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돈이 아주 많다고, 예를 들어 통장에 40억 정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39억+알파가 모자란다는!)

그리고 난, 그 돈을 떳떳하게 번 게 아니라고 해보자.

그러니까 난 탈세와 다운계약서 작성, 잦은 투기, 노상방뇨 등 숱한 탈법.편법을 동원해서

그 돈을 벌었다고 치자.

어쨌든 난 40억이 있고, 한달에 적게 잡아도 1,200만원 정도가 이자로 나온다.

그 돈만 쓰면서 평생을 살아도 아주 편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럼 난 테니스스타였던 이형택한테 개인레슨을 받고,

이 클럽 저 클럽에서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면서,

저녁엔 또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거다.

유기견보호소 같은 곳에 기부도 왕창 하고,

어머니 크루즈 여행도 가끔 보내 드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산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내 돈을 내가 쓰면서 산다는데.



하지만 내가 정치를 한다고, 갑자기 영등포에 출마를 선언한다고 해보자.

‘막말녀의 원조 전여옥 의원에 대한 심판’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40억이란 재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름과 얼굴만 서민이지 실제로는 귀족이라는 공격이 들어오고,

내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예쁜 아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혹시 납치한 건 아닌지 등등).

이런 공격을 만회하려다 보면 원하지도 않는 ‘전 재산 사회헌납’을 공약으로 내세우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당선이 된들 내 삶은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탈세, 편법, 투기, 노상방뇨 의혹이 평생 나를 따라다닐 테니까.

그러니 재산형성 과정이 떳떳하지 않은 사람은 그저 조용히 자기 돈 쓰면서 살면 된다.

그런다고 해서 경찰이 출동하는 법도 없고, 쇠고랑을 차는 일도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희한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것도 기초의원, 이장, 군수가 아닌,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박근혜 대표가 갖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그건 박 대표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른 이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재산을 물려받은 거다.

박대표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그 말을 믿는 이는 몇 안되는 박빠들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들도 진짜로 믿진 않을 거다).

사정이 그렇다면 박씨는 98년 보궐선거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거기서 나오는 돈을 펑펑 쓰면서 우아하게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박씨는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었고, 급기야 강력한 대통령 후보 중 하나가 되었다.

정수장학회를 검증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그가 새누리당 후보가 되는 순간 그 논란은 훨씬 더 증폭될 거다.

그렇게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정수장학회를 포기하면 될테지만,

그 가치가 수조원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장학회를 놓치고 싶진 않다.

그렇게 돈이 좋으면 대통령을 포기하면 될 텐데,

거의 손 안에 들어온 대통령 자리를 놓치고 싶진 않다.

둘 중 하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 박대표의 삶이 피곤해질 수밖에.



“법대로 하자”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이었던 김명호 전 교수가 법정에서 한 말이다.

비록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했지만,

법 앞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선 적용되지 않는 개념인지라

김 교수의 요구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4년간의 옥살이를 해야 했다.


“법대로 하자.”

정수장학회 논란이 불거지자 박근혜 대표가 한 말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정수장학회의 소유권에 문제가 있다는 건 박대표도 잘 알고 있지만,

법이 가진 자의 편이라는 걸,

그래서 결국은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는 건 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판사들은 법률적으로는 위법이지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유족들에게 정수장학회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부정하게 얻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대선에 출마할 욕심을 낼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박 대표는 좋겠다.

조금 피곤하긴 하겠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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