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가 대통령이던 1991년은 정권의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오던 해였다. 여기에 명지대생이던 강경대가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때의 시위가 보통 때와 달랐던 건 분신이나 투신 등 자살로 저항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였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3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때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이 터진다. 서강대에서 투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강기훈이 대신 써줌으로써 자살을 방조했다는 것. 결국 강씨는 3년의 징역을 살고 만기출소했다. 유서대필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은 급속히 위축됐다. 하지만 강기훈은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실제 강씨의 필적도 유서에 쓰인 것과 달랐다. 또한 강씨의 필적감정을 담당했던 자가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한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검찰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 사건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까닭이다. 결국 사건발생 16년이 지났을 때 과거사위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고, 대법원은 2012년 10월 19일 재심을 결정했다. 물론 재심에서 강기훈이 무죄로 나온다고 해도 대통령이 유력시되는 어느 분은 "두 개의 판결이 있으니 어느 게 맞는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심을 통해 강씨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강씨의 경우엔 유서를 대필했으니 더 큰 비난이 주어졌지만, 사실 대필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범죄다. 리포트를 대신 써준다든지,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것 등은 법적 처벌은 받지 않을지언정 남의 것을 훔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자기 입으로 대필을 시켰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어찌나 당당한지 대필로 나라를 구한 느낌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시형 씨. 현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씨는 내곡동 땅에 관한 검찰조사에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고, 땅값도 몰랐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검찰은 이 서면조사를 바탕으로 시형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던 시형 씨가 특검에 불려가서는 실제로 땅을 소유할 마음이 있었다며 원래 진술을 180도 뒤집었고, 이상은 씨로부터 6억원을 받은 날짜도 다르게 진술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아주 당당하게 "행정관이 대신 써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형씨는 검찰의 서면조사 요구에 대필로 응수했던 셈.

 

 

아주 긴박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의자는 직접 불러서 물어보는 게 원칙이다. 무슨 마라도에 사는 것도 아니고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닌 사람에게 웬 서면조사인가? 그래도 우리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붉은 마음을 증명하느라 서면으로 답변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자신이 안쓰고 대필을 시켰다니 검찰 보기를 얼마나 우습게 안 걸까? 그럼에도 이것에 대해 검찰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별반 반향이 없으니, 검찰이 우스운 존재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가보다. 바빠야 할 청와대 행정관이 대통령도 아닌, 그 아들의 진술서나 대신 써주는 존재라는 것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신기한 건 시형씨 측근의 다음 말. “청와대 행정관에게 설명한 후 그 행정관이 써서 검찰에 제출했다....문제의 행정관이 시형 씨에게 그냥 대충 써도 된다고 해서 시형 씨도 자료를 일일이 찾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서 진술했다....그것을 바탕으로 청와대 행정관이 진술서를 쓰고 시형 씨가 한 차례 검토한 뒤 제출하다 보니 큰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러 간 날짜 등 오류가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충 써도 된다고 했던 행정관도 웃기긴 한데, 그렇다고 자료도 찾지 않고 불러줬다는 시형씨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기가 진술한 걸 행정관이 받아 적은데다 한 차례 검토까지 했다면, 그걸 가지고 "행정관이 써서 오류가 있었다"라고 발뺌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 나이도 얼마 안된 자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일을 기억 못하는 건 머리가 나쁜 탓이라고 보면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기 의사로 땅을 샀는지 아버지가 시켜서 샀는지 그것까지 헷갈리면 어떡하라고? 이시형씨, 당신 혹시 사람이 아니므니다의 갸루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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