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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개한테 물리다




개한테 물렸습니다.

그것도 저희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 말입니다.




저희 집에는 총 네 마리의 개가 있는데,

저를 문 개는 그 중 세 번째 서열의 개입니다.

2013년 4월 생이니, 아직 두 살이 채 안됐습니다.

처음 봤을 때가 한달 반을 지났을 무렵인데,

녀석이 비슷한 또래의 다른 개들보다 훨씬 작아 ‘미니미’란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저희는 나름 걱정을 했지요.

몸이 작은 애가 자기보다 큰 개들 틈바구니에서 주눅들지 않을지를요.

다행히 미니미는 성질이 더러웠고,

이미 열 살에 접어들어 노인 축에 속하는 큰 개를 제외한

나머지 다른 개들을 개무시했습니다.

미니미가 둘째한테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

새로 입양한 넷째를 장난감 다루듯 갖고 노는 모습 등을 보면서

우리는 흐뭇했습니다.

미니미가 최소한 주눅들진 않겠구나, 하고요.



그런데 미니미는 언제부터인가 저까지 개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라든지, 기분이 안좋다든지,

좀 쉬고 싶다든지 할 때 제가 안으면 벌컥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으르렁거리는 수준이었지만, 조금 지나니까 짖는 단계까지 나갔습니다.

아내는 미니미가 저한테 달려드는 광경이 재미있다면서

“또 만져 봐”라고 요구했고,

저는 아내를 즐겁게 해주자는 일념으로 미니미를 만졌고,

그때마다 미니미는 저한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결국 미니미는 저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팔뚝에 이빨자국이 여러 개 생겼습니다.

이젠 안을 때만 무는 게 아니라 제가 피하면 쫓아가서 물려고 했습니다.

그 단계가 됐을 때 아내는 “안되겠다. 좀 너무하네?”라며 미니미를 야단칠 것을 고려했지만,

저는 미니미가 마냥 귀여웠습니다.

조그만 놈이 저한테 막 화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마조히스트 성향이 있는 저로서는 미니미가 딱이었습니다. 




엊그제, 늦게 들어와 미니미를 안았을 때, 녀석은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얼굴을 가까이 댔는데,

갑자기 녀석이 덤벼들며 얼굴을 물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손을 대고 있다가 뗐더니, 손에 피가 묻어나왔습니다.

아내가 미니미를 야단치려고 했지만 저는 말렸습니다.

제 부주의 때문에 미니미가 혼나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미니미가 우리집에 온 후 전 한번도 미니미에게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가끔 야단을 쳤지만, 

저는 언제나 미니미 편이었습니다.

쉬야 실수를 해서 현관으로 쫓겨났을 때도 전 미니미한테 가서 기죽지 말라고 꼭 끌어안아 줬으니까요. 

관계라는 건 참 이상합니다. 

이런 저에게 감동해 “평생 잘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기보단 

만만히 보고 무시하기 일쑤니까요. 

야단을 많이 쳤던 아내한테는 꼼짝도 못하는 걸 보면,

지금의 미니미를 만든 건 바로 접니다. 



선거 때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을 외치긴 하지만,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개무시합니다.

우리도 화가 나면 무섭다는 걸 너무 오랫동안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개판을 쳐도 자신들에게 표를 주는 수많은 유권자가 있는데,

정치인들이 굳이 국민을 두려워하며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요?

그 결과 우리들은 정치인들한테 숱하게 물렸습니다.

손과 발, 심지어 얼굴에도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났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정치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린 건 우리가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정치인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질 않습니다.

2015년엔 이렇다 할 선거도 없는지라 우리가 본때를 보여줄 기회도 없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이 있을지를 생각하면, 기대보다는 한숨이 나옵니다. 

미니미는 작고 귀여운 페키니즈지만,

저들은 시베리안허스키보다 더 크고 사나운 개들입니다.

우리가 오냐오냐 해준 덕분에 아주 무럭무럭 살이 찌고 포악해진 그런 개들입니다.

올 한해, 개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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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K 2015.01.18 20:12

    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만한 개는 없다는 것입니다.

    개에게 개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개조심 합시다.^^^

    • 서민 2015.01.20 01:42

      헤헤 미니미한텐 계속 무시당해도 좋은데요, 다른 개한테는 개무시당하면 좀 그렇죠??^^ 개조심하겠습니다

  • 세눈박이욘 2015.01.18 21:00

    2015 년의 목표는 '살아남기'라는

    문구가 각종 사고 뉴스 댓글에 있더군요.



    교수님께서도 소송에,얼굴상처에...

    떠오르는 저 문구에서

    현재는 수난의 시기신듯도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좋은 일도 곧 뒤따를 터이겠지요.


    아무쪼록 다치신 얼굴 흉 남지않고
    잘 아무르시길......


    • 서민 2015.01.20 01:42

      안녕하세요 전 그닥 수난이라고 생각 안해요 소송은 뭐 별 거 아니고, 얼굴 상처도 제가 사랑하는 미니미가 그런 건데요뭐. 진짜 나쁜 일은 로또가 계속 떨어진다는... 아, 아닙니다. 님도 좋은 일 많이 있길 바랄게요! 늘 감사

  • 벙어리장갑 2015.01.18 21:18

    교수님... 듣는 개들이 어따 비교하느냐며 화 냅니다. 똥도 거름이 되는 좋은 유기농자원이니 적합치않습니다. 재활용도 안되는 방사능폐기물 이라면 모를까... 암튼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자라 한다니 무조건 살아남읍시다.

    • 서민 2015.01.20 01:41

      아, 제 나름대로 정리한 거는요 욕으로 쓰이는 개가 있고, 실제로 저에게 기쁨을 주는 개가 있다, 뭐 이런 거죠. 네, 일단 살아남읍시다

  • 내영혼의슬픈눈 2015.01.19 10:56

    청와대 실세는 진도개라는데...
    이 나라는 개판이 맞습니다.

    ㅋ아픔이 크시겠지만 이번사진은 눈이 초롱초롱 교수님이 잘생겨보이기까지...
    후후후!!! 개판인 나라에서 살아남기.. 인간으로 쩝!!!

  • 돈키호테 2015.01.19 17:56

    이년도 안된 개시키가 주인 팔뚝을 물고 이제 얼굴까지 물었으니
    다음엔 어디를 물을까요? 피맛을 본 놈은 계속 그럽니다.
    조심하세요.

    • 서민 2015.01.20 01:40

      앗 어떤 개시키 말하는 거죠?? 전 사실 미니미한텐 더 물려도 계속 귀여워할 건데...^& 하필이면 그분도 2년 됐네요. 하하ㅏ.

  • 개년잡년 2015.01.20 14:06

    푸른 집 개년은 만 이년넘었죠.
    이제 이 잡년은 삼년차인데 밥만 축내고
    도둑을 잡기는 커녕 오히려 도둑놈들한테
    꼬리를 흔들어대니 금년에는 모란시장에 나가
    팔아버릴까 합니다.

  • 지니 2015.01.27 21:16

    미니미는 서열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걸 알려주어야 할 사람이 주인이지요.
    서열의 상위에 가야할 사람들이 마냥 앉아있다가는.. 내집이 내집이 아니게 될거같습니다.
    http://blog.samsung.com/5053/

  • 한심이 2015.01.27 22:01

    주인 성격 좋다는 걸 그 개가 악용하는군요..^^
    근데 개는 개 아닌가요?
    개가 개 답게 살도록 교수님이 잘(?) 가르쳐 주세요.
    오냐 오냐만 하지 마시고.

  • 곰곰생각하는발 2015.01.27 23:00

    서민 님, 개에게 물리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종종 제가 키우는 개에게 물립니다. ㅎㅎㅎㅎㅎㅎ. 손을 물려서 꼬맨적도 흑흑...

  • la Cucaracha 2015.01.30 00:26

    예전 촛불과 국화로 '내 마음속 하나뿐인 대통령'을 추모하던 때, 시청 지하철역에서 A4 용지에 ''OOO(그 때 푸른집에 살던 사람)죽는날 떡돌리면서 잔치벌리겠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작년 말 금연을 결심하면서 저는 친한 지인들에게 "OO박OO 뒈지는 날, 호프집에서 골든벨을 울리겠다"고 공약을 걸었습니다. 의외로 강력한 동기가 되어 아직까지 성공적입니다. 가끔 여기 들어와서 교수님의 짙은 농담 한 개피, 유머 한 모금으로 버티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 김선영 2015.01.30 19:08

    선생님, 오늘 광양 강의 들었습니다.
    끝나고 꼬맹이 챙기시는 모습 보고 강의 밖에서 강의 하나 더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인할때 애들 이름이나 뭐 그런거 물어보신 이유 압니다. 제가 대답을 못한건 뒷사람도 많았고 선생님 귀찮으실까봐~^^
    그리고 저는 부처님한테도 애들 시험 이런거 안 빌어요. 너무 이기적이고 세속적인거 같아서...
    항상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마음만 하늘까지 고상한 김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