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과 사회

코미디 빅리그를 보는 짠함 TV에서 갑자기 사라진 개그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행사 같은 거 뛰겠지”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그게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3년 전 방영된 의 주인공은 김진. 우리가 아는 그 김진이 아닌, 예전에 왕비호(윤형빈)와 함께 ‘마징가송’이란 난해한 개그를 선보였던 무명 개그맨 김진 말이다. 공채 개그맨이란 기쁨은 사라진 지 오래고, 선배의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끼니를 때운다. 개그의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무대에 서지 못하다보니 감각이 떨어졌다는 그의 말을 듣다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공중파의 개그 프로그램이 축소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KBS의 (이하 개콘)는 아직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하지만, 그와 경쟁해야 할 다른 채널의 개그프.. 더보기
아랫것이 문제다 서울시장 선거가 있던 지난 10월, 선관위 홈페이지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해 투표를 방해한 사상 초유의 범죄가 일어났다. 너무 놀란 탓인지 경찰은 수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한 덕분에 결국 범인이 잡혔는데,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인 공모씨가 범인이었다. 사람들은 일개 비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느냐며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결과는 “공씨의 단독범행”이었다. “최구식 의원과 나경원 후보가 친한 사이여서 나 후보를 돕는 일이 최 의원을 돕는 일이라고 판단해 공격을 지시했다”는 게 공씨의 말.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걱정이라던데, 27세밖에 안된 젊은이가 저리도 속이 깊다니 가슴이 뭉클하다. 월급이 200만원 남짓한 공씨가 자기 사.. 더보기
박근혜 특강 감상문 박근혜가 급했나보다. 모든 사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지율 1위의 여유를 만끽하던 그가 갑자기 특강에 나섰으니까.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추월한 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참패한 게 그를 밖으로 불러낸 이유일 거다. 특히 20대의 70%가 박원순을 지지했다는 건 박근혜에게 충격이었을 텐데, 굳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도 20대를 잡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특강은 유력 대선후보이면서 전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박근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대전대 특강을 보면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첫째, 애국의 길. 애국심에 있어서 박근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 공업발전을 위해 여자로서는 드물게 전자공학과를 갔다는 것.. 더보기
한·미 FTA를 반대하려면 “제일 큰 피해자는 불치병 환자입니다. 지금도 허덕허덕하는데 그 약값이 더 올라갑니다. 두 번째 피해자는 우리 제약회사들이에요. 복제약을 쉽게 만들 수 없으니 당연히 피해를 보지요. 세 번째 피해자는 우리 국민 모두입니다. 약값이 올라가니까 당연히 건강보험료도 올라가겠죠. 그러면 우리가 다 피해 보는 일을 왜 하죠? 오로지 미국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을 때 닥쳐올 상황에 대한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말이다. 놀라지 마시라.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요즘이 아닌,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ISD, 즉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대한 우려도 그때부터 나온다. “미국 기업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40건을 제소하였습니다. 한 건당 2조원.. 더보기
폴리페서, 참 애매하죠~잉? 1995년, 서울대 총장이던 이수성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총리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거절했다. 재차 요청이 왔고, 이수성은 또다시 거절했다. 세 번째 부탁을 받았을 땐 “더 이상 사양하는 건 대통령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총리직을 수락하는데, 1년 남짓한 총리 생활 후 그가 보여준 행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대권 후보에 도전했다 당내 경선에서 진 뒤 신한국당을 탈당했고, 지역감정에 올인한 정당이었던 민국당 후보로 총선에 나서기도 했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던 분이었으니, 명예롭게 정년퇴임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造語). 대학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행태를 보임.’ 네이버에 나와 있는 ‘폴리페.. 더보기
‘능력’있는 시형씨 이시형씨를 처음 알게 된 건 2002년 히딩크와 같이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 사진은 곧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히딩크에게 명예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였으니, 아들을 불러 사진을 찍게 한 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소치라는 것. 이씨가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난 것도 도마에 올랐다. 게다가 그가 입은 티셔츠도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것이 아닌, 지금 박지성이 소속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것이었단다. 그때 난 시형씨에게 동정적이었다. 공식 초청된 것도 아닌데 가벼운 옷차림이 특별히 예의에 어긋날 것까진 없고, 맨유 유니폼은 각하가 좋아하는 글로벌 정신의 표상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아직 어린 청년이 그런 비난에 상처를 입고 비뚤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더보기
변호사의 노고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그의 고객은 물난리로 집을 잃은 수재민, 연탄공장 옆에 살다 진폐증에 걸린 시민, 교통사고로 직장을 잃게 된 전화교환원, 성고문을 당한 여대생….” 1990년 43세의 나이로 타계하신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요약한 글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고인이 칭송받는 이유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흐리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변호사도 있기 마련인데,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올해 5월, 남학생 셋이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동영상까지 촬영한 엽기적인 범죄가 일어났다. 그네들이 인간의.. 더보기
더한 놈 제대 후 ‘1박2일’에 합류한 김종민을 보면서 돈 참 쉽게 버는구나 싶었다. 말없이 있다가 웃기만 하면서 직장인 월급의 2~3배를 회당 출연료로 챙기니 말이다. 재치 있는 말로 시청자를 웃겨 달라고 내보냈는데, 되레 자기가 웃고 앉았으니 어이가 없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가 했지만, 1년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그 콘셉트로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게 김종민의 한계인 듯하다. “꼴등인 제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빛나고 돋보이지 않겠어요?”라는 게 그의 말이지만, 그게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엄태웅의 합류는 김종민에 대한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엄태웅과 같이 있으면 김종민이 수다쟁이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게스트로 출연한 성동일이 “‘1.. 더보기
장관 IQ 상한제 필요하다 2011.05.31 한 사내가 친구 애인 샤니를 성폭행한 뒤 목을 졸라 죽였다. 여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사내는 여자를 번쩍 들어 텅 빈 건물의 벽장에 집어넣고 문을 닫은 다음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샤니는 죽은 게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샤니는 벽장에서 나온 뒤 경찰에게 신고했다. 곧 사내에게 경찰이 들이닥쳤다. “샤니라고 알지?” “알지만 최근엔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여자는 네 녀석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하거든?” 경찰은 샤니가 쓴 진술서를 들이밀었다. 사내가 대답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 애가 이걸 썼을 리가 없어요.” 형사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지?” “죽었잖아요.” 범죄에 관한 책 를 읽다가 이런 범죄자들만 있다면 경찰이 참 편하겠단 생각을 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더보기
아프지 맙시다 “감기는 아데노바이러스나 리노바이러스등 수십여종의 바이러스가 단독 또는 혼합해 사계절 내내 감염시키는 것이다. 반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감기와 독감은 다른 것으로 따라서 감기 증상이 심한 것이 독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독감을 심한 감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만, 실제로 이 둘은 다른 병이다. 독감 예방접종을 맞아도 감기에 걸리는 건 그 때문인데, 콧물이 주증상이면 그냥 감기, 겨울철에 발생하면 독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독감은 감기와 달리 고열과 근육통 등이 동반되는 것인데, 폐렴으로 발전하여 죽을 수도 있다. 1919년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적으로 5천만명의 생명을 앗아 갔으니, 이걸 그냥 ‘독한 감기’라고 .. 더보기
벙커를 갖자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했지,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북한의 연평도 폭격 다음날, 청와대의 궁색한 변명을 보면서 의아했다. 대통령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할 말을 여론이 좀 안 좋다고 굳이 부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청와대의 다음 말을 들으니 확전 걱정을 안 한 게 사실인 모양이다. “추가 도발 때는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보라. 이렇게 단호한 대응을 지시한 분이 확전 걱정을 했을 리가 있겠는가?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서 국민을 헷갈리게 한 참모는 당장 잘라야 마땅하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6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기 성능이 좋아진, 전쟁이 곧 잿더미를 의미하는 세상에서, 대통령이 확전에 대한 걱정 없이 오직 단호한.. 더보기
생선회와 어머니 “민아, 시간 있으면 오늘 좀 들릴래?” 어머니가 집에 오라고 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건만, 어머니는 내가 가겠다고 할 때마다 “바쁠 텐데 뭐 하러 오니. 그냥 쉬어라.”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일을 끝내고 느지막한 시간에 벨을 눌렀더니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해삼을 꺼내 내 앞에 펼치신다. “갑자기 먹고 싶어서 샀다. 내가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요즘 통 못 먹어서 그런지 먹고 싶더라.” 어머니와 함께 싱싱한 해삼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4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어머니가 해산물을 좋아하신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으니까.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걸 속속들이 알고 계셨지만, 난 어머니가 뭘 좋아하시는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어머니란 늘 내게 해주기만 하.. 더보기
각하 오 나의 각하 (이 사진은 본문 내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사옵니다.) 피치 못하게 나랑은 성향이 안 맞는 모임에 가게 됐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늦게 온 참석자가 내 옆 사람을 보면서 인사를 한다. “장관님 안녕하셨어요?” ‘장관’이란 말에 깜짝 놀라 옆을 쳐다보니 이럴 수가, 아는 얼굴이다. “P 장관님?” 내 말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장관이 된 건 17년 전이었다. 장관이라면 가문의 영광일 법하지만, 하필 그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많은 공직자들이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이 있어서, 부동산 투기를 해서, 딸을 부정입학시켜서 등등의 이유로 업무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옷을 벗었다. 그 장관 역시 재산공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더보기
안 예쁜 그녀들 내가 못생긴 걸 안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현관 앞의 전신거울 앞에 선 난 내 모습에 깜짝 놀라 뒤를 바라봤다.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모습과 정반대의, 올챙이 눈을 가진 못생긴 아이가 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뒤엔 아무도 없었고, 거울에 비친 상은 바로 나였다. 그 뒤부터 난 되도록 땅을 보고 걸었고, 남들과 어울리기보단 말없이 혼자 앉아 있는 아이가 됐다. 길을 가다가 생판 모르는 애한테 “넌 왜 이렇게 못생겼니?”란 말을 들어야 했고, 고1 때는 “처음에 너 봤을 때 완전히 바보인 줄 알았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인생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앞으로라고 나아질 게 없어 보였기에 난 대충 스무 살 정도까지만 살아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올라가면서 외모는 점점 중요한 .. 더보기
인터넷이 문제다 작년 이맘때쯤 한 여학생이 TV에 나와 ‘키 180센티 이하인 남자는 루저’라고 한 적이 있다. 난리가 났다. 그 여학생의 홈페이지를 테러하는 건 기본이었고, 신상명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 여학생은 학교를 휴학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단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을 돌이켜보면, 그게 과연 두 달여 동안 난리법석을 떨만한 큰일이었는지 의문이다. 발언이 적절치 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스무 살 남짓한, 그것도 키가 170을 넘는 여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한 게 왜 그렇게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숱한 발언들이 별 문제가 안 되는 걸 보면, 감히 여자가.. 더보기
차라리 세습이 낫다 김정일 이후의 북한은 누가 통치할지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 궁금증은 김정은이 공식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풀렸다. 3대째 세습이라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시대에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짓일까? 북한이 갑자기 “다음 후계자는 인민들의 투표로 뽑겠다”고 할 리는 만무했지만, 막상 세습으로 후계자가 결정되고 나니 좀 씁쓸해진다. 하지만 북한에 쏠렸던 눈을 우리나라로 돌리면 우리가 과연 북한을 욕할 수 있는지 의아해진다. 매출액이 우리나라 국가예산을 가볍게 넘어서는 어느 초대형 기업은 세습으로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지만 회사는 점점 잘나가는 중이고, 몇 년 전에는 창업주의 손자에게 회사를 넘기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기도 했다. 북한과 같은 3대째 세습이건만, 세습이라고 그 회.. 더보기
현대판 음서제... '역사 시청각 교육'? “고등학교 때 이렇게 재미있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역사과목을 잘했을 텐데.” 흉노족을 주제로 한 고고학 전문가의 명강의에 감동한 수강자의 말이다. 동감했다. 사람들이 역사에 흥미를 잃는 이유가 재미없게 가르치는 국사선생님 탓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역사라는 게 원래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의자왕이 거느리던 3천궁녀가 낙화암에 뛰어들었다는 걸 책 한 줄로 써놓고 외우라고 하니, 시청각교육에 길들여진 세대라면 지루할 수밖에. 이번에 새로 총리후보가 된 김황식 씨는 시력저하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경주이씨를 비롯해서 국정원장과 전 총리, 집권여당 대표 등 현 집권층에 유난히 병역면제자가 많음에도 또다시 군에 안간 사람을 총리후보로 기용한 것도 사실 조선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의도다. 이란 책을 .. 더보기
한탕주의를 버리자 거의 국민가수 레벨에 오른 모 가수가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케이블 뉴스에서 그는 "내가 1년 넘게 협박을 받았으며, 몇번이나 고소할 생각을 했다."라며 논란이 된 그 여자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행동이 갈피를 잡을 수 없긴 해도, 사건의 발단은 역시 가수인 그의 아들이었고, 젊은 혈기에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여자와 잤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고교 때 영어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남자는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우리반 애를 포함한 우리 학교 학생 세 명이 집단강간 사건으로 붙잡히고 난 뒤 그 선생님은 천장을 보면서 탄식하셨다.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거늘..." 그 가수야 나이도 젊고 한창 그럴 나이니까 그럴 수 있다해도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더보기
5년이면 너무 짧은가요? 계단에서 굴렀다. 그냥 참고 버티려다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니 코뼈랑 손목이 부러졌단다. 기나긴 수술 후 깨어보니 코가 그전보다 더 낮아졌고 오른팔은 깁스를 한 상태였다. 장가도 갔으니 코가 낮은 건 상관없지만 몇 달간 오른팔로 인해 얼마나 불편할지 걱정이었다. 그 걱정은 입원 중에도 현실로 다가왔다. 애들 때문에 아내가 계속 옆에 있을 수가 없어 혼자 밥을 먹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링거줄이 달린 왼손으로 밥을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다 먹고 난 뒤 식판을 반납하는 게 나로선 불가능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야 금방 퇴원하겠지만 거동이 불편한 채 장기 입원해야 하는 분들에게 건강보험공단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도움을 주면 어떨까? 물론 그 사람들을 고용할 만큼 보험공단의 사정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더보기
개 기르지 맙시다 엄마, 아빠, 간식, 빵빵, 친구, 잘했다, 이리 와…. 내가 기르는 강아지가 알아듣는 단어들이다. 개들은 보통 30~70여개의 단어를 알아듣는데, 영화 에 출연한 리트리버 달이는 70개 단어를 듣는단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7살짜리 개는 무려 340개 단어를 알아들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이 정도면 심부름 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개가 인간의 벗이 된 데는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충직성이 있고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흔히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쓰지만, 개와 더불어 생활하다 보면 개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진다. 사람은 월수입과 사는 동네에 따라 상대를 차별하지만, 개는 그 주인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정규직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개들은 주인을 .. 더보기
좌파 박멸의 시대 “기생충은 망국병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슬로건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호환이나 마마도 아니고 암처럼 무서운 병도 아닌 기생충을 왜 망국병이라 규정하고 탄압을 했을까 의문이 간다. 내가 이해를 하건 못하건 우리 정부는 기생충 박멸협회를 만들어 기생충을 없애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한때 70%를 웃돌던 기생충 감염률은 점점 줄어들어 3% 수준에 이르렀고, 지금은 어쩌다 회충을 보면 반갑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70년대 우리 국민이 원하던 그 수준까지 떨어진 거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우리 몸에 갖고 있던 기생충이 없어졌는데 아무런 일이 없을 리는 없다. 2002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소위 선진국.. 더보기
삼겹살을 먹자 “저 소는 성찬이에겐 자식이야.” 영화 에서 가장 이해가 안됐던 대목은 주인공 성찬이 자식처럼 아낀다던 소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최고 요리사를 뽑는 대회에 나간 성찬은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할 소를 찾으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자신이 키우던 소를 잡는다. 요리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주위의 강권으로 출전한 걸 보면 성찬에게 최고의 요리사라는 타이틀이나 우승 상품인 ‘대령숙수의 칼’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그래서 난 성찬이 애써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를 잡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다. “제가 아들 등록금을 대려고 이번에 소를 잡았습니다.” 내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찾아오신 학부형의 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처럼 농촌에 사는 분들에게 소는 자식이라기보다 재산목록 1호다. 그분들은.. 더보기
금자씨의 방귀 내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우수 외국 학술지나 그에 준하는 국내 학술지, 예를 들어 기생충학잡지 같은 곳에 논문을 실어야만 업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업적점수를 못 채우면 승진은 물론 재임용에서도 탈락하므로 앞으로는 좋은 논문이 아니면 써봤자 소용이 없게 되었다. 대체 좋은 논문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봐 여기다 그 비결을 공개한다. 첫째, 제대로 된 실험결과가 있어야 한다. 훌륭한 실험결과만 있으면 좋은 논문을 쓰기가 쉽다.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으니 다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며 골치를 썩이는 게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토끼가 방귀를 뀌었다는 논문을 쓰려면 토끼가 앉았던 자리에서 방귀냄새가 가장 심했고, 소리가 그쪽에서 나는 걸 들었다는 증인이 있고, 토끼 주위의.. 더보기
기생충을 닮은 당신께 “기생충학을 해보지 않겠니?” 졸업 후 뭘 할까 고민하던 본과 4학년 때, 기생충학 교수님의 권유는 그후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 그로부터 19년째, 난 앉으나 서나 기생충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특성에 대해 한번 말해 보겠다. 첫번째, 기생충은 남의 것을 뺏는다. 대부분의 기생충은 작은 창자에 살면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우리가 먹는 밥이 스스로 혹은 가족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것인 데 반해 기생충은 편안히 앉아 음식물을 받아먹는다. 자신이 열심히 벌어 얻은, 게다가 소화하기 좋게 잘 씹기까지 한 고기가 회충한테 간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생충을 퇴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건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남이 발로 뛰어 얻은 .. 더보기
욕먹을 때 떠나라 그의 이력서를 본 사람들은 놀라 자빠졌다. 요르단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 친구는 24세의 나이에 내과의와 외과의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그때까지 발표한 논문이 무려 43편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런 화려한 이력서를 손에 쥔 그에게 여기저기서 와달라는 제의가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이름난 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논문은 죄다 남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그는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라크로 도망갔는데, 그 후 종적이 묘연하단다. 에 등장하는 엘리아스 알사브티의 사례다. 1980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사건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사브티가 쓴 방법은 이랬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제목만 바꿔 다른 .. 더보기
연예대상, 방송의 과학화 “어떻게 저자가 스무명이 넘을 수가 있어?” 조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2005년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논문의 공저자는 무려 스물다섯명이었다. “한 사람이 다섯 줄씩만 써도 논문 한 편 되겠다”고 혀를 차는 지인에게 설명을 해줬다. 요즘같이 분업화, 전문화된 시기에 혼자서 논문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특히 자연과학 쪽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연구, 예를 들어 뱀에 사는 기생충으로부터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리한다고 해보자. 우선 아는 분에게 부탁해 뱀을 구해달라고 해야 한다. 뱀이 오면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뱀 백여 마리의 껍질을 나 혼자 다 벗길 수는 없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연구원 두 명을 뽑아 벗기게 한다. 뱀에서 기생충을 골라 내려면 뱀의 근육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