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과 학벌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동양인 가드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 팀의 제레미 린이 그 주인공. 미국으로 건너간 대만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린은 '동양인은 안된다'는 편견을 깨며 연일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더 화제가 되는 건 그가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의 수재라는 점이다. 그게 알려지고 나니 사람들의 찬사가 더 증폭된다. 패스 하나를 할 때마다 "역시 하버드 출신은 다르다" "머리가 좋으니 플레이가 창의적이다"라는 감탄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농구 머리와 공부 머리는 엄연히 다르다. 현재 NBA에서 최고의 가드라는 평을 듣는 크리스 폴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선수지만, 그의 플레이는 제레미 린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다. 그럼에도 린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하버드대 출신의 가드답게 경기 운영이 영리했다"는 내용이 들어가는 건, 학벌에 대한 선망이 반영된 탓이다.

이런 편견은 특히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좋은 대학을 나온 이가 아주 평범한 일, 예를 들어 밥값을 계산한다든지 하면 찬사가 쏟아진다. "역시 머리가 좋으니 계산도 잘한다"는 것. 그 친구가 아주 바보 같은 일을 해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좋은 친구이니 일부러 저런 행동을 한 것"이라든지 "미래를 위한 고도의 노림수"라는 얘기를 듣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건 내 얘기이기도 하다. 대학을 잘 간 것 이외에 별다른 능력을 보여준 게 없지만, 남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일부러 저렇게 말을 어눌하게 하는 거야." "우릴 즐겁게 하려고 아는 게 없는 척 하는 걸 거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대학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까 학벌이 반드시 능력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학자들은 졸업 후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지, 꼭 좋은 대학을 나온 분들만은 아니니 말이다.



요 몇 달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용석이 결국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에게 현역 기피 의혹을 제기한 게 허위사실로 드러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저격수가 쏘는대로 다 맞겠냐"며 억울함을 표시했지만, 그가 쏜 총알 중 제대로 맞은 게 없다는 점에서 '저격수'란 호칭은 어울리지 않으며,

'총기난사범'이란 진중권의 표현이 더 사실에 가깝다. 그가 총질을 시작한 건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했던 성희롱 발언이 계기였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고소를 당해 유죄까지 선고받는데, 그 과정에서 매스컴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며 쾌감을 느낀다. 그 후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허위학력 의혹을 제기했고, 안철수 전 원장을 위장전입 혐의로 고소했으며, 몇 달 후엔 안 전 원장을 주식 저가취득 혐의로 다시 고소했다. 

나중에 취하하긴 했지만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한 건 그 백미. 사람들은 그의 좌충우돌을 조롱했지만, 강용석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즐거울 뿐이었다. 좀 특이한 사람들만 나오는 프로그램인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고발 집착남'으로 출연한 것만 봐도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강용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그를 '보수의 아이콘'이라며 2017년 대통령 후보로 꼽기까지 한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적도 다 '미래를 위한 포석'이었다나 뭐라나. 이건 그가 공격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진보 쪽의 거물이었기 탓도 있지만, 서울법대와 하버드법대를 나온 그의 화려한 학벌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속지 말자. 머리와 농구가 아무 관계가 없듯이, 학벌이 좋다고 정치를 잘하는 건 결코 아니다. 게다가 강용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 단지 자기 인지도에만 집착하는 또라이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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