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 내내 군부독재와 싸워온 투사였다. 1979년 그는 뉴욕타임스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은 부산과 마산의 대규모 시위, 즉 부마항쟁의 계기가 됐다. 유신정권은 그로부터 한 달을 못 넘기고 막을 내린다. 그 뒤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과도 대립각을 세우던 YS는 난데없이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뜻을 같이하게 되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대통령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싫었을 사람들과 한방을 쓰게 만드는 것, 권력욕이란 이런 걸 가능하게 해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거짓말을 잘한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다른 정치인보다 DJ가 거짓말을 특별히 자주 한 건 아니었겠지만, 군사독재 세력이 그에게 빨갱이와 더불어 거짓말쟁이의 이미지를 덧씌웠기에 그렇게 믿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이야 어떻든 그런 세간의 여론이 있다면 거짓말을 자제함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도 있겠지만, DJ는 그러지 못했다. 19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했던 그는 YS의 실정으로 자신이 될 수도 있겠다 싶자 다시 정치에 복귀함으로써 큰 거짓말을 했고, 대통령이 되는 데 꼭 필요했던 김종필과의 ‘DJP 연합’을 이루기 위해 평생의 소신이던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제 개헌을 약속한다. 물론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고, DJ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분으로 남아 있다. 거짓말쟁이의 낙인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권력욕이 가진 대단한 힘이다.


이명박 현 대통령은 오랜 기간 현대건설에서 일했고 평사원으로 시작해 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업이란 영리추구가 목적인 곳, 현 대통령도 기업에 계시는 동안 돈에 대한 사랑을 무럭무럭 키웠을 것이다. 혹자는 3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분이니 돈에 욕심이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우표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우표 한 장에 벌벌 떠는 것처럼, 돈에 대한 대통령의 사랑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찡하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이 발견된다. 자칫하면 대통령이 못될지도 모르는 험난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은 당선만 되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돈 사랑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재산헌납 약속에 까무러쳤으리라. 돈을 가장 사랑하는 분에게 돈을 버리겠다고 약속하게 만드는 것만 봐도 권력욕은 정말이지 무소불위다.


박근혜 후보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외환위기로 박정희 향수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던 1998년이었고, 경북 지역의 맹목적 지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얻은 것도 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래서 박근혜는 정치를 하는 내내 ‘아버지’를 외치는데, “박근혜에게 정치는 효도이자 제사”라는 김어준의 말은 정말이지 핵심을 찌른다. 심지어 박근혜는 명백한 군사쿠데타인 5·16을 ‘최선의 선택’이라 말하고,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그래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한 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억지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아버지가 한 일은 모조리 옳다는 것. 그래서 난 지난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박근혜가 허리를 90도로 숙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그녀가 사상 처음으로 그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한 거였으니까. 과거사에 대한 그녀의 완강한 태도가 지지율을 떨어뜨렸다는 위기감이 사과를 한 이유겠지만, 단군 이래 최대의 효녀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하다니, 정말이지 권력욕은 미션 임파서블인가 보다. 다른 대통령들처럼 그녀가 그 대가를 받을지는 미지수지만.



과거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 는박근혜 후보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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