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프로 하면 KBS 개그콘서트 이외에 다른 프로는 생각나지 않는다.

tvN의 코미디빅리그가 있긴 하지만, 케이블이라는 한계가 있는지라

엄청난 재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5%를 넘지 못한다.

안그래도 점점 웃을 일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코미디라도 활성화돼야지 않을까 싶은데,

2010년 연예대상 프로에서 코미디 최우수상을 탄 김병만의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라는 수상소감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두 방송사의 코미디는 깨어날 줄 몰랐다.

SBS는 코미디는 포기하고 드라마에 올인하는 듯 했고,

MBC의 경우 사장이 무용가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돌아다니러 바빴다.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가 사용된 지점들.

 

 

 

 

그런데 내가 MBC 코미디에 다시 관심을 가진 건 우연한 계기로부터 비롯됐다.

아내랑 같이 에단 호크가 나온 <살인소설>을 ‘쿡’으로 보는데,

그 영화가 너무 무서운 거다.

이명박 정부 이후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던 난데 말이다.

특히 악마 얼굴을 숲에서 발견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아내는 “무서워서 더 이상 못보겠다”며 이불을 덮고 노트북을 켰으며,

난 아내 옆에 꼭 붙은 채, 덜덜 떨면서 마지막까지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아내에게 말했다.

“무서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 이럴 때는 좀 웃긴 프로로 중화를 시키고 자는 게 좋아.”

개그콘서트와 코미디 빅리그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봤던 터라 MBC에 새로운 프로가 없을까 뒤져봤더니,

‘코미디에 빠지다’가 있다!

 

 

 

쿡은 1주가 지나면 무료로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라 속는셈 치고 클릭을 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거다.

대표코너인 ‘거성사관학교’는 거성 박명수가 신인 개그맨들을 지도하는 코너인데

신인개그맨은 물론이고 데뷔한 지 좀 되는, 그래서 신인이라 부르기 민망한 개그맨들까지 망라되어 개인기를 겨룬다.

물론 박명수의 존재감이 이 코너를 이끄는 건 사실이지만,

개그맨들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정말 죽기살기로 아이디어를 짠 듯한 노력도 심금을 울리고,

“아니 저런 대단한 개그맨들이 있었나?” 싶을만큼 재능이 넘치는 신인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작년에 여자신인상을 받은 유미선은 매번 기대를 충족시켜줬고,

앞으로 MBC를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보이는 양해림과 7회에서 사채업자 역을 맡은 이름모를 개그맨은

“김재철 사장님이 무용가와 와인떡볶이만 먹지 않았어도...”란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다.

 

<신데렐라>는 <개그야> 시절 ‘주연아’로 유명했던 정성호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코너고,

5회부터 등장하는 <최고야>는 코빅의 스타 이상준이 나오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다른 코너들은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은데,

한물간 코미디 같은 느낌을 주거나 (두 이방인) 언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코너들을 보면

‘아직도 먼 건가?’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행히 6회부터는 <사랑해>가 나름의 웃음을 선사해 주는 등 계속 노력 중이니

앞으로는 개콘과 시청률 경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시간대를 금요일 밤 11시 25분으로 옮긴 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제작진의 뜻이 아닐까?

코미디에 빠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