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챙겨주세요


“눈 좀 크게 뜨세요.”

건강검진을 받을 때 가장 힘들었던 항목은 바로 안압검사였다. 내 딴엔 최대한으로 눈을 떴는데도 담당 직원이 계속 눈을 크게 뜨라고 윽박지르니, 이만저만 난감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눈이 작은 이들이 늘상 겪는 설움일 뿐이었다. 언젠가 눈 작은 사람끼리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어쩜 그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았는지 신기한 나머지 “너도 그랬구나!”를 연발하며 즐거워한 적 있다.




‘의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 중 단연 돋보인다. 얼마 전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며 어렵게 사는 형님한테 예산을 듬뿍 안겨 준 것도 그렇지만, 대선 때 자신의 방송특보를 지낸 김재철 씨를 MBC 사장으로 임명한다든지,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산하기관 단체장으로 대거 임명하는 등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이들을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님과 비슷한 길을 걸은 사람들을 중용한 것도 현 정부 인사의 특징이어서, 출신대학과 고교는 물론이고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게 요직의 발판이 될 정도다.

오늘 발표된 육군참모총장 내정자도 경북 포항 출신으로 동지상고를 나온 분인데, 이로써 육군과 공군의 참모총장, 수방사령관이 모두 포항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정부에선 “적임자를 찾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인구가 50만 남짓한 포항에 무슨 인재가 그리도 많은지 신통하기만 하다. 심지어 종교가 같다는 것도 요직 등용의 조건이었기에, 고소영 내각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학연.지연.종교, 병역면제 등에서 닮은꼴을 챙겨주는 대통령이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을 챙기는 데 인색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학연이나 종교 등은 따져봐야 하지만, 외모가 비슷한 건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3년 전 이맘때, 대선 결과에 좌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와 닮은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다. 이제 눈 작은 사람들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대통령은 눈이 부리부리한 유인촌 씨를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정운찬 전 총리나 청문회에서 낙마한 김태호 전 총리내정자 등 눈이 큰 사람에 대한 강렬한 선호를 드러냈다. 안그래도 살기가 어려운 게 눈 작은 이들인데, 현 정부의 내각에 그런 이들이 별로 포함되지 않은 건 일종의 배신이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G’였다. 친구들은 날 G 울음소리에 빗대 “찍찍”이라고 불렀다. 현 대통령이 비슷한 동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걸 보면 이것 역시 눈 작은 이들이 겪어야 하는 숙명이리라. 그래서 난 남들이 대통령을 그 동물에 비유할 때 동조하지 않았고, 남들이 다 소녀시대 노래를 좋아해도 난 혼자 반대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눈 작은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일까? 꼭 한 자리를 챙겨주지 않더라도, 눈 작은 사람들을 불러 격려를 한다든지, 눈 작은 이들을 위해 예산을 책정한다든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통령이 된 지도 벌써 3년이 다되어 가고, 이제 남은 임기는 2년이 고작이다. 이왕 의리를 발휘하는 거, 외모적 닮은꼴에도 의리를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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