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 공안검사들은 정말 대단한 상상력을 지닌 분들이었다. 아주 사소한 범죄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배후를 캐냈다. 있는 배후를 캐내는 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거겠지만, 이들이 윗분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없는 배후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예컨대, 이건 내가 지어낸 예긴 하지만, 한 대학생이 길을 가다가 재채기를 했다고 치자. 보통 사람 같으면 코에 꽃가루 같은 게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말겠지만, 공안은 이 평범한 재채기에서도 건수를 찾아냈다. 극비문서를 동그랗게 만 뒤 재채기를 통해 전달했다고 가정하고 그를 잡아 족치고, 재채기를 할 때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도 접선자라며 붙잡아 온다. “여섯 사람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라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도 있는 마당이니, 이들과 수배자를 엮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결과 재채기 하나로 십 수 명이 연루된 거대한 조직범죄가 완성된다. 물론 그 배후는 북한이었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사형됐다는 소식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많은 공안 사건들이 다 이런 식이었다. 예를 들어 1987년 발생한 수지 김 사건은 남편인 윤모씨가 부부싸움 끝에 부인인 수지 김을 살해한 범죄였지만, 우리 공안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180도 바뀐다. 수지 김은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공작원으로 윤모씨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했다는 식으로. 그 결과 수지 김의 유족들은 졸지에 북한 공작원의 가족이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공안들의 상상력은 사회 곳곳에 미쳐,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란 가사가 김일성을 찬양한다며 <아침이슬>을 금지곡으로 만들었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 조장’,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의 나라, 즉 북한으로 가자는 거냐’는 게 금지곡이 된 이유였단다. 지금으로 봐선 어이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공안검사들은 있는 상상력, 없는 상상력을 다 짜냈을 거다. 



(경향신문DB)


 당시 공안들이 상상력이 지나쳐서 문제였다면, 요즘 검사들은 상상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서 문제가 된다.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금품이 오갔다면 그게 혹시 디도스 공격을 사주한 측에서 성공보수를 지급한 게 아닌가 의심할 만하지만, 우리 검사들은 그걸 “개인간의 돈거래”라고 단정하고 넘어가 버린다. 보통 디도스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려면 자금과 조직이 필수일 텐데, 우리 검사들은 “돈도 없는 말단 비서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고 단정 지을 뿐 배후가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는 모양이다. 그 결과 70, 80년대와 달리 대부분의 범죄가 배후가 없는 채로 일단락되는 중이다.



 상상력 부족의 절정은 불법사찰 수사였다. ‘BH 하명’이란 쪽지가 있다면 그 BH가 혹시 blue house, 즉 청와대가 아닌지 한번쯤은 물어볼 만도 한데, 무시한 걸 보면 그게 혹시 영화배우 이병헌의 약자인 걸로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쪽지에 ‘VIP 보고’라는 말이 적혀 있다면 공무원 조직에서 VIP가 뭘 뜻하는지, 혹시 대통령은 아닐지 생각해 볼 만도 한데, 그게 음식점 빕스를 쓰다 만 거라고 본 모양이다. 물론 권재진 민정수석에게 서면으로 “불법사찰과 관계있느냐”고 물어보는 용기를 내긴 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없다”는 답변을 그냥 믿고 무혐의 처리해 버리는 걸 보면, 상상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이렇게 상상력이 없으니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 발언을 보고도 BBK와 대통령이 무관하다는 수사결과가 나오고, 내곡동 사건도 전원 무혐의 처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과거 검사들처럼 없는 배후를 만들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배후란 게 원래 여간해선 밝혀지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긴 해도 검사의 상상력이 보통 사람의 그것에 턱없이 못 미치니, 검사들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거 아닌가. 검사를 임용할 때 상상력을 측정하는 시험도 포함시키자. 그리고 검사들에게 의무적으로 1년에 몇 시간이라도 상상력 교육을 시행하자.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검사들도 배후를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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