 알 수 있었겠는가? 이런 아쉬움은 있다. 온달이란 바보 대신 멀쩡한 사람과 결혼했다면 얼마나 엄청난 장군이 나왔을 것이며, 그 경우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故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한 박지만, 서향희씨 부부의 다정한 모습 (출처: 경향DB)


2004년 12월, 네이버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서향희라는 변호사가 자기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부잣집 딸에 미모까지 겸비한 그녀가 왜 마약 전과도 있고 아버지 후광 말고는 별 능력도 없어 보이는 남자와 결혼을 했느냐는 거였다. 나 역시 그녀가 남편 때문에 고생만 할까봐 걱정했지만, 이런 게 바로 보통 사람의 기우였다. 서 변호사는 결혼 후 고생은커녕 눈이 부실 정도로 놀라운 약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달 전 끝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문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사올통’이라는 말을 아느냐. (현 정권에서는) 만사가 형통하다가 이제 만사가 올케에게 다 통한다는 말이다.” “36세의 젊은 변호사가 26명을 거느린 대규모 로펌의 대표로 있고, 비리로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의 법률고문이었으며,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홍콩으로 출국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특별한 경력이 없던 서 변호사가 이렇게 빛나는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건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의 올케이기 때문, 그러니까 이해가 안돼 보이던 8년 전의 결혼은 야심가 서향희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첫 단추였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서향희는 힐러리 클린턴이 부럽지 않은, 평강의 진정한 후예다. 앞으로의 활약이 더더욱 기대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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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사례 1. 한 남자가 대변을 보다가 5㎝쯤 되는 조각들이 변기물 위에서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기생충이라고 생각한 그는 회충약을 복용했지만, 그 조각들은 두 달 후 또다시 기어나와 그를 좌절시켰다. 병원에 입원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 봤지만 그 조각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실패한 그는 결국 우리 과에 연락을 했다. 진단 결과 그가 걸려 있던 기생충은 아시아조충으로, 그가 베트남에서 돼지 간을 먹을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됐다.


사례 2. 또 다른 남자가 대변을 볼 때 느낌이 이상해 변기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50㎝쯤 되는 기다란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생충임을 직감한 그는 회충약을 먹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기다란 물체는 시시때때로 대변을 통해 기어나와 그를 아연하게 했다. 결국 그는 내과 외래를 통해 우리 과로 왔고, 3m가 넘는 벌레가 그의 몸 안에 들어앉아 몸의 일부를 내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기생충의 이름은 광절열두조충이었고, 이 벌레가 나오기 몇 달 전에 먹었던 생선회가 원인으로 추정됐다. 


 사례 3. 한 여성이 변기 안에서 기생충의 조각으로 의심되는 물체가 헤엄치는 걸 보고 놀라 자빠졌다. 약국으로 달려간 그는 약사가 주는 대로 회충약을 먹었지만, 석 달 후 또다시 같은 조각이 나오자 좌절한 채 병원 외래를 찾았다. 진단 결과 그 기생충은 사례 1과 같은 아시아조충이었다.




이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마디가 있는 기다란 벌레, 즉 촌충에 걸려 있었고, 촌충이 내보내는 몸의 일부를 변기에서 발견해 감염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이들은 모두 약국에 달려가 회충약을 먹었지만, 몇 달 뒤 다시 같은 게 발견돼 좌절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대체 왜 회충약에 죽지 않았을까? 촌충은 장 속에 박혀 있는 머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원래 길이만큼 자라게 되는데, 회충약은 촌충 몸의 일부에 타격을 주고 머리를 제거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머리를 제거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디스토시드(혹은 프라지콴텔)라는 약을 딱 한 알만 먹으면 아무리 긴 기생충이라 할지라도 하루 정도면 박멸된다. 디스토시드는 원래 디스토마약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촌충에도 엄청난 효과가 있으니까.


하지만 약국에서 촌충의 조각을 보고도 회충약을 내미는 건, 디스토시드가 의사 처방약이기 때문이다.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내줄 수 있는 기생충약은 회충약이 유일하기에, 회충약이 기생충약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약사들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어떤 회충약은 ‘광범위 구충제’, 즉 한 알이면 모든 기생충을 박멸한다고 선전하고 있으니, 환자들 역시 회충약에 대해서만 알 뿐 디스토마약에 대해선 거의 모르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2004년 전국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에게 유행하는 요충을 제외하면 회충약에 잘 죽는 기생충은 극히 미미한 수준인 반면, 디스토마나 촌충은 낮게 잡아도 150만명 이상에게 감염되어 있단다. 게다가 간디스토마는 담도암 발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되어 있는 판국이니 이런 기생충 치료가 우선되어야 하건만, 사람들은 봄·가을로 회충약을 먹는 것으로 기생충에 대한 걱정을 끝내려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생충에 걸린 사람들이 병원에 가기보단 약국을 찾기 때문이지만, 디스토시드가 의사 처방을 받아야 하는 약이라는 것도 한 단초를 제공한다.


만일 디스토시드가 회충약처럼 일반약으로 분류되어 의사 처방 없이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지금처럼 쓸데없이 회충약을 먹는 일이 줄어들고, 현재 3%대를 넘나드는 기생충 감염률도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약은 의사가 처방하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고, 디스토시드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도 없으니 국민 건강 차원에서 디스토시드의 일반약 전환을 한번쯤 고려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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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에 관한 추억

곡식의 가루를 찌거나 익힌 뒤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을 떡이라고 한다. 곡식이 주원료니 주식이 쌀인 동아시아에서 발달했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대표적인 떡의 나라다. 낙랑의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데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떡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건 원시농경시대로 추정된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안 먹는다고 생각했고, 추석 땐 온 가족이 송편을 빚었다. 지금도 떡은 아이들 돌잔치를 비롯해 회갑연 등 각종 기념일에 없어선 안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떡은 대부분 좋은 의미, 즉 원하는 것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다음 말들을 보면 우리가 떡을 얼마나 숭상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림의 떡/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 양손의 떡/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주는 떡도 못 받아먹냐.


전남 강진군 강진읍의 한 떡방앗간 (출처 :경향DB)


 이러던 떡에 돈이 결부되면서 떡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진다. 이른바 ‘떡값’인데, 원래 이건 명절에 떡을 해서 먹으라고 돈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습에서 비롯됐다. 명절 때마다 공무원에게 지급한 ‘떡값’도 그 연장선이었으며, 결혼이나 이사처럼 좋은 일에 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준 것도 ‘떡값’이라 불렸다. 떡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나쁘게 만든 건 다음 사건이 계기였다. 3공화국에서 중앙정보부장과 비서실장 등 요직을 맡았던 이후락은 자신에 대해 부정축재 시비가 벌어지자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묻기 마련”이라고 해 화제가 됐다. 1980년 신군부가 부정축재자에 대해 조사할 당시 발표된 이후락의 재산이 194억원이었으니, 떡고물 치고는 좀 과하단 생각이 든다.


떡값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히 떡값에 열광하는 직업군으론 검사가 단연 최고다. 삼성 법무팀에 있다가 나와서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떡값을 돌리며 검사들을 관리했다고 증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또 안기부가 도청한 파일이 세상 밖으로 나온, 소위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선 삼성 측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명단에 있던 검사들은 그 뒤 법무장관, 검찰총장 등 고위직으로 승진해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떡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떡실신’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걸그룹 티아라의 기존 멤버들이 새 멤버를 괴롭히는 과정에서도 떡이 등장했다. 시중의 동영상을 보면 방송 도중 한 멤버가 커다란 떡을 새 멤버의 입에 쑤셔넣고, 다른 멤버들은 그걸 보면서 박장대소한다. 방송에서 떡먹기 시합을 하다 죽은 성우의 예를 생각하면 그게 과연 웃을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2년 전 정론지인 매경이코노미의 기사엔 떡에 관한 감동적인 기사가 실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0년대 바닷가 마을에 살던 한 소년은 떡을 좋아했다. 가난했던 그 소년은 잔칫집 일을 도와주고 난 뒤 주인이 싸주는 잔치떡을 거절하는데, 집으로 향하는 소년의 머릿속에선 “떡의 영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럴 거면 그 떡을 받지 왜 거절했을까 싶지만, 물 한 모금도 얻어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거역할 수 없었단다. 그때 떡을 받지 못한 게 한이 되었을까. 소년은 나중에 떡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랐고, 대통령이 된 뒤엔 어릴 적 못 이룬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청와대가 주관하는 행사에선 늘 떡이 등장하고, 선물도 죄다 떡이다. 지방이나 해외에 나갈 때도 떡을 싸갈 정도이고, 대통령 부인이 벌이는 한식 세계화 사업도 사실은 ‘떡 세계화’니, 가히 ‘떡대통령’이라 부를 만하다. 안타까운 건 그가 그렇게 떡에 집착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은 열심히 떡값을 챙겼고, 그 바람에 국민들이 떡실신 중이라는 것. 그래서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 그때 그 잔칫집 아주머니가 준 떡을 그냥 받았다면 떡보다 민생에 조금 더 집착하지 않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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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80년대 공안검사들은 정말 대단한 상상력을 지닌 분들이었다. 아주 사소한 범죄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배후를 캐냈다. 있는 배후를 캐내는 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거겠지만, 이들이 윗분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없는 배후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예컨대, 이건 내가 지어낸 예긴 하지만, 한 대학생이 길을 가다가 재채기를 했다고 치자. 보통 사람 같으면 코에 꽃가루 같은 게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말겠지만, 공안은 이 평범한 재채기에서도 건수를 찾아냈다. 극비문서를 동그랗게 만 뒤 재채기를 통해 전달했다고 가정하고 그를 잡아 족치고, 재채기를 할 때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도 접선자라며 붙잡아 온다. “여섯 사람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라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도 있는 마당이니, 이들과 수배자를 엮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결과 재채기 하나로 십 수 명이 연루된 거대한 조직범죄가 완성된다. 물론 그 배후는 북한이었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사형됐다는 소식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많은 공안 사건들이 다 이런 식이었다. 예를 들어 1987년 발생한 수지 김 사건은 남편인 윤모씨가 부부싸움 끝에 부인인 수지 김을 살해한 범죄였지만, 우리 공안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180도 바뀐다. 수지 김은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공작원으로 윤모씨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했다는 식으로. 그 결과 수지 김의 유족들은 졸지에 북한 공작원의 가족이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공안들의 상상력은 사회 곳곳에 미쳐,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란 가사가 김일성을 찬양한다며 <아침이슬>을 금지곡으로 만들었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 조장’,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의 나라, 즉 북한으로 가자는 거냐’는 게 금지곡이 된 이유였단다. 지금으로 봐선 어이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공안검사들은 있는 상상력, 없는 상상력을 다 짜냈을 거다. 



(경향신문DB)


 당시 공안들이 상상력이 지나쳐서 문제였다면, 요즘 검사들은 상상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서 문제가 된다.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금품이 오갔다면 그게 혹시 디도스 공격을 사주한 측에서 성공보수를 지급한 게 아닌가 의심할 만하지만, 우리 검사들은 그걸 “개인간의 돈거래”라고 단정하고 넘어가 버린다. 보통 디도스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려면 자금과 조직이 필수일 텐데, 우리 검사들은 “돈도 없는 말단 비서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고 단정 지을 뿐 배후가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는 모양이다. 그 결과 70, 80년대와 달리 대부분의 범죄가 배후가 없는 채로 일단락되는 중이다.



 상상력 부족의 절정은 불법사찰 수사였다. ‘BH 하명’이란 쪽지가 있다면 그 BH가 혹시 blue house, 즉 청와대가 아닌지 한번쯤은 물어볼 만도 한데, 무시한 걸 보면 그게 혹시 영화배우 이병헌의 약자인 걸로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쪽지에 ‘VIP 보고’라는 말이 적혀 있다면 공무원 조직에서 VIP가 뭘 뜻하는지, 혹시 대통령은 아닐지 생각해 볼 만도 한데, 그게 음식점 빕스를 쓰다 만 거라고 본 모양이다. 물론 권재진 민정수석에게 서면으로 “불법사찰과 관계있느냐”고 물어보는 용기를 내긴 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없다”는 답변을 그냥 믿고 무혐의 처리해 버리는 걸 보면, 상상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이렇게 상상력이 없으니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 발언을 보고도 BBK와 대통령이 무관하다는 수사결과가 나오고, 내곡동 사건도 전원 무혐의 처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과거 검사들처럼 없는 배후를 만들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배후란 게 원래 여간해선 밝혀지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긴 해도 검사의 상상력이 보통 사람의 그것에 턱없이 못 미치니, 검사들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거 아닌가. 검사를 임용할 때 상상력을 측정하는 시험도 포함시키자. 그리고 검사들에게 의무적으로 1년에 몇 시간이라도 상상력 교육을 시행하자.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검사들도 배후를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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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앉은 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를 단 의자.” 휠체어에 대한 네이버의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어려운 나라이다. 길을 만들 때 장애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탓인데, 뉴스를 검색해보면 “휠체어장애인 배려 없는 여수박람회장”이라든지, 곳곳에 놓인 장애물 때문에 “수원 팔달구에서 불과 550m를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48분이나 걸렸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계단은 그 장애물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특히 지하철역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살인기계’로 불릴 만큼 악명을 떨쳤는다. 이게 문제가 되어 휠체어리프트는 엘리베이터로 바뀌었지만, 2년 전 대전 지하철역에선 한 장애인이 엘리베이터 통로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향신문DB)



장애물은 계단만이 아니었다. 서울대병원 인턴이던 홍순범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자 휠체어를 타고 병원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길이 너무 가팔라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단다.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 밖에 나가긴 했지만, 곳곳에 있는 장애물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건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자신은 언제라도 걸을 수 있었으니 어찌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자신이 진짜 장애인이었다면 그 시선을 받는 느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런 시선의 원인은 남을 쳐다보는 게 예의가 아니란 걸 의외로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워낙 낯선 광경이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집 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요즘은 전동휠체어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 2005년부터 정부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구입할 경우 최대 167만원을 지급하고 건강보험도 적용해 주고 있는데,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보단 배터리로 가니 훨씬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유지 보수비가 많이 들고 곳곳에 산재된 턱 때문에 차도로 다녀야 하니 교통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전동휠체어라고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것도 불쾌할 수 있겠고, 얼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원이다. 그만 물어봐라”라고 써 붙이고 다녔다는 한 장애인의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전동과 수동 모두에게 적용되는 불편함이다. 그러니 휠체어가 아무리 좋아봤자 자기 발로 걷는 것만 못한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휠체어를 선택하는 분들이 있어 화제다. 현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씨가 그 예. 저축은행에서 4억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얼마 전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게 휠체어라는 네이버의 말이 맞다면 김씨는 이에 준하는 질병을 앓고 있어야 하건만, 그가 밝힌 병명은 고혈압과 편두통이 고작이었다. 편두통은 머리가 아픈 병, 편두통으로 가끔 응급실을 가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발작이 심하게 올 때가 아니면 걷는 데 지장이 없단다. 고혈압 역시 그로 인해 혈관이 터진 게 아니라면 굳이 휠체어를 탈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휠체어를 탔을까? 김씨의 말이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만큼 양형에 고려해 달라.” 그랬다. 김씨는 그냥 아파 보이기 위해, 그래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거였다. 김씨 말고도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총수가 비리로 조사를 받으러 갈 때마다 휠체어를 타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러니 네이버 사전의 휠체어 설명엔 다음 말이 추가되어야 한다. “비리 혐의로 잡혀가게 생긴 고위 인사들이 동정심을 받기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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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님이시죠? 문대성입니다.”

그의 이름을 듣고도 별로 동요하진 않았다. 그 문대성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연결지어 생각하기엔 너무 오랜 세월 문대성을 잊고 살았으니까. 그저 변에서 몇십센티짜리 기생충이 나왔다든지, 아니면 아들의 항문에서 요충이 나온 중년 남성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는 좀 서운했나보다.

“저.. 태권도 선수 문대성인데요, 2004년 아테네에서...”

그 말을 듣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포츠스타한테 전화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허공에다 인사를 하면서 영광이라고 했더니 그는 그제야 기분이 좋아진 듯 호쾌하게 웃었다.

“근데 무슨 일이신지..?”

“좀 뵙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다음날 오후, 난 문대성과 연구실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좀 더 잘생겼고, 체격도 훨씬 컸다.

“제가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데요”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논문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요. 그런데 주위에서 선생님을 추천하더군요. 그래서, 좀 도와주십사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석사논문은 쓰셨으니까 박사과정에 들어오신 거 아닌가요?”문대성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게요, 사실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아는 학생이 써준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에 난 적잖이 당황했다.

“아, 제가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그가 왜 나를 택했는지 궁금했지만, 얼마나 어려우면 생면부지의 나같은 사람을 찾아왔을까를 생각하니 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주제를 정해야죠. 논문은 주제만 정하면 70%는 다 해결된 겁니다.”

“선생님은 기생충학자신데, 태권도에 대해서 쓰실 수가 있습니까?”

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죠. 연구라는 건 재료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태권도와 기생충도 얼마든지 연결을 지을 수 있지요.”

난 그에게 참굴큰입흡충에 대해 설명했다. 신안지방의 굴에는 참굴큰입흡충이라는 게 있는데, 사람은 그 굴을 먹고 걸린다, 크기도 아주 작고 아직까지 인체에 큰 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기생충을 이용해서 한번 연구를 해보자...

“참굴큰입흡충을 태권도 선수 10명에게 먹인 다음 며칠 만에 이 기생충이 완전히 빠져나가는지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일반인 10명에게도 참굴큰입흡충을 먹이고, 이 기생충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이 둘을 비교해서 태권도라는 운동이 면역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면, 그 자체로 좋은 논문이 될 수 있죠.”

문대성은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아, 그렇군요!”

“기생충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조사할테니, 문선생님은 사람을 모으고 기생충 먹이는 걸 도와주세요.”

문대성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 마이소. 제 말 한마디면 열명 아니라 백명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이 호언장담한대로 문대성은 태권도과 졸업생을 150명이 넘게 모았고,

일반인들도 100명 넘게 몰렸다.

그들은 문대성의 학위논문을 위해 기꺼이, 신안군에서 나온 굴을 초장에 찍어 먹었고,

그 뒤부터 이틀마다 대변을 나한테 보내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태권도는 면역성을 약간 증강시켰다.

대변검사로 충란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충체가 우리 몸에 머무르는 시간을 측정한 결과

일반인에서는 두달 가까이-평균 56일-대변에서 충란이 나온 반면

태권도 선수들은 평균 37일만에 충체를 모두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주, 2주와 4주째 혈액을 채취해 분석을 한 결과

면역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T세포의 숫자가 태권도 선수들에서 훨씬 더 많았고,

여기 관여하는 싸이토킨의 농도도 유의하게 높았다.

 

 

미흡하긴 해도 이 자료를 가지고 박사논문을 써보라고 했다.

문대성은 난감해했다.

“어려울 거란 건 압니다. 일단 써오기만 하세요. 제가 다 고쳐드리겠습니다.”

문대성이 써온 박사논문의 서론은 이랬다.

“참굴큰입흡충은 굴애 사는 기생충이다. 먹어도 헤가 업다. 그래서 태권도 선수들애개 먹었다.

좀 더 빨리 변검사가 안나왔다....”

그가 써온 논문을 구겨서 버리려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처음 써본 논문인데 그러면 안되지,란 생각에 책상 위에 잘 놔뒀다.

논문을 쓰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하루 동안 더 손을 본 후 택배로 문대성에게 보냈다.

그 이후엔 그가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데없이 내가 심사위원에 위촉이 됐으니까.

심사위원의 역할은 학위생을 까는 건데, 내가 도와준 연구를 스스로 까는 것도 웃겨서 가만히 있었다.

거기에 더해 누가 질문을 할 때마다 문대성을 대신해서 답변을 해줬다.

그렇게 두 번의 심사가 끝난 후 문대성은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 논문의 내용은 매스컴을 통해 공표됐다.

“태권도 배우면 기생충 안걸린다-----올림픽 금 문대성 씨 주장”

그 기사가 나간 후 전국의 태권도장은 몰려드는 아이들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 뒤 문대성은 동아대 교수로 임용됐고, 거기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교수로 임용된 지 6년간 동아대 태권도학과는 8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그는 해마다 설이면 내게 신안군에서 나온 굴을 보내주는 기특한 제자였다.

몇달 전 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박사논문을 제 손으로 써보니 연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요즘엔 가르치고 연구하는 재미로 산다고.

전화 말미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참, 새누리당에서 저를 국회의원에 공천한다고 하더라고요.

난 연구와 강의만 해도 바쁘니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문대성은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구에 잔뼈가 굵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한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그는, 이건 순전히 추정이지만, 다른 이에게 대필을 부탁했고,

대필을 해준 그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대필자는 다른 이가 쓴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심지어 오자까지도-문대성에게 줬고,

그 학위를 발판으로 문대성은 동아대 교수가 된다.

그는 교수가 된 지 6년만에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데,

이건 교수 자리가 자기 힘으로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거기에 별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자기 힘으로 교수가 된 이들도 공천을 준다면 좋아라 달려들긴 한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닥친 표절시비. 그는 정말 억울했을 거다.

그 자신은 남의 논문을 베낀 게 아니었으니까.

대필자란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지역감정 덕분에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동아대에는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의 학위가 가짜란 걸 모두 아는 까닭에 앞으로 그가 대학에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4년 후, 인기가 그전보다 많이 떨어진 그가

또다시 부산에서 공천을 받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게 다, 그가 나한테 전화를 안한 까닭이다.^^

 

 

* 결론 부분을 보면 글쓴이가 굉장히 과대망상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대선에 나가겠다고 한 것도 농담이 아니었고, 비례대표 32번도 진짜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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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보이의 고백

1. 나경원

출근을 하려고 태조산 고개를 넘던 중

갑자기 주혈흡충과 나경원에 관한 글을 쓰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퇴근 후 컴퓨터에 앉아 글을 완성했고, 두어 번 읽어본 후 신문사에 보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02110185&code=990000


글을 쓸 때 제일 신경쓰는 대목은 바로 고소를 안 당하는 것.

게다가 상대가 고소의 달인인 나경원이라면 충분히 몸을 사릴 만했고

글을 읽어본 아내 역시 “이러다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라며 걱정을 한다.

하지만 난 믿는 게 있었다.

내 어머니가 나경원 어머니와 약간의 친분이 있다는 거.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니, 저 나경원을 기생충에 비유했어요.”

“....왜 그랬니. 안그래도 (나경원의 어머니가) 요즘 몸이 안좋은데.”

“죄송해요. 근데 저 고소당하면 저랑 같이 가서 빌어주실 거죠?”“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글이 나가고 난 뒤 하루가 지나도록 고소고발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건 물론 내가 듣보잡인 덕분이지만,

난 그냥 어머니 덕분으로 생각하련다.

2. 강용석

엊그제 어머니 댁에 잠깐 들렀을 때,

쌍용자동차 건물에 현수막이 크게 드리워져 있는 걸 봤다.

강용석 무소속 출마 어쩌고 하는 내용으로,

그 현수막은 길가는 사람을 한 일분 가량 서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 어머니는 불행히도 강용석의 지역구에 사신다.

아들은 작년 말까지 전여옥 지역구였으니 우리 모자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했다.)

임기도 얼마 안남은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해놓고선

그 다음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는 게 과연 정상적일까?


스파르가눔이란 기생충이 있다.

개나 고양이의 기생충이라 사람에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유충 상태로 여기저기를 다니며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그놈.

강용석을 볼 때마다 늘 스파르가눔 생각을 했다.

지역구민의 대표가 된다는 사람이 이사람 저사람에게 고소를 일삼으며

인지도를 쌓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