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호사

 

 

올해 3월 말,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난 매주 다섯 번 방영되는 베란다쇼 중 하루나 이틀 정도만 출연하고 있었기에,

그의 존재가 크게 달가울 리는 없었다.

저 친구 때문에 내 분량이 더 줄어들겠구나!”는 게 그 당시 솔직한 마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변호사답지 않게 엄청난 사투리를 구사했는데,

변호사가 구수하게 생긴데다 사투리까지 구사하는 건 방송에 있어서 큰 무기였기에,

이렇다할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견제심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지낸 어떤 이보다도 사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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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이 수임료 대신 감자를 받아서 고민이어요

그 밑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분이 말한 것처럼

그는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수임료를 감자나 옥수수, 공연티켓 등을 받는,

소위 감자변호사로 유명해졌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변호사가 있을까, 하며 감격했다.

캐놓은 걸 가져가라는 것도 아니고, 밭에서 캐서 가져가라고 하는데,

그래도 안받는 것보단 낫잖아요.”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있다니.

그 후 그는 그 프로의 사회를 보는 컬투와의 인연으로 베란다쇼에 나오게 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는 나랑 컬투의 베란다쇼에 나오는 박지훈 변호사다.

 

TV에 나와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 중 일부는 좀 떠보려고, 실제와 다른 얘기를 부풀려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몇 번만 만나보면 안다.

감자변호사라는 그의 별명이 실제 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거라는 걸.

지난 6개월간 내가 느낀 건, 매사에 소탈하고 권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변호사였다.

자기 이익만 차리거나 권력에 굴종하는 법조인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런 희귀한 변호사를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다.

물론 이 행운을 나 혼자 누릴 수는 없는 노릇,

착하디착한 성품 덕분인지 박변호사는 정말 아는 사람이 많다.

녹화 중간중간 쉬는 시간마다 그는 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아는 사람이 친분을 빌미로 법률상담을 하는 게 대부분이고,

술 한잔 하자는 전화도 있고, 가끔은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도 있는 것 같다.

그 전화들을 그는 늘 웃으면서 받는다.

돈 빌려주고 못받은 적도 많지 않나요?”
너무도 당연한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많지요. 빌려줄 때 떼일 걸 알면서 주는 건데요.”

보통은 돈을 떼이면 친구관계가 단절되지만, 박변호사는 그 점에서 예외라는 것도 놀랍다.

<안녕하세요>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공연권을 주면서 수임료를 거의 안낸 어머니가 있는데,

자기 아들을 풀려나게 해줘서 감사하다면서 집으로 초대를 해서 고기를 구워줬단다.

고기를 좋아하는 박변호사는 그 고기에 감격해서 그때를 가장 보람있는 순간으로 꼽았지만,

고민상담을 요청한 실장의 말은 달랐다.

막상 그 집에 갔더니 집이 굉장히 화려하더라고요. 마당도 있고...”

여기서 보듯 사회는 이렇게 착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어떻게든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려 든다.

자신이 이용당하는 면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알죠. 그래도 어떡합니까. 도와 달라는데.”

그 실장님과 미모의 아내분이 박변호사를 고민할 수밖에.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동료변호사의 말이다.

연수원에서 적성검사를 했어요. 다 변호사, 판사, 검사 이렇게 나왔는데 이 친구만 연예인이 나왔어요.”

그 적성검사가 예언한 것처럼 그는 베란다쇼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옆에서 본 그의 최대 강점은 엄청난 충성심.

팬티가 보이는 바지 (새기팬츠)를 입기도 하고, 싸이 춤을 능청스럽게 추고,

중국집 배달부 복장으로 배달통을 들고 긴 거리를 달리는 등

베란다쇼가 요구하면 도무지 거절하는 법이 없다.

VCR 녹화 때문에 재판을 미루는 건, 그의 평소 행태로 봐서 너무 당연한 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승률이 많이 떨어졌다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서 제작진과 나를 놀라키기도 했다.

베란다쇼가 원한다면 방사능 낙진도 맞을 수 있어요.”

이런 마음으로 방송을 한다면, 게다가 나이까지 젊다는 걸 감안하면,

그를 TV에서 보는 날이 많아질 것 같다.

 

난 모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다.

나이가 드니까 그게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박변호사는 삼십년지기 친구처럼 내 안에 들어왔다.

베란다쇼에 나온 유명 역술가는, 날 보고 고대인의 얼굴이라고 했을 정도로 직언만 하는 그 역술가는, 우리 둘의 사주를 본 뒤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은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어요. 이 프로그램이 없어지더라도 두분의 관계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 , 그건 아니잖아. 난 아내 얼굴은 심하게 따진단 말야.

지금 고향에 내려가 추석을 보내고 있을 그에게 한 마디.

박변님, 알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추석 잘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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