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신종발견

 

 

경향신문에 글을 한편 썼다.

오마토코이타는 그린랜드같은 추운 지방에 사는 기생성 물벼룩으로,

상어의 시신경을 먹어 눈을 멀게 한다.

내 글은 이 기생충을 국정원에 억지로 갖다붙인 내용인데,

설득력 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었다.

그런 부분을 지적해 줬다면 좋았을텐데 한분은 이런 댓글을 남기셨다.

 

 

 

 

 

 

 

 

오마토코이타같은 일본 학명 기생충만 소개하지 말고, 너도 스스로 신종을 찾아

한국 이름을 붙여보라는 준엄한 질타.

하지만 이분이 모르는 게 있다.

남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신종을 발견한 적이 있다는 걸.

다음 문헌을 보자.

 

 

이 논문의 주저자로 나오는 Seo M이 바로 나,

내가 기특한 건 새롭게 발견한 이 기생충에다 내 이름을 붙이지 않고 koreana라고 했다는 것.

개인의 명성보단 국가의 명성을 택한 점도 아름답지만,

이때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룹 koreana 멤버 중 한 분의 딸이 바로 클라라라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 기생충이 그다지 중요한 의미가 없다보니

아무도 이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발견의 중요성은 인용빈도로 표시되는데,

이 논문의 인용횟수는 겨우 4회밖에 안된다 (그나마도 다 스스로 인용한 것일 뿐, 다른 이는 인용하지도 않았다)

 

 

 

놀라운 점은 내가 발견한 신종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것.

제부도의 갑각류에서 기생충을 뒤지던 중 문헌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기생충을 발견했고

그 기생충의 이름을 ‘제부도마리트레마’라고 붙였다.

 

 

개인의 명성을 탐하기보다는 제부도란 지명이 세계에 알려지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단 4회 인용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스스로 인용했다는 점에서 보듯

이 기생충 역시 세인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그냥 묻히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의미있는 업적이라는 게 우리나라 이름이 붙은 신종을 무작정 찾아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기존에 있는 기생충을 가지고 훌륭한 일을 함으로써 좋은 학술지에 싣는 것이

남들이 관심도 없는 신종을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알아주는 일이라는 거다.

물론 신종발견이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엄기선 교수님은 인간에게 중요한 Taenia란 기생충의 신종을 발견해 ‘아시아조충’ (Taenia asiatica)이라 이름붙였다.

이 논문으로 인해 엄교수님은 세계기생충학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셨다.

 

 

 

1993년 췌장염 환자에서 발견된 기생충은 세계 어느 문헌에도 없는 신종이었기에

서울대 팀은 그 기생충을 돌아가신 서병설 교수님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Gymnophalloides seoi 라고 이름붙였다.

 

 

1963년 서울대 정원을 달리다 붙잡혀 해부된 쥐에서 발견된 기생충은

‘서울주걱흡충’으로 이름붙여졌고,

1982년 인체감염이 발견되면서 각광을 받았다.

뱀을 매개로 감염되는 이 기생충 덕분에 외국 사람들은 한국인이 정력증강을 위해 뱀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이렇듯 우리나라 기생충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연구나 하지"라고 욕하기 전에 "연구는 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보고 욕하면 좋겠다.

그분께 질문. "저...신종 두번이나 발견했으니 이제 선동 좀 해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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