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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세월호와 매뉴얼



지난 수요일 아침 920, 잠깐 출연해야 할 라디오 방송 때문에 KBS에 있었다.

휴대폰을 보니 진도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간적으로 오늘 방송 어렵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사상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후 들려오는 뉴스들은 재앙 그 자체였다.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 대부분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친절한 안내방송을 믿고 있다가

배 안에 갇혔다.

영화가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영화에서 본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서 내가 결심했던 것은

배가 침몰할 때는 나무조각처럼 물에 뜨는 물건을 집어들고 바다로 뛰어들라는 것이었다.

구명조끼만 믿고 바다에 들어가면 저체온증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승객들로 하여금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방송을 한 것은

무슨 생각에서 그런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1995년 대구지하철 사건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 얘기를 잠깐 해보자.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한 사람이 지하철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열린 문으로 달아나기 바빴는데,

나중에 소방교육을 받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지하철에 비치된 소화기로 불을 껐다면 일이 커지지 않았을 거에요.

소화기 하나면 그 정도 불은 끌 수 있었어요.“

하지만 더 큰 비극은 그 후에 찾아왔다.

지하철 차량에 불이 붙었는데 반대편에서 지하철이 들어온 것.

그 차량을 운전하던 기관사도 분명히 불이 나는 광경을 봤을 것이다.

그때 기관사가 했어야 하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그 역에서 멈추지 말고

500미터라도 더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량을 그 역에 세웠고,

모두가 알다시피 지하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뽑아 가지고 혼자 달아났다.

옆 차량에서 난 불은 곧 반대편 열차에 옮겨 붙었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불이 붙은 지하철에서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 기관사의 심성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평소 그는 지하철 마스터키를 목숨처럼 아끼라는 말만 들었을테고,

재난에 대비한 어떠한 매뉴얼도 갖고 있지 않았던 거다.

위기 상황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라,

그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매뉴얼이 있어야만 승객들을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그런 매뉴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배를 탔을 때 배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라,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운송수단에 몸을 맡기는 우리들도

정작 개인의 안전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승무원들이 열심히 비상탈출 요령을 설명할 때,

그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비상탈출 요령이 나오지만,

진지하게 그 설명을 듣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업주 측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들 역시 별 일 없겠지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숱한 인재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나라이니만큼,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한가지 더 하고픈 말은, 우리 사회가 너무 숫자에만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뉴스를 보다보니 탑승객 숫자와 실종자 숫자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성급하게 발표를 하다보니 그 숫자가 맞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사고 발생 후 사흘이 지난 지금도 TV에서는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구조자 숫자가

무슨 불우이웃돕기 성금 액수처럼 박혀 있다.

뉴스에서는 이런 질타가 이어진다.

실종자와 구조자 숫자가 나와야 실종자 가족들이 상황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데, 이게 너무 부정확해 혼선을 주고 있다.”

정말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그런 집계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그 사건이 재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오직 사망자 숫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건이 날 때마다 정확하지도 않은 사망자 숫자를 서둘러 발표하게 하는 건 아닐까?

9.11 테러로 인해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당시 재해대책본부에게 우리나라 기자가

사망자가 얼마나 될지 물었다.

그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이들은 지금 여기저기 흩어져 간호를 받고 있다.

몇 명이 구조됐는지 헷갈리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사망자와 생존자는 일이 다 정리된 후에 알아도 되니,

사건 초기에는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구조를 할까, 아니면 생존자들의 충격을 완화시켜 줄까, 이런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세력이 있다.

사고 동영상이라면서 불량 어플이 깔리도록 유도한다든지,

선실 안에 갇혔고 지금 살아 있다는 식으로 장난문자를 보내는 이들은,

재난상황특별법 같은 걸 제정해서라도 엄벌에 처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와중에도 지역차별에 앞장서는 애들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내기를 바란다.

 

*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사건이라고 그러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학생들이라 더 가슴이 아프네요. 이런 재난이 앞으로 더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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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따기 2014.04.19 10:25

    교수님
    TV를 보고 있는데..
    왜 이리 답답하고 가슴이 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 부디 구조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 sjb 2014.04.19 22:33

    오늘만큼은 정말 진자하게 글을 쓰셨네요. 영화관에서 탈출방법 안내방송 나올 때, 별 관심 갖지 않았던 게 부끄럽습니다. 지하철 탈 땐 출입문 개방하는 비상 손잡이 위치부터 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대구 지하철 03년 이에요. 뭐, 오타 날 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괜찮아요. )물론 사고나면 당연히 책임자가 감당해야 하지만, 개인 각자가 안전 매뉴얼에 관심을 갖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세눈박이욘 2014.04.20 01:16

    사고의 1차적 책임은 선장에게 있습니다.당연합니다.
    하지만 정부측 책임은 없을까요?
    사고 초기에 '정부의 초동대응 미흡'을 지적하면 '선장 탓이지, 열심히 구조 작업하는 정부 측을 왜 욕하느냐?'는 댓글들이 무척 많더군요.
    '즉각적인 해상사고 대응 메뉴얼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메뉴얼대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초기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음이 반나절이나 엉망인 구조자 통계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해군 전투함 근무 경험으로 바다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저는 그 때부터 기적이 아니면 더이상 생존자가 없겠구나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날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사고 때마다 개인의 도덕심이나 양심에 기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에 자치정부,중앙정부를 두고 그들이 합리적인 대응 메뉴얼을 갖추어 우리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니 세상 사람들이 일상 생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정부측은 선장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면피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보도 행태들을 보면 선장,3등항해사,선사 측 등의 이야기와 과실들만 집중 보도하고 있군요.
    이번에도 장악한 언론을 통해 선장의 개인적 잘못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국민들 이목을 끌고 정부는 적당히 사과나 하며 구렁이 담넘 듯 하면 다음 사고에서는 우리자신의 목숨을 잃을 차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암담하고 분노하며 절망하면서도 차후의 정부의 태도와 행동을 부릅뜬 눈으로 지겨봐야 할 이유입니다.

    ***교수님께서 극장 비상통로 비유 하셨는데,저같은 경우에는 해군 함상 생활에서 훈련을 많이 한 덕에 극장가면 비상통로,엘리베이터,계단 등의 위치를 챙기는 습벽이 있는 편입니다.
    이번 사건의 정부 대응을 보고 '우리 스스로만이 스스로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더 강해져 버렸습니다.
    참담합니다.

    마지막으로,
    피어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에게 먼저 태어난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기적이 일어나 1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 이현애 2014.04.20 03:11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몇일째 head line 뉴스로 올라오고 있읍니다.
    세월호 선장이 구속된 사진도 계속 뜨구요.
    상상도 못할 일을 선장이....

    삼가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세눈박이욘 2014.04.20 21:01

      25일 새벽에 현애님이 사시는 나라의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5일까지 이번 사고가 마무리 되지는 않을테니 박근혜 정부측도 국빈행사 등과 현재의 유가족,실종자 가족 나아가 전체 국민 감정 사이에서 무척 머리가 복잡할 듯 합니다.
      물론 오바마가 위로하는 형식을 취할 것은 자명하지만 유가족,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현정부측이 먼저 미국 지도자의 방한 철회를 요청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이현애 2014.04.21 02:25

      님의 말씀처럼 머리가 복잡하기나 할까요?
      여지껏 해 오던대로 유가족, 실종자 가족,국민들한테는 침묵과 불통으로 일관하면되고
      오바마의 한국방문은 국격을 높인다고 국빈행사준비는 철저히 하겠죠?
      봄방학을해서 쉬고있는 딸들과 영화 '타이태닉'을 보면서 많이 울었읍니다.
      님도 항상 건강하세요.

  • 벙어리장갑 2014.04.20 08:44

    며칠이 지났는데 구조자는 없고 사망자만 자꾸 나오는것이 안타깝고 가슴이 메어집니다. 젊을때는 안그랬는데 나이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네요.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 뜨락 2014.04.20 15:21

    가슴이 아리다가 분노만 가득찼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데....

  • 강기린 2014.04.20 21:44

    태어나서 첨 비행기를 탔을 때 타고난 겁쟁이인 이인간은
    무서워서 재난대비 안내 방송을 철저히 들었지요.
    산소 호흡기가 내려오면 어른이 먼저 착용하고
    그 다음에 어린이의 산소 호흡기를 어른이 착용시켜주라는 안내방송이 있지요.
    처음에는 약자인 어린이가 먼저 아닌가 했는데, 어른이 먼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어린이를 위하는 길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재난시엔 어른의 책임감이 산소 호흡기보다 중한건데...

  • 성삼기 2014.04.21 11:04

    부디 이 나라에 기적이 행해지기를...

  • seizetheday 2014.04.21 21:53

    실종자 가족들의 DNA 샘플 채취하던 장면에
    그 참담한 심경이 느껴져 눈물이 멎질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에 같이 울어드리고 감싸드리고 싶습니다.


  • 기생충과함께 2014.04.22 13:12

    이 와중에도 국정원은 제 소명을 다하고 있군요,,

    ...해양 선박교수들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입닫아,,,

    ...할수없습니다,,서교수님께서 나서 주셔야 겠군요,,,,
    ...국정원과 맞짱 뜰만한 교수님은 서민교수님밖에 안계시니,,ㅠㅠ

  • 촌철살인 2014.04.24 22:15

    며칠전 경향신문에 세월호 선장이 1년 계약직인데 과연 목숨을 걸고 직무에 충실할 수 있을까라는 기사가 나오더군요...지금 한국 정치, 경제, 사회 어디고 간에...안 썩은 곳이 없습니다....기회만 되면 그 썩은 곳이 터져댈텐데..세월호 사건은 그 사건 중 하나일 뿐이라는게 무서울 따름입니다.

  • 유파 2014.04.28 16:45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부탁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맨 아래 정신나간 애들의 글은 안올리셨으면 좋겠어요.
    이유는 잘 아시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