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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을 때 떠나라 그의 이력서를 본 사람들은 놀라 자빠졌다. 요르단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 친구는 24세의 나이에 내과의와 외과의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그때까지 발표한 논문이 무려 43편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런 화려한 이력서를 손에 쥔 그에게 여기저기서 와달라는 제의가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이름난 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논문은 죄다 남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그는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라크로 도망갔는데, 그 후 종적이 묘연하단다. 에 등장하는 엘리아스 알사브티의 사례다. 1980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사건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사브티가 쓴 방법은 이랬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제목만 바꿔 다른 .. 더보기
연예대상, 방송의 과학화 “어떻게 저자가 스무명이 넘을 수가 있어?” 조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2005년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논문의 공저자는 무려 스물다섯명이었다. “한 사람이 다섯 줄씩만 써도 논문 한 편 되겠다”고 혀를 차는 지인에게 설명을 해줬다. 요즘같이 분업화, 전문화된 시기에 혼자서 논문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특히 자연과학 쪽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연구, 예를 들어 뱀에 사는 기생충으로부터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리한다고 해보자. 우선 아는 분에게 부탁해 뱀을 구해달라고 해야 한다. 뱀이 오면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뱀 백여 마리의 껍질을 나 혼자 다 벗길 수는 없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연구원 두 명을 뽑아 벗기게 한다. 뱀에서 기생충을 골라 내려면 뱀의 근육 .. 더보기
기생충 연구와 4대강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이 탄생한 건 국민의 대부분이 기생충으로 인해 신음하던 1964년. 그 당시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고, 여기저기 기우고 해어진 옷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생충학 강의와 연구는 해야 했는데, 강의야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연구였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고, 실험을 할 장비가 있어야 했으니까. 교수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던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기에,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재를 털어서 연구를 했고, 돈과 장비가 필요한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학은 대변 검사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하신 교수님은 이렇게 날 꼬였지만, 그 시절에 나온 논문들을 보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