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다

 

 

“2G 폰만 두 개 있어요. 합치면 4G죠 하하.”

스마트폰이 3천만을 넘어섰을만큼 대중화된 뒤에도 난 폴더폰 2개만 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내 휴대폰을 보고 놀라곤 했다.

아니, 스마트폰이 아니네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난 부끄럽다기보단 자랑스럽게 대꾸하곤 했다.

, 종교적인 이유로 2G 폰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그간 스마트폰에 대한 내 혐오는 종교에 가까웠다.

라면집에서 목격한, 엄마와 마주앉은 딸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엄마를 방치했던 광경,

지하철 의자에 앉은 7명이 모조리 스마트폰만 보고 있던 진풍경들,

내게 스마트폰은 주위 사람을 소외시키고 독서량도 떨어뜨리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현 대통령의 탄생으로 끝난 지난 대선 때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영구집권을 위한 보수층의 음모가 아닐까.”

젊은 층이 신문과 책을 보는 대신 스마트폰이랑 놀다보면 좀 더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주장이었는데,

실제로 20대가 1번을 찍은 비율은 지지난 대선에 비해 높아졌으니,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네이버 검색이 필요하다든지, 급히 메일을 확인해야 할 때라든지 등등

스마트폰이 아쉬울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난 나처럼 2G 폰을 쓰는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을 하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런 내가 뜬금없이 스마트폰을 사게 된 건 순전히 클라라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한달쯤 전 벌어진 프로야구 경기 때 멋진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해서 스타가 된 분,

물론 그 전에도 스타였으니 시구를 했겠지만,

난 그 시구 이전에 클라라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내가 아는 클라라는 슈만과 클라라의 그 클라라였다.

실제로 난 야구 시구로 클라라가 뜨고 난 뒤에도

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엄연한 배우인 그녀를 아이돌 가수의 한 멤버로 생각해 왔었다.

어쨌든 그 시구 자리에서 클라라는 스스로 디자인한, 자신의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유니폼으로

뭇 남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후 하루에 한번은 클라라 미친 볼륨감” “클라라 몸매, 이 정도일 줄은같은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게 만들었다.

시구를 한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시구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클라라의 노력은 치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클라라가 내가 출연하는 베란다쇼 녹화에 나온 건 지난 수요일이었다.

클라라가 나오자 방청석은 술렁였고,

연예인에 대해 어느 정도 무감각할 법도 한 제작팀도 클라라를 보면서 예쁘다를 연발했다.

내가 보기에도 클라라는 인간계가 아닌, 신계에 속한 인물이었다.

하필이면 클라라가 내 옆 자리에 배치된 탓에 난 긴장한 나머지 말도 거의 안한 채 얼어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난 뒤 난 이례적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구했고-박지훈 변호사랑 셋이서-

작가가 찍어준 사진을 내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송시켰다.

내 휴대폰은 사진 해상도가 떨어지는 2G폰이었기에

보관해야 할 사진이 있을 때마다 스마트폰을 쓰는 아내에게 보낸 뒤

아내가 내게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서 사진을 달라고 하니까 아내는 사진을 받긴 했는데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사진을 주지 않았다.

과거처럼 종이 사진이면 모를까, 하필이면 클라라 사진만 잃어버렸다니

클라라를 보고 와서 들떠있는 내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서민교수를 검색하면 바로 서민교수 부인이 뜰 정도로 미모가 출중한 아내로서는

클라라가 여신이었다고, 침을 튀기며 클라라를 격찬하는 남편이 한심했을 것이다.

그런 아내의 마음이 작용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클라라의 사진이 없어진 게 아닐까.

 

소설가로 활동 중인 폴 오스터는 어린 시절 전설적인 양키스 야구선수 윌리 메이스를 경기 후 만났다.

윌리 메이스는 사인을 해달라는 오스터의 요구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지만,

불행히도 오스터에겐 펜이 없었다.

오스터의 아버지, 삼촌도 역시 펜이 없었는데,

결국 메이스는 꼬마야, 미안하지만 나도 펜이 없어 사인을 해줄 수가 없구나라며 자리를 떴다.

그날 어린 오스터의 심경이 어땠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오스터는 말한다.

그날 이후 난 늘 펜을 가지고 다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펜이 있으면 뭐든지 쓰게 된다는 거다. 난 그렇게 소설가가 됐다.”

내가 스마트폰을 산 이유를 오스터 식으로 옮겨본다.

[클라라는 같이 사진을 찍자는 내 요구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지만,

불행해도 내겐 스마트폰이 없었다.

결국 클라라는 못생긴 아저씨, 당신은 2G폰밖에 없으니

같이 사진을 찍을 수가 없군요.”라며 자리를 떴다.

그날 밤의 내 심경이 어땠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난 말한다.

바로 그 다음 날, 난 휴대폰 가게에 가서 스마트폰을 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마트폰이 있으면 뭐든지 찍게 된다는 거다.

난 그렇게 변태가 됐다.”]

내 인생에서 다시 클라라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나오는 또 다른 프로인 아침마당 작가에게 클라라 좀 출연시켜 주면 안돼요?”라고 해봤지만

작가가 난색을 표했고, 그렇다고 베란다쇼에 또 나올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일지라도 사람은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을 들고 방송국 주변을 배회하는 40대 아저씨를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을 걸어 보시라.

혹시...서민 씨 아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