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넣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완소남’이란 믿어지지 않는 단어가 뜬다. 요리하는 사진을 보고 경향신문 기자가 붙여준 찬사인데, 그 사진만 본다면 내가 아주 가정적인 남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요리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는 데다 남편으로서 가져선 안될 치명적인 단점까지 있으니, 완소남이란 호칭은 말이 안된다. 그 단점이란 화나는 일이 있으면 혼자 삐쳐서 말을 안 해버린다는 것. 예컨대 고등학교 때 학교에 입고 갈 바지가 없다는 이유로 사흘 동안 말도 안 한 채 TV만 봐서 어머니를 속상하게 만든 적이 있다. 아들이 입을 바지가 없는데 어머니는 대체 뭘 하셨냐는 일종의 시위였는데, 바지를 사달라고 졸랐으면 될 걸 그런 식으로 파업을 하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이런 성격은 어른이 된 뒤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누구랑 사소한 다툼이 있는 경우 그를 피해 다니는 전략으로 일관했으니 말이다. 그게 1년을 지나 2년까지 갈 때도 있었는데, 그도 피곤하겠지만 그러는 나 역시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아내와 말을 하다 기분이 상하면 내 방에 틀어박혀 며칠간을 누에고치처럼 침잠하곤 했다. 대화로 풀면 간단한 것을 삐쳤다고 말을 안 하는 건 최악의 대응방법인데, 그럼에도 내가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은 매번 아내가 이런 상황을 못 견딘 나머지 먼저 대화를 시도해 준 덕분이었다. 

며칠 전에도 아내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바람에 된통 야단을 맞았는데, 스스로는 잘못에 비해 야단을 많이 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고, 결국 삐친 채 이틀간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아내 입장에서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을 텐데, 그래도 싸움이 장기화되지 않고 화해를 하게 된 계기는 셋째날 아침 아내가 직장으로 찾아와 대화를 요청한 덕분이다. 아내의 다른 면도 사랑하지만, 난 아내의 이런 관대함을 특히 더 사랑한다. 

MBC 사장 김재철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를 징계하고 정치적 발언을 한 연예인을 출연 금지시키는 등 사장 취임 후 2년 만에 MBC를 완벽하게 망가뜨렸기 때문은 아니다. 

경남 사천 출신에 고려대를 나온 덕에 낙하산을 타고 MBC 사장이 된 그였으니, 정권에 충성하는 건 그로서는 당연한 도리였을 것이다. 내가 그를 눈여겨본 건 그에게 나랑 비슷한 점이 있어서였다. 그는 나처럼 잘 삐치고, 일단 삐치면 대화를 거부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경향신문DB



취임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큰집에서 (김재철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해서 “MBC 좌파 대청소”를 할 수 있었다는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으로 MBC 노조가 39일간 파업을 한 적이 있다. 파업이 일어나면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고, 해명할 게 있으면 해명하는 게 사장의 도리건만, 김재철은 노조와 대화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심지어 출근조차 안 한 채 파업을 수수방관했다. 심지어 고향에 내려가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하는 짓이 나랑 똑같은지 모르겠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변한 게 없다. “공영방송 MBC가 MB씨의 MBC로 전락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된 MBC 파업으로 <뉴스데스크>가 제대로 방영되지 않고 <무한도전>이 결방되는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김재철은 또 혼자 삐쳐서 어디론가 잠적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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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사장님, 어디 계신 거예요. 제발 출근 좀 해주세요”라며 애타게 김재철을 찾고 있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일본에 건너가 패션쇼를 봤다는 설도 있던데, 신기한 건 그 와중에도 그가 노조를 ‘명분 없는 불법파업’이라며 검찰에 고소를 한 것이다. 정말 사장으로서는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내 아내를 MBC 사장에 앉혀 달라. 전문성이 없기는 김재철과 막상막하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최소한 대화하려는 노력은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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