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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세이

늙음, 병듦, 그리고 서러움

3년 전 돌아가신 임신빈 선생님은 내게 아내를 소개시켜준, 그러니까 내 은인인데, 이분이 쓴 수필집 <나무처럼 서서 살아온 이야기>를 보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얘기가 나온다.


“판단력이 없어지고 먹는 욕구만 강하게 남아 무엇이든지 모두 입으로 가져가는 상태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 시어머님 방문을 열면 … 배설물이 온 방 안에 가득 칠해져 있고, 당신 온몸에 칠해져 있다.”



그래서 임 선생님은 시어머님을 씻겨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온 종일 몸에서 냄새가 났고 향수를 뿌려봐야 소용이 없었”을 정도인데, 파출부마다 다 도망치기 일쑤였고, 월급을 두 배로 준다고 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단다. 임 선생님은 7년간 홀로 시어머니를 돌보다시피 하셨다니,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그 와중에 임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부모를 기도원에 보내는 자식은 이기적이고 못된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그렇게 한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국가가 돌봐주는 시스템이다. 몸이 안 좋거나 치매가 온 정도를 기준으로 국가에서 돌봄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 지급하며, 가족들은 15~20% 정도의 비용만 내면 된다. 치매 노인이 있을 경우 전적으로 가족이 책임을 졌던 과거에 비하면 실로 획기적인 대책이다. 나도 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 지금 일산의 요양병원에 내년이면 아흔여덟이 되는 외할머니가 누워 계시기 때문이다. 장기요양제도가 없었다면 어머니가 돌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셨을 테고, 추가로 간병인을 쓰느라 비용도 많이 들었으리라. 그런데 국가에서 거의 대부분을 도맡아 준다니, 그동안 세금을 낸 보람이 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건 2006년 무렵이었다. 의심이 많아지고 고집도 날이 갈수록 세져서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장기요양제도가 시행됐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먼저 드러누울 뻔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신 뒤 어머니의 삶은 훨씬 나아졌다. 매달 입원비와 약값을 보내면 거기서 알아서 다 해줬으니까. 실제로 할머니를 면회갈 때마다 친절한 간병인이 할머니와 비슷한,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국가에서 이렇게 다 해주니 가족들이 발길을 끊는다는 것. 내 할머니는 다행히 외삼촌이 근처에 살아 자주 찾아뵙지만, 다른 노인들은 찾아오는 사람 한 명 없이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명절 때도 찾아오는 가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만 해도 할머니한테 가는 건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할머니가 치매라는 걸 빌미로 “가봤자 뭐하냐. 알아보지도 못하는데”라고 안 가는 걸 합리화했고, 집이 일산에서 아주 먼 천안이라는 것도 한 수단이었다. 그렇긴 해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편치 않았다. 할머니가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할지언정, 내가 삼십분쯤 앉아 있다가 집에 간다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면 할머니 얼굴에는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쩔 때는 가지 말라고 붙잡은 적도 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외할머니는 내게 유일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들이 다 그렇듯 내 할머니도 손자들을 끔찍이 사랑하셨고, 장남이라는 이유로 내게 더 큰 사랑을 쏟아주셨다. 할머니는 장점도 많은 분이었다. 학교 선생님 출신의 인텔리였던 할머니는 매사 판단이 뛰어났고, 정리정돈에도 능했다.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옷도 세련되게 입고 아는 것도 많았던 할머니를 난 참 자랑스러워했다. 중학교 때 할머니한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난 나중에 어른이 돼도 할머니랑 같이 살 거야.” 할머니는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네 각시가 행여나 좋아하겠다.” 하지만 나이듦과 치매는 그 할머니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평생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던 할머니가 우리 앞에서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렸을 때, 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 나중에는 슬픔이 몰려왔다. 어릴 적 내가 손을 입에 가져갈 때마다 야단을 치던 할머니는 지금 걸핏하면 입에다 손을 넣고 계시며, 내가 찾아가면 그 손으로 내 손을 움켜쥐신다.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을 했지만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된 탓에 하루 종일 누운 채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그렇게 예뻐했던 손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할머니를 찾아온다. 젊은 시절의 그 총명하던 할머니도 이런 말년이 닥칠 것을 상상도 못했으리라.


7년간 벽에 똥칠 하는 시어머니를 간병한 임신빈 선생님은 국가가 노인의 돌봄을 책임져주는 장기요양제도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제도가 없었다면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의 부담은 이루 말도 할 수 없었을 테고 말이다. 돌보는 사람 입장은 그렇지만, 돌봄을 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족들을 괴롭히면서 그들과 함께 산 노인이 요양병원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할머니에 비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시설과 위생이야 병원 쪽이 더 좋겠지만, 얼굴이 친숙한 가족들을 보는 게 그분들로서는 더 즐거울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치매 노인을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도움으로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을 가끔씩이나마 찾아뵙는 건 직접 돌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용이한 일이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볼 때 그 정도라도 해야 인간의 도리를 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건 천안 산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내팽개쳐온 나에 대한 질책이다.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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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말랭이  (40) 2014.02.20
  • 성삼기 2013.12.26 13:46

    저 또한 돌아가신 할아버님, 할머님을 생각하면 많은 후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자식들 걱정에 여념이 없으신
    우리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세눈박이욘 2013.12.26 14:09

    연말에 가족을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을 올려 주셨군요.
    전 친아버님께서 아흔이시고 어머닌 여든이신데
    아버님께서 치매가 심하진 않으시지만 가끔 자식들 얼굴 못알아보시기도 하고 대소변 실수를 하시기도 하고...
    팔순 노모께서 보살피시고 형님들께서 근처사시며 챙기신다는 것을 위안삼아 핑계삼아 자주 찾아뵙지도 자주 전화드리지도 않는 불효자로 살고 있습니다.
    제 가족도 못 챙기는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수님의 글에 부끄러움이 밀려듭니다.

    • 서민 2013.12.27 22:20

      아...세눈박이욘님 아버님이 의외로 연세가 있으시군요. 제가 님보다 훨씬 더 부끄럽죠...ㅠㅠ

  • 지나가던사람 2013.12.26 14:27

    예전에 노인요양원에서 공익근무요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거기 근무하면서 심경 변화가 심했는데,
    처음에는 최선을 다해서 모셔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짜증이 나더군요...
    거기 일중에서 가장 쉬운게 청소일 정도로 일도 짜증났고
    하루에도 몇번씩 치매 어르신들이 울부짖고 폭력 휘두르고
    이런거 매일매일 당하다보니 진짜로 "저인간은 죽지도 않나"
    그런 생각밖에 안들더라고요. 그러다가 거기서 끝나는 마지막 날
    평소에 저한테 온갖 쌍욕과 폭력은 다 휘두르시던 어르신이
    제 팔목 붙잡으면서 "XX아 니가 이제 가면 언제오냐"하면서
    우시는데 순간 제가 무슨 짓을 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매가 너무 심해서 본인 이름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이외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얼마나 문제점도 많고 허점도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던 제도였습니다. 국가가 직접운영을
    하기에는 너무나 돈이 많이 드니 민간운영원칙을 줘버린 것이
    결과적으로 충분한 인력충원이 되질 않고 결과적으로 서비스의
    질적하락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서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 서민 2013.12.27 22:22

      자식도 어려운데 하물며 남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거기서 공익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님 덕분에 제가 모르던 것도알았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 CJK 2013.12.26 14:37

    < 사랑이 꽃이라면 >

    벌 나비 날아들어
    색(色)과 향(香)을 뽐내지만

    그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정원의 화사한 꽃이 되느니


    시들고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색(色)도 향(香)도 없지만

    그대 눈길 머무는 곳
    책상 위에 놓인 꽃이고 싶다.

    • 서민 2013.12.27 22:23

      국어교육의 폐해 때문에 님 시를 읽으면서도 제가 해석한 게 맞는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시에는 정답이 없고 독자가 느끼면 그걸로 되는 거다,라고 스스로를 다잡아 봅니다. 매번 좋은 시 감사드려요

    • 촌철살인 2014.01.02 13:42

      저도 교수님의 글과 더불어 CJK님의 시까지 한꺼번에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도 항상 감사합니다.^^

  • 이현애 2013.12.26 20:04

    '부모를 기도원에 보내는 자식들은 이기적이거나 못된 자식들'
    그런 말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부모를 모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하는 말인거 같아요.
    일년전에 세상뜨신 시아버님을 결혼하고 16년을 모셨는데...

    그 동안이 도를 닦은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남편과 가끔 이야기합니다
    늙고 병들면 자식들이 양노원에 보내기전에
    우리 스스로 양노원에 가서 살자고

    얼마 남지않은 2013년
    교수님과 모든분들 항상 건강,행복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세눈박이욘 2013.12.26 21:28

      현애님 16년이나...
      부끄러울 뿐입니다.
      건강한 새해 맞이하시길 열망합니다.

    • 서민 2013.12.27 22:23

      16년이라뇨. 도 정말 오래 닦으셨네요. 현애님도 남은 연말 잘 보내십시오.

  • 큰푸른물 2013.12.26 23:13

    댓글들이 모두 가슴 찡하네요. 모두 새해엔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 삐따기 2013.12.27 10:21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키워졌지만
    성인이 되고 바쁘다는 핑계로
    투병중이실때도 자주 찾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너무 후회스럽고 죄스럽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꿈에 나오실 때는 너무 선한 얼굴들..
    제발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 서민 2013.12.27 22:25

      남 얘기가 아니구 제 얘기네요. 부모한테도 죄인인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더한 것 같아요. 해드린 게 별로 없으니...ㅠㅠ

  • 주하아빠 2014.01.02 01:31

    갑자기 10여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손자들을 자주 보러 오시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원망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찾아 뵙지 못 한 제가 더 나쁜 놈이었네요. 어머니 아버지 장인어른 장모님께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옛날엔 효도가 당연한 것이었을텐데 이젠 아주 특별한 것이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근혜공주님 내용을 나중에 읽었으면 기분이 조금 유쾌한 상태로 잘 수 있었을텐데, 오늘은 잠이 쉽게 들지 않겠네요..

  • 촌철살인 2014.01.02 13:44

    슬프지만...얻을게 있는 글입니다. 저는 아직 처가, 본가 다 생존해 계셔서..할배, 할매, 외할배, 외할매한테는 못 했지만 엄마, 장인, 장모한테 잘 해야겠습니다. 전 이 글을 새해에 봐서 더욱 좋네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 교수님짱 2014.02.13 16:56

    마음이 아픕니다..모든것은 쌍을 이루기에 힘든것 같아요.사람 마음이라도 하나였음 좋았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