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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대통령은 왜 화가 났을까


대통령의 딸로 태어났고, 경제적으로 아무 부족한 게 없이 살다가 

자신이 대통령까지 된 분.

박근혜 대통령의 삶은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부러움 그 자체다.

출생, 돈, 지위 중 어느 하나만 가져도 만족할텐데 그 세가지를 다 가졌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게다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고,

덕분에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선 드물게 임기내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행복에 겨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듯하다. 

TV나 기사에 나오는 대통령의 표정은 언제나 굳어 있다.

기자가 안티라서 일부러 그런 장면만 포착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모습은 늘 세상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이것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서, 였다. 

겉으로는 대통령을 향해 웃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한다는 생각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최근 읽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월호에 대해 나온 책 중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만한 이 책은

그 당시 상황과 관련된 자료만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데,

거기 보면 아랫사람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잘 나와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야 할 그 바쁜 순간에 

청와대는-해경 핫라인은 평균 3분 간격으로 울려댔는데,

청와대가 일관되게 요구한 것은 바로 영상이었다.


9시 39분 청와대-해경 핫라인 녹취록

청와대: 현지 영상 있습니까?

해경: 저희들 ENG 영상은 없구요, 자체 내부 모바일 영상은 있는데.

청와대: 그 영상 좀 보내줄 수 있습니까?...지금 VIP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10시 09분

청와대: 현지 영상 받아볼 수 있습니까? 아니면 사진이라도.

해경: 저희들 지금 확인하고 있는데 지금 배가 50명을 (구하고) 이동 중이라서...

청와대:“ 그 사진 한 장이라도 있으면 빨리 보내 주세요.


10시 11분

청와대: 위기관리실입니다. 영상 나온 거 없나요?

해경: 아직 영상 나온 거 없습니다.



10시 15분

청와대: 그 영상 가지고 있는 해경 도착했어요?

해경: 아직 도착 못했습니다.

청와대: 확인해봐요....지금 끊지 말고.


해경은 할 수 없이 세월호 근처에 있던 다른 배, 둘라에이스 호에 전화한다.

해경: 사진을 핸드폰으로 전송해 줄 수 있겠습니까?

둘라에이스 호: 아니 항해 중이라 바쁘니까요. 거 좀 통화하기가 거북스럽네요.

해경: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둘라에이스: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지금 세월호는 침몰 중입니다.


10시 32분

청와대: 영상 중계 배는?

해경: 네 지금 도착은 했는데요, 그게 외부로 송출되는 화면이 아니라서.

청와대: 아이, 그럼 얘기를 똑바로 해야지...

해경: 못하면은...카톡 이런 거로 보낼 수는 있는데.

청와대: 다른 배는? 그 배는 얼마나 얼마나 걸려? 


나중에 국가안보실 1차장 김규현은 국회에서 영상이 필요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들이 현지 상황을 보는 것은 다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영상을 6회에 걸쳐 오구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가 45도 기울었습니다”라고 쓰면 못알아먹을까봐 

사진이나 영상을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바쁜 와중에 해경 핫라인에 대고 10차례나 영상을 요구한 게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실제로 문맹 비슷한 분이라면 최소한 억울하진 않겠지만

<절망은 나를 단련 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명저를 집필한 것에서 보듯

박대통령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언어의 마술사에 가까운 분이셔서, 언젠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이 발언이 장안의 화제가 됐던 건 ‘꿀벌’ 대신 ‘벌꿀’이라고 한 때문인데,

이런 고도의 언어유희는 평상시 문장에 단련돼 있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밖에도 대통령이 언어의 마술사라는 건 여러 발언에서 증명된 바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랫사람들은 대통령을 문맹 취급하고,

직접 쓴 책도 남이 써줬겠거니, 의심한다.

공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고 얘기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대통령이 문맹으로 오해받을 빌미를 여러번 제공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맹 취급을 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화내는 걸 이해해 주자.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대통령을 더 많이 사랑해주자. 

아랫사람들로부터 무시받는 대통령이 기댈 건 국민들의 사랑밖에 없을 테니까. 



* 오랜 기간 글을 못올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기생충열전 2를 쓰고 있었거든요.

1이 잘되서 2를 쓰는 게 아니라 원래 두권으로 낼 예정이었고,

1편에서 나오지 못한 기생충들이 마음껏 활약을 펼칩니다.

책은 다 써서 출판사에 넘겼고요, 5월이나 출간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자주 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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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k 2016.03.24 12:17

    교수님 안녕하셔요~^^
    오랜시간 교수님글 읽으면서 행복해만 하다가
    언제 인사라도 한번 드리렸는데 마침 오늘 댓글 1등? ㅎ
    자주 글 올리신다니 더 기대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기생충서민 2016.03.24 12:59 신고

      오옷...이런 멋진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한달 가량 글을 못올렸는데도 계속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흑흑 열심히 할게요

  • 딸꾹 2016.03.24 22:53

    항상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교수님 글을 보며 느끼는 감사함의 반의 반의 반 만이라도, 저 분..께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빈말이라도, 아마 힘들겠지만 말이죠.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요. 책이 예쁘게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세눈박이욘 2016.03.25 02:23

    아, 대통령이 화가 나 있었군요.
    앞으론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대통령을 나쁜 점을 따르는 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며 곧 국가에 대한 모독이니까요.
    저같은 미개한국민이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게 만들다니......
    고전 속 위인들조차 이끌어기 어려운 삶의 실천을 표정 하나로 깨우쳐주는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 나그네 2016.03.25 16:40

    "화(火)란 무엇인가요?"
    "경쟁심과 거짓과 무지라네" (이사야 11)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中

  • 김경섭 2016.03.25 16:54

    존중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 , 사랑 받고 자라지 않은 사람은 존중 할 줄도 사랑 할 줄도 모른다 고 생각 해요.. 저는 사실 대통령이 되기전에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난 3년간 그녀에 대해 알 게 된것은 독선과 아집이 강하고 설득 하는데 재주가 없으며 남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고 (특히 외신 인터뷰를 보니 영어 실력은 도움을 받으시는게 좋을 듯 하더군요.) 핵심을 꿰뚫기 보다는 두리 뭉실하게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이 정리 해놓으면 내말이 그말 이라고 하시니.. 욕심이 많아서 그자리까지 갔지만 그릇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 이라고 생각 됩니다.

    • 기생충서민 2016.04.06 01:09 신고

      전 박대통령이 자식이 없으니까 비리 이런 것에선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비리가 중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비리 없이도 나라를 망칠 수 있구나....싶다는.ㅠㅠ

  • LIM 2016.03.26 00:03

    쌍판때기 더럽네

  • 대륙횡단 2016.03.26 06:32

    글 감사.

  • 익명 2016.03.26 07:04

    비밀댓글입니다

  • 이환철 2016.03.26 07:24

    서민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교수님 글을 보니 반갑네요.
    본문 처음에 박근혜가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52년 생이고 박정희가 1961년에 쿠데타를 일으켰서 18년간 독재를 하였으니 "대통령의 딸로 18년 간 청와대에서 살다가"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 말대로 우리는 "참 나쁜 대통령"을 가진 것 같습니다. ㅠㅠㅠ

  • 좋은 글 잘봤습니다.. 2016.03.26 12:51

    참 책쓰는거
    참 님다운 책같아요..
    님 자서전 꼭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글을 잘쓰는 양반같은데...
    암튼 좋은정보 고맙습니다.

  • 신통방통 2016.03.27 19:13

    아주 드러운 분을 만난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 Passing man 2016.03.28 10:52

    푸른 지붕 아래 휘황찬란하게 살았지만 아버지는 주야(?)로 엄청 바쁘고... 어머니는 새엄마, 육여사의 소생이 아니니까....집 안 분위기는 냉랭했겠지요....그러니 우리가 이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