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합의가 싫어요

 

문제. 다음에 알맞은 형량을 보기에서 고르시오.

피고인은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데다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 죄질이 나쁘므로 ( )를 선고한다.’

 

1) 무죄

2) 집행유예

3) 징역형, 실형

4) 무기징역

5) 사형

 

상습적? 죄질이 나빠? 이런 수식어를 본 이라면 4, 혹은 3번을 고르겠지만,

법은 그리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누구나 답을 맞출 수 있다면 아무나 판사를 시키지,

뭐하러 어려운 시험을 보게 하겠는가?

놀랍게도 답은 ‘2번 집행유예.

, 이쯤해서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보자. MBN 기사다.

[경기 수원의 한 병원에서 수술실 실장으로 근무한 45살 임 모 씨.지난 2015년부터 20대 동료 여직원들을 성추행하기 시작했습니다.수술 준비실 탁자에 앉아 있던 실습생 22살 김 모 씨를 끌어안은 채로 들어 올리면서 신체접촉을 했습니다.심지어 부하직원 26살 여성 이 모 씨에게는 다리를 못 움직이게 한 채로 강제로 어깨를 잡아당겨 입맞춤했습니다.임 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수술을 마치고 나온 여성 환자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지난 5월과 6, 마취가 덜 깨 침대에 누워 있던 여환자에게 다가가 수술복 바지 안에 손을 넣고 더듬은 겁니다.1)]

 

그러니까 피고인은 남자 간호사였다.

상식적으로 의료인의 성범죄는 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게 맞다.

의료인은 다른 직종보다 성범죄에 대한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처벌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위 범죄의 피고인은 상습범이다.

동료 간호사는 물론 환자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마취가 덜 풀려 몽롱한 상태인 여자환자를 더듬는 건 해도해도 너무한, 파렴치한 행위다.

게다가 성범죄의 경우 재범률이 굉장히 높은 범죄인만큼,

다시 사회로 나온 그가 아무 짓도 안하고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징역 2, 집행유예 3을 선고했는데,

덕분에 여성 환자들은 수술을 받을 때마다 이 병원에 그 간호사가 근무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

                                                            이건 의사부자의 성추행

 

그래도 이해가 안간다.

집행유예를 내릴 거면 죄질이 나쁘다는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지 않을까.

이쯤해서 해당 판사가 도대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알아보자.

다만, 피해자들과 모두 합의해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2)

그랬다. 그놈의 합의가 문제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성범죄자들은 갖은 수를 쓰며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려고 하며,

피해자들은 귀찮아서 혹은 안해줬다가 더 큰 해꼬지를 당할까봐 등의 이유로

합의서에 서명을 해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보자.

가해자의 부모들은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와 합의를 종용했는데,

워낙 많은 인간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학교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 경우 학교에서 피해자를 보호해주는 게 상식에 부합하지만,

학교 측은 피해자에게 자퇴를 종용하는 아름다운 배려를 함으로써

해당 학생은 여러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여기에 피해자의 아버지가 피해자 몰래 합의금을 받아

죄다 술값으로 썼다는 미담도 추가되는데 (합의금이 5천만원이었다나)

여기서 보듯 합의하면 형을 깎아주는 관행은 피해자로 하여금 2차 피해를 유발하며,

음주자를 관대히 처벌하는 심신미약,

항소하면 무조건 형을 깎아주는 항소미약(이건 내가 그냥 만든 말이다)과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한숨이 나오게 하는 3대 악습이다.

                                                    이건 당시 가해자 부모가 한 말이다

 

판사들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판사들이 합의 자체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를 괴롭혀서 합의하는 작태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죄질이 나쁘지만 피해자와 합의했으므로

죄질이 나쁜데다 피해자를 괴롭혀 합의를 종용하기까지 했으니로 바뀌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1) '마취된 틈타'여환자 성추행한 남자간호사, MBN 2017-10-02

2) 마취환자 성추행한 남자간호사에 집행유예...‘피해자와 합의 고려’, 서울경제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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