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효를 저지르다

 

 

어머니 시신을 내팽개친 채 도망간 3남매가 화제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장례비가 없다며 “2-3일 후에 가져 오겠다고 갔지만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단다.

장례 기간 중 받은 부의금으로 일부라도 갚았다면 이렇게까지 욕을 안먹었을텐데

부의금은 챙겨간 걸 보면 처음부터 떼어먹을 계획이었나보다.

그 바람에 어머니 시신은 갈곳을 찾지 못한 채 병원에 안치돼 있다.

 

 

 

자식들이 차린 고희잔치 때 눈물을 보이는 내 어머님.

 

 

3남매의 경우는 보기드문 막장이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도 어머니한테 받은 은혜를 얼마나 갚았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은혜 갚는 것은 고사하고 불효를 저지른 것만 생각이 나는데,

태어나자마자 보름간 설사를 해서 어머니 애를 태운 거야 철들기 전이니 넘어간다 쳐도,

장남으로서 형제간의 우애에 힘쓰지 못하고 싸움질만 했다든지,

3 때 어머니가 바지를 안사준다고 한달 가량 공부를 팽개친 채 TV만 본 일 등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결혼 문제로 어머니를 속상하게 만들었고,

몹쓸 병에 걸려 중환자실을 왔다갔다 한 것도-물론 어머니는 퇴원 한참 후에 아셨지만-

자식으로 봐서는 불효 중의 불효였다.

 

 

어머님은 휴대폰 문자도 잘 보내시고, 이메일도 보낼 줄 아시는 신세대 어머니시다.

 

앞으로는 잘해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있지만,

얼마 전 어머님께 커다란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베란다쇼 녹화 후 어머님 집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급히 보내야 할 원고가 있어서 어머니 댁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썼다.

내가 쓰는 글이 다 그렇듯이 이번 글에도 존경하는 각하가 등장하는데,

근황을 보니까 각하가 자신이 만든 4대강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썼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자신이 못 다한 꿈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돼준다. 좋은 테니스 코트를 독점한다든지, 자신이 만든 녹조를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일이겠지만, 이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일에 몸바치는 전직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왕이면 사진도 첨부하자는 마음으로 구글에 접속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뭘 잘못 눌렀는지 바탕 화면에 그 사진이 깔려버린 것.

 

 

 

이렇게 말이다...ㅠㅠ

 

 

믿기 어렵겠지만 난 엄청난 컴맹으로,

바탕화면 바꾸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저번에도 한번 어머니 댁 컴퓨터에 이상한 사진-야한 사진 말고, 색깔이 화려해서 폴더가 안보이게 해놨다는-을 깔아서 AS를 부르셨는데,

이번엔 폴더가 안보이는 게 아니라 사진 자체가 어머니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식은땀, 두드러기, 설사 등의 신체적 증상까지 유발할 수 있으니 더 큰 문제다.

바탕화면을 바꿔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제어판을 뒤졌지만

결국 난 바탕화면을 그대로 해놓은 채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아직 별 말씀이 없으신 걸 보면 그 후 만 이틀이 지나기까지 컴퓨터를 켜지 않으신 모양인데,

컴을 켰을 때 충격받으실 걸 생각하면 미리 알려 드리는 게 도리일 것도 같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런 큰 불효를 저질러서.

모니터 켜면 위험하니 신속하게 AS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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