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순항하던 문재인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이유는 다 알다시피 ‘인사’다.
완전히 깨끗한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도 힘든 탓이다.
제1 야당이 일말의 양심도 없는 자유한국당이라는 것도 슬픈 일이고,
정부를 인수인계할 기간이 없다는 것도 제대로 된 인사를 못하는 이유일 수 있지만,
이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때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다.
그는 5대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고위공직자 인선 때 배제하자고 했다.
다들 알다시피 그 5대 비리는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이다.
새누리당 치하에서 임명되는 공직자 중 5대비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기에,
문재인의 ‘5대비리 배제 공약’은 그 당시로서는 대중에게 어필할 멋진 공약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문재인 캠프에서 발언할 수 있는 위치였다면
이런 섣부른 공약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조언했을 것 같다.
장관급 요직에 임명될 후보들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잘나가는 사람들인데,
위에 언급된 비리와 무관할 수 있을까?


저분들에 비하면 잘나가는 축에도 끼지 못할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일단 걸리는 게 논문표절이다.
표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파렴치한 행위지만,
내가 논문을 쓰기 시작한 90년대와 지금은 표절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
석사과정 때 난 A라는 기생충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그 구조를 자세히 관찰하는 연구를 했다.
논문을 쓸 때 ‘연구방법’에 A를 전자현미경으로 찍게끔 처리하는 과정을 써야 하고,
전자현미경을 찍는 방법도 자세히 기술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생충을 전자현미경으로 찍는 건 새로운 연구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선배들이 여러 기생충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었다.
기생충은 달라도 전자현미경을 찍는 과정이 다르지 않은지라,
난 선배들이 쓴 연구방법을 그대로 옮겨적었다.
그 선배들은 그보다 앞선 선배들의 연구방법을 그대로 옮겨적었다.
그땐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이게 표절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새로 바뀐 표절규정에 따르면 6단어가 연속해서 똑같다면 그건 표절이란다.
내가 만일 공직자 후보가 됐다면 이런 기사가 나갔을 것이다.
“서민교수는 94년에 쓴 석사논문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똑같아, 이건 숫제 복사기 수준이다.
문도리코로 알려진 문대성이 울고 갈 정도다.”
공직자 후보들 중 교수 출신이라면, 그리고 80-90년대에 논문을 쓴 적이 있다면,
표절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다.
이이제이라는 팟캐스트로 알려진 이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그래서 내가 논문을 안쓰는 거야. 논문을 한편도 안썼거든.”
인사원칙 첫 번째. 5대비리를 배제하려면 교수 출신을 멀리해야 한다.

 

 

 

병역문제는 나와 무관하다.
3년 3개월간 공중보건의로 복무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근무한 곳이 은평구의 질병관리본부였으니,
‘이거 특혜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그 당시 나처럼 기초의학을 전공한 8명 모두가 질병관리본부와 그 맞은편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근무했지만,
선정적인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쓸지 모르겠다.
“서민 후보자, 황제 군생활..... 서울서 출퇴근하면서 매일 술마셔”

인사원칙 두번째, 5대비리를 배제하려면 남자를 멀리하라.

위장전입도 다행히 나와 상관이 없다.
애가 다섯이긴 하지만 생물학적 종이 ‘개’인지라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게 애가 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지금 사는 곳이 천안이고, 천안보다는 아무래도 서울이 더 교육여건이 좋으니,
고교진학에 맞춰 애를 서울에 사는 어머니 주소로, 혹은 누나 주소로 위장전입을 시켰으리라.
이게 좋은 일은 분명 아니지만,
애 교육을 위해 중남미 국적을 허위취득하는 세상에서,
부동산투기 목적도 아닌 위장전입에 그다지 죄의식을 갖진 않았으리라.
아무튼 내가 공직자 후보가 된다면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쓸지 모르겠다.
“서민 후보자, 위장전입 할까봐 아예 애 안낳았다!”
“인구절벽 헬조선에서 애 안낳는 서민 후보자, 국익보단 사익?”
“안낳은 건가 못낳은 건가? 서민 후보자 의혹”

인사원칙 세번째, 5대비리를 배제하려면 자녀가 있는 자를 멀리하라.

부동산투기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현재 사시는 건물의 명의를 나랑 공동명의로 바꾸셨는데,
그게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게다가 내가 사는 천안의 집도 아내 명의,
예상되는 언론기사, “이름만 서민이지 사실은 부동산재벌? 서민코스프레 그만하라!”

인사원칙 네번째, 5대비리를 배제하려면 자기 집이 없는 이를 중용하라.

딱 하나 자신있는 건 세금탈루 부분으로,
난 세금을 열심히 납부하고 있다.
월급을 받아서 내는 세금 이외에 과외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많이 냈는데,
역시 이런 기사가 나갈 수 있겠다.
“잦은 외부강연...서민 너는 도대체 직업이 뭐냐?”
이런 이유로 난 고위공직자로 부적격이다.

인사원칙 다섯번째, 5대 비리를 배제하려면 수입이 없는 이를 중용하라.

 


내 주변을 봐도 5대비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보이던데,
이런 추세라면 문재인 정부의 장관 임명이 굉장히 늦게 마무리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총리나 장관을 분위기 쇄신용으로 갈아치우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해,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총리와 장관이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면서 이젠 함부로 사람을 바꾸지 못하게 돼버렸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이 나고 난 뒤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표를 제출했지만,
그 뒤 새 총리후보로 임명된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낙마하는 바람에
사표를 냈던 정홍원은 그 뒤로도 열달 가량 더 총리직에 더 머물러야 했다.
그러니까 총리와 장관의 인사청문회 도입은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공직자마저 경질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하물며 5대비리 연루자를 배제하겠다니, 이러다간 내각 구성 자체가 안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문대통령에게 건의드린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공약이 섣부른 것임을 인정하고,
최소한 위장전입과 논문표절만이라도 철회하는 게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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