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적인 의사의 희생은 포장되어 의료계를 망친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소말리아 해적에게 죽을 뻔한 석선장을 수술해 살리고,

북한군 장교를 수술해서 살린(더 정확히는 살릴)

국민영웅 이국종 교수가 의료계를 망치고 있다?

1년에 4번 집에 가고, 한쪽 눈이 실명위기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분,

그러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해 빚만 쌓인 분,

이쯤되면 의료계의 테레사수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 도발적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저 글을 쓴 분이 의사였으니, 이국종 교수에 대한 질투의 차원인 것일까?

그분의 마음속에 들어가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질투는 절대 아니라는 데 5만원 정도는 걸 수 있다.

질투는 내가 저렇게 살고 싶은데 살지 못해. 배아파!”일텐데

의사들 중 이국종 교수처럼 살고픈 이가 과연 있을까 싶어서다.

그렇다면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의사들이라면 알고 있다.

저 말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던 이국종 교수

 

만일 이국종 교수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석해균 선장이 총을 맞았을 때, 우리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수송팀: 그런데 환자를 어디로 모셔가죠?

정부: 큰병원, 무조건 큰병원 가야지. 내가 한번 연락해볼게.

큰병원1: 그게요, 저희는 총상 전문가가 없습니다. 수술을 하려면 할 수는 있을텐데

처음 해보는 수술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또 수술을 뒷받침할 장비도 부족합니다.

큰병원2: 저희는 그런 총상을 한번도....어쩌고..

실제로 일년에 몇 번 오지도 않을 총상환자를 위해

전문적인 의사를 채용하고, 또 해당 장비를 유지할 병원은 그리 많지 않으니,

대화가 순전히 가상의 일만은 아니다.

 

, 이 경우 정부가 선택할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정부관계자; 총상처럼 심각한 외상을 입었을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없구나.

이참에 외상전문 병원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정부는 각 도마다 하나씩 초 응급환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관련의사를 스카웃한다.

힘든 일을 하니 당연히 월급은 기존 의사보다 2배쯤 주고,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야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으니,

의사도 적정수보다 더 많이 뽑는다.

정부가 이걸 유지하는 데 돈이 좀 들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적절한 치료만 받는다면 죽지 않아도 될 외상환자가 1년에 1만명,

하루 27명씩 나오는 걸 감안하면 이 돈이 그리 헛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외상환자가 잘 죽지 않는, 외상환자 강국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국종교수라는 슈퍼스타가 존재한다.

정부는 자기들이 욕을 먹을만한, 이슈가 될 환자가 생기면 1초도 안걸려 결정을 내린다.

아몰랑 이국종에게 데려가!”

석선장이 총을 맞아도 이국종, 북한에서 넘어온 장교도 이국종에게 보내면 된다.

아무리 어려운 환자도 그가 헌신적으로 돌보면 살아날 수 있으니까.

물론 모든 환자가 다 이국종 교수의 은총을 입을 수는 없는지라

1년에 1만명의 죽지 않아도 될 환자가 죽어나가지만,

이걸 가지고 정부를 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운이 없어서, 지방에 살아서, 헬기가 제때 없어서 그리 됐다고 여길 뿐,

응급의료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정부는 각성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외상환자를 위한 의료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없다.

물론 석선장 사고 이후 정부가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다.

소위 이국종법이라는 걸 통과시켜 전국에 16개의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재원은 과속차량의 과태료 중 20%로 충당하기로 했는데,

그게 무려 1600억원이다 (여기서 무려는 반어법이다).

한 개도 제대로 못 세울 그 돈으로, 정부는 16개의 중증외상센터를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외상환자들이 목숨을 건지고 있을까?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전과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석선장의 치료비는 2억원이었는데,

석선장의 전 직장인 삼호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치료비를 내지 못했다.

아주대 측은 정부에 그 돈을 내달라고 했지만,

알뜰하기 짝이 없는 우리 정부는 그 돈 지급을 거절한다.

결국 그 돈은 아주대의 손실로 처리되는데,

안그래도 매년 수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아주대병원에게

국민적 영웅인 이국종 교수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하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국종 교수는 현재 49세고,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다.

과연 그가 언제까지 현재와 같은 초인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가 더 이상 환자를 못보게 되면, 혹은 그가 운좋게 정년까지 일하다 물러나게 되면,

그때 북한에서 넘어온 총상환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국종 교수가 퇴임함과 동시에 아주대는 외상센터를 폐쇄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지금 이국종 교수의 후계자도 없는 상황이다.

외상전문 의사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드는 게 맞지만,

이국종이라는 슈퍼스타의 존재는 정부와 국민을 마취상태로 이끌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하는 중이다.

물론 이게 이국종 교수가 욕을 먹을 일은 아니며,

위에서 인용한, 저 도발적인 글을 쓴 의사 역시 이국종을 욕하는 건 아니다.

욕을 먹어야 할 것은 그에게 모든 짐을 맡긴 채 아무것도 안하는 정부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국종 교수가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그리고 앞으로 다시 나타나지 않을

완벽한 의사이기 때문에.

 

* 저 글이 올라온 사이트의 댓글을 보다가 어이가 없는 글을 몇 개 발견했다.

1) 의사 수 늘립시다. 저 일이라도 하겠다는 사람 많습니다.

2) 무슨 의사가 희생하는 것처럼 써놨네요? 근데 왜 의대 커트라인은 그렇게 높죠?

여기에 대해 일일이 반론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이 더 있을까봐 말씀드린다.

1) 이국종 교수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의사를 늘려봤자 편하고 돈 되는 일을 하지, 이국종 교수가 되려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2) 이국종 교수의 일이 희생인 것은, 지금 하는 일 말고 어떤 일, 예컨대 다른 과 취직이나 개업 등등을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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