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더니 기사 아저씨가 묻는다.
“혹시 TV 나오는 사람 아니야? 거, 미생물인가 뭔가 한다는...”
누군가가 알아봐주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 네 맞아요. 미생물이 아니라 기생충 전공했어요.
기사분: 그래 맞아. 기생충. 근데 요즘은 왜 안나와?
나: 못해서 잘렸어요.
기사분: ..... 그래도 그렇지, 젊은 사람이 놀면 되겠어? 뭐라도 해야지.
나: ....
방송을 하면서 난 방송, 특히 TV가 적성에 안맞는다는 걸 알았다.
카메라 앞에서 순발력 있게 웃겨야 한다는 게 나한텐 스트레스였고,
내가 TV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PD들이 알아서 잘라주셨지만, 나오라고 할 때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만둔 초창기엔 방송섭외가 들어왔는데 내가 거절한 문자를 보여주며
“내가 잘린 게 아니라 안나가는 거거든?”이라고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얘기하기 귀찮아서 요즘엔 그냥 잘렸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안하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연구도 해야 하고 (올해 지금까지 쓴 논문이 5편이다)
거의 주업이 된 듯한 글쓰기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 벌써 책 두권을 냈고, 세 번째 책이 8월달 경에 나온다.
계약서에 사인을 남발한 탓에 앞으로 낼 책들이 쭉 밀려 있다.
하루에 다섯시간도 채 못자며 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방송 잘리고 노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런 오해를 한 적 있다.
영화 <킹스맨>의 starring을 보다가 ‘마크 하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마크 하밀?
검색을 해보니까 내가 아는 그 하밀이 맞다.
마크 하밀은 1978년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편에서 주인공인 ‘루크’ 역을 맡은 배우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하밀은 별반 매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조연인 한 솔로로 나온 ‘해리슨 포드’가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줬다.
그 뒤 해리슨 포드가 승승장구한 반면 마크 하밀은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가끔 그의 생각을 할 때마다 난 그가 실패자로서 우울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스타워즈의 성공 후 마크 하밀은 사람들이 자기를 루크로만 보는 게 싫어서 다른 역할을 제안한 영화에 몇 편 출연했고,
‘엘레판트 맨’을 비롯한 연극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다.
게다가 목소리 연기도 많이 해서, 배트맨에서 조커 목소리를 낸 사람도 하밀이란다.
그밖에 비디오게임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등
하밀의 인생은 나름대로 바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난 단지 내가 보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밀의 인생이 겁나 우울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며,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더 일을 덜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분이 바로 내가 아는 그분으로,
정작 메르스 같은 중요한 일이 터졌을 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국회가 간만에 한 일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라면서 불같이 화를 내며 유승민 대표를 자르려고 하는 이 분이야말로
‘보이는 게 다’인 분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분도 믿는 건 있다.
친박계 주장에 공감하는 분들이 무려 32.9%, 난 이 숫자가 놀랍다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30%가 이분의 믿을맨들인데,
삼권분립 자체를 부정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이분들의 지지는 굳건했다.
그래서 그분은 결심한다.
“지금까지도 한 게 없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에는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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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기승전닭 ㅎㅎ
교수님 덕분에 오늘은 치킨시켜먹어야겠어요
위의 오징어님 말씀대로
'기승전닭'!
드디어 닭댓통이 교수님께 글 쓸 소재제공처로
거듭나고 있네요.~~^^^;
닭이 훼를 쳐줘야 땅의 지력이 더 오르 듯
닭댓통이 어록을 발산해줘야 교수님 글을
더 자주 볼 수 있는거군요.
이걸 '닭덕'이라고해야하나요?
p.s. . .벙커1 특강 잘 들었습니다~~^^^
'보여지는 것'보다 잘 사는 사람은 그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보여지는 것'에 아주 목숨을 걸죠..
그분은 차라리 CF처럼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네요..
한번씩 나와서 헛짓 하는것 보단 ..
기대치가 낮으니 실망도 없네요.
흐흐 항상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서교수님 존경합니다.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구라를 치고
누구는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선문답 내뱉듯 하고
누구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당최 보이는 게 없을 뿐이고
누구는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고^^
무능(유능)한 사람과 게으른(부지런한) 사람을 조합해보면
(1) 유능하면서 부지런한 사람
(2) 유능하나 게으른 사람
(3) 무능하나 부지런한 사람
(4) 무능하면서 게으른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1) (2) 번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3)번이 제일 말썽이라고 합니다. 일을 벌리기는 하지만 수습을 못하니까요.
(3)번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얼리버드 생각이 납니다.
서민교수께서 그렇게도 끔찍하게 사랑하셨던 그 분 말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4)번이 (3)번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ㅠ.ㅠ
무식은 죄가 되지 않지만, 무능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수장의 무능은 그 밑의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더 큽니다.
무식하여도 휘하에 똑똑한 참모를 세우면 유능해 질 수 있지만, 무식하면서 아부꾼만 세우면 그게 바로 무능이고 망하는 지름길 이겠죠...
ㅋㅋㅋ 언제나 글 잘 읽고 갑니다 교수님.
그러네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네요.
보이는거 보다 덜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고 더 있을 거라는 그간의 편견은 버려야 겠어요!!!^^
교수님 항상 즐겁고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재치넘치는 더 많은 글 부탁드려요^^
건강하시구요~~
교수님 글은 항상 찾아보고 웃게되네용ㅋㅋ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드는 지금 현실에 또르르...이지만 웃으면서 끝까지 분노하고 싶게 만드세욧 ㅋ ㅋ 화이팅!
교수님고맙습니다 ᆞtv를통해서 뵙고 팬이되었는데 한동안 않보이시니 궁금하던차에여수역은 추억의장소가되었습니다 21년된13명의친구들입니다 매주한번씩만나밥도먹고차도마시고여행도하고 참 소중한친구들입니다 28일모임일입니다 그때책도데리고가겠습니다 엄청반가워하겠지요?제가커피사기로했습니다 훌륭하신분만난기념으로ㅡ영광입니다 바쁘시겠지만 방송을통해서라도 자주뵈었으면좋겠습니다 재밌게읽고있습니다 미소 자주볼수있겠지요?
네, 여기서 뵈니 반갑습니다. 21년 된 친구가 13명이나 된다니, 정말 행복한 인생이신 듯.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제 미소도 가끔이나마 보여드릴게요^^
글 몇편 읽었는데 정말 최고인듯 합니다.. 짧달막한 강의 티비로 보면서도 정말 유머와 재치로 동떨어진 것들을 가깝게 만드시더니 글을 보니 바로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
보이는것도 제대로 못보는 인간들
무지하고 편협하고 단순하고 몰지각한 30%들
이제 차츰줄어들겠지요
제대로 된 사람들이70%나 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