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희망을 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 이후 시작된 정치판의 소용돌이는

선관위의 디도스 공격, 돈봉투 파문, 측근비리 등등

주로 한나라당에 타격을 남긴 채 시나브로 사라졌다.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박근혜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켜 난국을 헤쳐 나가려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애당초 개혁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다.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라고 해봤자 자신이 퍼스트레이디였던 유신 시절일 테고,

염화미소를 주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는데다

어쩌다 입을 열면 나오는 말이 “원칙대로 해 나가야 한다”는 수준이니

아랫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비대위원장이 되자마자 내놓은 공약이 한물 간 신공항이었던 것도,

현 정부의 실정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이재오를

단지 당선가능성을 보고 공천한 것도

혹시나 하고 지켜본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젓게 만든 이유였을 거다.



하지만 박근혜는 내 생각보다 훨씬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

새누리당이 전국에서 소수의 의석만 얻기를 바란 내 기대는

박근혜가 전여옥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걸 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인지도를 본다면 전여옥은 마땅히 공천이 됐어야 할 인물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지 못했던 게

다 전여옥 의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잊을만하면 나오는 여옥씨의 독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는데 말이다.

그가 ‘우리동네 국회의원’이 되는 게 싫어 천안으로 이사오긴 했지만

막상 공천배제가 되니까 아쉬운 느낌도 든다 (역시 미움과 애정은 동일한 감정인가봐).

전 의원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공천에서 탈락한 이유는

평소 박근혜 저격수로 불릴만큼 쓴 소리를 잘해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는 거다.

그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제가 컷오프(현역의원 25% 탈락)에 해당된 것도 아니고

신문과 방송의 보도 그대로 현역의원 경쟁력도 뛰어나다고 나왔고 여론조사도 좋았다.”

그러니까 그가 믿었던 건 영등포 주민들의 보수성이었던 거다.


과연 그럴까?

전여옥은 총선을 앞두고 <i 전여옥 - 전여옥의 사(私), 생활을 말하다>라는 허접한 책을 냈는데,

거기서 “자신이 살던 '현대홈타운' 아파트의 이름을 지난해 9월 '힐스테이트'로 바꾸는 데 힘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자 대표에 의하면 아파트 개명에 힘을 써준 건 민주당의 김영주 전 의원이고,

전여옥 씨는 하등의 힘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주민들은 전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전씨가 주민들을 무고죄로 맞고소한 걸 보면 전여옥이 거짓말을 한 건 확실해 보인다.

우리가 보기엔 아파트 이름 바꾸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 하겠지만,

의정활동이나 지역구 발전에 별반 한 게 없는 전여옥으로서는

이름 바꾼 거라도 자기 치적으로 삼아야 할만큼 절박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일본은 없다>의 표절에서 보듯이 전씨는 남의 것을 훔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자신의 지역구에서조차 고소를 당한 전여옥에게 ‘현역의원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박근혜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된다.”

화가 난 전여옥은 박근혜의 그릇이 작다고 성토했다.

뭐, 나 역시 박근혜의 그릇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박근혜의 선택은 탁월했다”“새누리당이 이제야 길을 찾은 것 같다”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는 걸 보면

박근혜의 공천개혁은 90% 이상 성공했다.

지지율이 오르자 개혁 어쩌고 하던 말은 다 잊어버린 민주통합당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제발 정신 좀 차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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