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한 농구장에서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의 NBA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디트로이트의 홈경기였지만 경기는 인디애나가 15점 차이로 이기고 있었고, 남은 시간은 불과 45초였다. 이론적으로 경기를 뒤집기 어려운 상황, 이럴 때는 대부분 경기를 대충 하면서 부상을 방지하려 한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다. 디트로이트 선수가 슛을 하는데 인디애나의 론 아티스트란 선수가 거친 파울을 범한 것이다. 경기도 져서 화가 나던 차에 이런 비매너 플레이라니, 게다가 아티스트는 평소 거친 플레이로 유명한 선수였으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해당 선수는 론 아티스트를 거칠게 밀었고, 이를 계기로 양팀 선수끼리 엉켜 실랑이가 벌어진다. 드물지만 이런 일은 곧잘 벌어지며, 그 대부분은 그렇게 싸우는 척만 하다 마는 게 이 바닥 룰이다. 여기서 존 그린이란 관중이 사고를 친다. 그가 음료수가 든 컵을 아티스트에게 던진 것이다. 안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차, 아티스트는 관중석으로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범인이 아닌, 다른 남자가 아티스트 밑에 깔리는 봉변을 당한다. 이때 또 다른 관객이 그에게 음료수를 쏟는다. 그러자 인디애나 팀의 다른 선수가 그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선수간의 다툼은 어느새 선수와 관중간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흥분한 관중 두 명은 코트에 난입해 선수에게 달려들다가 주먹을 맞고 쓰러지기도 했다. 경기는 더 속개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동그라미 속의 남자가 원인 제공자인 존 그린이다. 그런데 아티스트는 엉뚱한 사람에게 달려간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선수의 관중폭행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2미터가 넘는 선수가 관중에게 달려드는 건 관중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홈구장에서 선수들이 추태를 보였을 때, 관중석에 있던 한 아이가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TV로 비춰지기도 했다. 둘째, 아무리 연봉을 많이 받을지라도 선수는 팬과의 관계에서 '을'에 불과하다. 팬이 없는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의 연봉도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과 그 경기를 TV로 지켜봐주는 시청자들, 관련 기사를 열심히 읽어주는 독자들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감히 을인 선수가 갑인 관중을 때려? 우리나라라면 론 아티스트와 같은 팀 선수들은 농구계에서 영구히 퇴출됐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결정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론 아티스트: 해당 시즌 잔여경기 출장정지 & 해당 기간 연봉지급 중단

-관객을 때린 또 다른 선수: 15경기 출장정지

-론 아티스트를 민 선수: 6경기 출장정지


농구계 영구퇴출이 아니라니,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론 아티스트는 이 사건 이후 이름을 '월드 메타 피스'로 바꾸고 몇 년을 더 뛰었고, 다른 선수들도 징계를 수행한 뒤 다시 코트로 복귀했다. 최초로 음료수를 던진 존 그린에게 내려진 징계를 보면 놀라움은 더 커진다.

1) 30일간 구치소행. 2) 2년간 보호관찰 3) 디트로이트 홈경기와 기타 관련행사에 영구적으로 참가자격 박탈

우리나라 야구판에서 음료수병을 던지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며, 그들 중 실제 처벌을 받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걸 감안하면, 자기 팀 농구장에 영원히 오지 말라는 NBA 의 조치는 파격적이다. 이건 팬과 선수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사태를 보는 대신 농구사상 가장 끔찍한 폭력사태를 누가 일으켰는지, 그 원인을 꼼꼼하게 따진 결과였다. 선수도 한 인간이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을 헤아렸던 것은 물론이다.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2015년 10월, 한 손님이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찾아가 자신이 7년 전에 산 목걸이와 팔찌의 무상수리를 요구했다. 매장 직원은 무상수리 기간이 지났으니 수리비의 80%를 손님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원칙에 따른 당연한 응대였지만, 해당 손님은 10분이 넘게 항의를 하다 돌아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손님은 스와로브스키 본사와 연락해 생떼를 쓴 끝에 결국 무상수리 약속을 받아낸다. 원칙에 어긋난 일을 생떼를 써서라도 되게 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딸과 함께 신세계의 해당 매장에 찾아간 그 손님은 "왜 그때는 안된다고 했느냐?"며 분풀이를 했다. 심지어 이들은 직원들을 바닥에 무릎 꿇게 한 뒤 일장 훈계를 하기까지 했는데, 다음은 인터넷에 올라온, 그 손님의 딸과 직원의 대화란다.

딸: 야, 고개 들고 나 쳐다봐. 지나가다 마주치면 그때도 죄송하다고 하게 내 얼굴 똑바로 외워.

직원: 그게 아니고요 고객님. 본사 방침이.

딸: 알았다고. 본사에 얘기했다고. 니들 서비스에 대해 해결하라고.


NBA농구에서 벌어진 폭력사태에 빗댄다면, 이런 말도 안되는 갑질을 한  그 모녀는 향후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 출입을 금지시키는 게 맞다.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원칙을 무시한, 손님들의 막무가내 생떼에서 비롯됐으니 말이다. 손님이 백화점 매출을 올려주는 존재인 건 맞지만, 직원들 또한 그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당연히 백화점 측은 그 직원들이 부당하게 모욕받지 않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백화점은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들이 한 거라곤 해당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게 고작이었고, 갑질을 한 손님이 백화점 직원에게 사과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님은 해당 장면이 영상으로 올라가 자신들이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백화점 측에 항의하기까지 했다. 자기 직원들의 자존심보다 그 손님들이 지불할 몇 푼의 돈을 택하는 백화점을 보면서 다른 손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저것들한테 얼마든지 갑질을 해도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나라 매장에선 직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무릎을 꿇고, 경기장에선 팬들이 마음놓고 선수에게 욕을 하거나 음료수를 던진다. 대한민국이 갑질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102100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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