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에 관한 추억

곡식의 가루를 찌거나 익힌 뒤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을 떡이라고 한다. 곡식이 주원료니 주식이 쌀인 동아시아에서 발달했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대표적인 떡의 나라다. 낙랑의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데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떡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건 원시농경시대로 추정된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안 먹는다고 생각했고, 추석 땐 온 가족이 송편을 빚었다. 지금도 떡은 아이들 돌잔치를 비롯해 회갑연 등 각종 기념일에 없어선 안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떡은 대부분 좋은 의미, 즉 원하는 것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다음 말들을 보면 우리가 떡을 얼마나 숭상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림의 떡/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 양손의 떡/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주는 떡도 못 받아먹냐.


전남 강진군 강진읍의 한 떡방앗간 (출처 :경향DB)


 이러던 떡에 돈이 결부되면서 떡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진다. 이른바 ‘떡값’인데, 원래 이건 명절에 떡을 해서 먹으라고 돈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습에서 비롯됐다. 명절 때마다 공무원에게 지급한 ‘떡값’도 그 연장선이었으며, 결혼이나 이사처럼 좋은 일에 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준 것도 ‘떡값’이라 불렸다. 떡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나쁘게 만든 건 다음 사건이 계기였다. 3공화국에서 중앙정보부장과 비서실장 등 요직을 맡았던 이후락은 자신에 대해 부정축재 시비가 벌어지자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묻기 마련”이라고 해 화제가 됐다. 1980년 신군부가 부정축재자에 대해 조사할 당시 발표된 이후락의 재산이 194억원이었으니, 떡고물 치고는 좀 과하단 생각이 든다.


떡값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히 떡값에 열광하는 직업군으론 검사가 단연 최고다. 삼성 법무팀에 있다가 나와서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떡값을 돌리며 검사들을 관리했다고 증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또 안기부가 도청한 파일이 세상 밖으로 나온, 소위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선 삼성 측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명단에 있던 검사들은 그 뒤 법무장관, 검찰총장 등 고위직으로 승진해서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떡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떡실신’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걸그룹 티아라의 기존 멤버들이 새 멤버를 괴롭히는 과정에서도 떡이 등장했다. 시중의 동영상을 보면 방송 도중 한 멤버가 커다란 떡을 새 멤버의 입에 쑤셔넣고, 다른 멤버들은 그걸 보면서 박장대소한다. 방송에서 떡먹기 시합을 하다 죽은 성우의 예를 생각하면 그게 과연 웃을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2년 전 정론지인 매경이코노미의 기사엔 떡에 관한 감동적인 기사가 실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0년대 바닷가 마을에 살던 한 소년은 떡을 좋아했다. 가난했던 그 소년은 잔칫집 일을 도와주고 난 뒤 주인이 싸주는 잔치떡을 거절하는데, 집으로 향하는 소년의 머릿속에선 “떡의 영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럴 거면 그 떡을 받지 왜 거절했을까 싶지만, 물 한 모금도 얻어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거역할 수 없었단다. 그때 떡을 받지 못한 게 한이 되었을까. 소년은 나중에 떡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랐고, 대통령이 된 뒤엔 어릴 적 못 이룬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청와대가 주관하는 행사에선 늘 떡이 등장하고, 선물도 죄다 떡이다. 지방이나 해외에 나갈 때도 떡을 싸갈 정도이고, 대통령 부인이 벌이는 한식 세계화 사업도 사실은 ‘떡 세계화’니, 가히 ‘떡대통령’이라 부를 만하다. 안타까운 건 그가 그렇게 떡에 집착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은 열심히 떡값을 챙겼고, 그 바람에 국민들이 떡실신 중이라는 것. 그래서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 그때 그 잔칫집 아주머니가 준 떡을 그냥 받았다면 떡보다 민생에 조금 더 집착하지 않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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