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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미국은 관대하다 “갑판크기: 축구장 3배. 동력: 부산시 전기사용량과 같음. 20년 동안 연료 안채워도 되는 원자로 2개 달고 다님. 무기: 이지스함 9척, 핵잠수함 4대, 구축함 2대, 호크아이 1기, 호넷 1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 왔던 워싱턴호의 위용이다. 연평도에 총질을 해댄 북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우리 국민들은 미국이 항공모함을 보내준 덕분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워싱턴이 미국의 수도인 걸로 보아 필경 미국이 가장 아끼는 항모를 보내준 게 아닌가 싶다. 더 감동적인 건, 미국이 여러 테러국가와 싸우는 와중에 주력 항공모함을 우리나라에 보내줬다는 사실이다. 카드 돌려막기를 해본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거다. 이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미국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줬다. 한미 FTA.. 더보기
해설과 응원의 차이 지난 토요일, 북한과 한국의 여자축구 준결승을 봤다. 19세와 17세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그러기엔 북한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났다. 슈팅수만 보더라도 10대 26으로 뒤졌는데, 북한 선수의 슛이 세 번이나 골대를 맞추는 등 우리 쪽에 운이 따라줬기에 연장까지 끌고갈 수 있었다. 하지만 허정무 위원의 해설은 듣기에 민망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밀리는 건 실력 탓이 아니라 “당황했”기 때문이라고 시종 일관 말했는데, 경기 내내 당황한다면 그건 실력이 없는 거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전반전에서 유효슈팅수가 0-9로 뒤졌음에도 “좋은 찬스는 우리 쪽이 더 많았어요”라고 하고, 볼 점유율이 49대 51이란 이유로 “대등한 경기를 했다”라는 식의 왜곡도 서슴지 않았.. 더보기
1박2일의 새 멤버는? 1박2일은 내가 즐겨보는 프로의 하나였다. 나름의 개성을 가진 멤버들이 벌이는 일련의 소동이 보고만 있어도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남자의 자격이 끝나면 냉정하게 채널을 돌려 버린다. 요즘의 1박2일에서는 더 이상 예전만큼의 재미를 얻을 수 없어서다. 어느 프로든 2-3년 지나면 식상하기 마련이지만, 1박2일에 대한 내 실망은 그런 차원만은 아니다. 원래 내가 좋아했던 장면은 6명의 멤버들이 팀을 나눠서 벌이는 복불복이었다. 그런데 까나리를 먹는 데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던 김C가 빠지고, 팔꿈치를 혀로 핥을 수 있는 등 나름의 재주가 많은 MC몽도 병역비리 의혹으로 하차해 버렸다. 게다가 김종민의 영입은, 본인에게 미안하지만, 최악이었다.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예능감각을 상실한 .. 더보기
어설픈 유머의 종말 삼십년 전, 유머가 있는 애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가 있었다. 볼품없는 외모에 달리 잘하는 게 없었던 그 아이는 남을 웃길 수만 있다면 왕따 신세에서 벗어나 어여쁜 여학생들과도 놀게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아이는 친구들이 웃기는 말을 할 때마다 교과서 뒤에다 적어 놓았고, 짬이 날 때마다 책 뒤를 보면서 그 말들을 외웠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때 외운 말들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 아이를 불러 야단을 쳤다. “너 요즘 왜 까부냐, 응?” 아이는 자신이 혼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똑같은 말을 했는데 왜 나만 혼나지? 아이는 몰랐다. 유머는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걸. 결국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학생들과 얘기조차 못한 채 졸업했다. 앞에서 .. 더보기
난 오늘 비겁했다 서울에 일이 있어 조금 일찍 올라왔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지하철은 한산했다. 문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는데 방송이 나온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랬다. ‘11일과 12일에 G20이 있다, 그 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 협조를 해야 한다,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으면 지하철 안에 있는 핸드마이크를 들고 신고를 해라.’ 갑자기 내가 G20 행사의 성공을 위해 아무 일도 안했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살폈다. 이럴 수가. 난 너무 놀라서 읽던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지하철 안에는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천지였으니까. 먼저 내 왼쪽 뒤 여자. 날도 풀렸는데 털코트와 털모자를 썼다. 털모자는 이어폰을 숨기기 위함이고, 털코트 아래엔 장총을 숨겼을지 모른다. 여자의 이마에 밴 한방울의 땀은 더워서가 아.. 더보기
드림팀을 만들어 보자 현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설마 했던 4대강은 무서운 속도로 공사가 진척되고 있고, 전세값은 사상 유래없이 올라 안그래도 세금을 덜내던 집주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미네르바씨를 통해 인터넷에는 좋은 글만 써야 한다는 걸 보여줬고, 당분간 통일에 대한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것도 많은 분들을 안심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가끔 욕을 먹는 이유는 일처리에 있어 마무리가 2% 부족하기 때문이다. 박카스를 먹고 빈 용기를 유리통이 아닌 플라스틱 통에 버린 정도의 실수건만, 흠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무슨 큰일이나 되는 양 떠들기 마련이니까. 요즘 계속 청와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무.. 더보기
증오, 사랑, 그리고 숭배 이 동물을 좋아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인지라 어릴 적부터 이 동물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다. 어린 나이에 그 동물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36년생이신 아버지가 그 동물 띠였지만, 그런다고 해서 미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순전히 나라 탓이었다. 당시 정부에선 이 동물이 들끓는 걸 국가적 수치로 여겼기에 심심하면 이 동물을 잡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심지어 이 동물을 잡아가면 고무신을 5원인가를 줬다. 우리가 고양이를 키웠던 것도 사실은 돈을 좀 벌어볼까 할 목적이었건만, 그 고양이 녀석은 우리 형제들의 손등만 할퀴었을 뿐, 신통한 전과는 올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상황이 변한 건 기생충학을 전공하고 난 뒤였다. 기생충을 키우려면 천상 그 .. 더보기
난 코털을 자르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조교였을 때, 조교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모임 장소는 중국집이었는데, 그 자리엔 내가 평소 미녀라고 생각하던 분도 참석했다. 돈은 없었지만 자주 모이는 것도 아니니 탕수육을 약간 시켰고, 뒤이어 식사 주문을 받았다. 20대 한창이던 시절, 소 한 마리를 혼자 먹어도 성이 안차던 그때, 탕수육 몇 점에 내 배가 찰리는 없었다. 다들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키기에 조용히 종업원을 불러 얘기를 했다. “전 자장면 곱빼기인데요, 있다가 저한테 살짝 갖다 주세요.” 식사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종업원이 쟁반에 자장면을 잔뜩 담아 오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곱빼기 어느 분이세요?” 작은 소란이 일었다. ‘누가 곱빼기를?’이라는 표정, 주인공이 나라는 걸 확인하고 난 뒤 놀라는 얼굴들. 그 중엔 그녀.. 더보기
성희롱과 권력 1994년 이후 성희롱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저질러선 안 되는 저급한 범죄가 되었다. 그 전이라고 해서 그게 바람직한 행위는 아니었겠지만, 그게 수천만 원의 돈을 물어줘야 하는 중죄라는 인식이 생긴 건 그 이후였다. 그 전에 자연스럽게 통용됐던 행위들, 즉 여성에게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게 한다든지, 여성을 끈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들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전엔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희롱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상사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 그게 증거가 남는 게 아닌지라 해당 여성이 꽃뱀 취급을 받는 일도 흔히 벌어졌다. 1993년의 우조교가 그랬던 것처럼, 설사 성희롱이 인정된다 해도 오히려 해당 여직원이 회사에서 쫓겨나곤 했다. 성희롱.. 더보기
오해 드립 연구실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연구를 하는 사람과 연구를 뒷받침하는 사람. 전자에는 교수를 비롯한 대학원생 등이 있고, 후자는 세포배양이나 설거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에다 ‘선생’을 붙여 “이선생님” 이런 식으로 불리는 데 반해 후자의 사람들은 그냥 “미자씨” 혹은 “박기사”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연구를 하는 곳이라 그런지 두 계층 사이의 구분은 엄격해, 내가 있던 곳에서는 밥도 같이 안먹는 등 철저한 구별을 했다. 그 실험실에 박기사라고, 아주 오래된 기사 한분이 계셨다. 신분은 기사지만 연구를 좋아해 귀동냥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십년이 되고 이십년간 그렇게 하다보니 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그분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쉽게 말해 웬만한 교수보.. 더보기
창의력 있는 거짓말을 내가 아는 사람 중 조지 워싱턴이란 자가 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워싱턴에게 작은 도끼 한자루를 선물했다. 어린애한테 도끼를 선물하는 아버지의 심리를 우리가 이해하긴 어렵지만, 워싱턴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다 도끼로 베어버렸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아끼던 체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우지끈!” 나중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쓰러진 체리나무를 보고 화가 났다. “누구야?” 워싱턴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나무 한그루를 잃었지만, 정직한 아들을 얻었구나.” 이 이야기에 감화를 받은 나머지 난 아버지가 “계단에 묶어둔 고양이 누가 풀어줬어?”라고 물었을 때 정직하게 앞으로 나서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버지는 곧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셨고, 난 .. 더보기
그 많던 카카오는 어디로 갔을까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애인 사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지만, 애인이 없는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초콜릿을 교환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 덕분에 난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초콜릿을 한 다발씩 받곤 했는데, 그런 내게 2007년 화이트데이는 좀 우울했다. 초콜릿을 못 받아서가 아니었다. 심성이 착한 학교 여직원들이 많은 초콜릿을 안겨주긴 했지만, 문제는 그 초콜릿이 너무 쓰다는 데 있었다. 그들이 준 초콜릿에 다량의 카카오가 함유됐던 것이다. 초콜릿은 단맛에 먹는 건데 쓴 초콜릿이 말이나 되는가? 카카오 함량이 50%인 것은 때린다고 협박하면 먹을 만했지만, 99%를 먹을 바엔 차라리 맞는 게 나을 정도였다. 카카오가 몸에 좋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06년 9월, 스크랜턴대학의 연구자들이 “초콜릿.. 더보기
신뢰받는 의협이 되려면 “이번 「PD수첩」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 내용 중 일부가 의료계의 판단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은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판사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내린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그렇지만, 광우병 파동이 잦아들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성명을 낸다는 게 더 이상했다. 광우병 파동이 전국을 강타한 건 2008년 4월29일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직후였다. 협상을 잘못한 현 정부를 질타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농림수산식품부는 「PD수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년이 넘도록 길고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동안 의사협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우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 더보기
네이처와 PD수첩 “내 꿈은 말이지, ‘네이처’지에 논문을 하나 실어보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적잖이 실망했다. 우리 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의 꿈이 노벨 의학상도 아닌, 학술지에 논문 하나 싣는 거라니.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그분의 꿈이 결코 소박한 게 아니었다는 걸.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됐으니까. 좋은 학술지와 그저 그런 학술지는 인용 빈도에 따라 나뉜다. 전자에 실린 논문은 널리 읽히고 오래도록 다른 학자들에게 회자되는 반면, 후자의 논문은 저자마저도 읽지 않는다. 네이처는 그 ‘좋은 학술지’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거기 실린 모든 말은 그 자체가 진리고 빛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누군가가 “저 사람 네이처야”(네이처에 논문을 실어봤.. 더보기
기생충 연구와 4대강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이 탄생한 건 국민의 대부분이 기생충으로 인해 신음하던 1964년. 그 당시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고, 여기저기 기우고 해어진 옷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생충학 강의와 연구는 해야 했는데, 강의야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연구였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고, 실험을 할 장비가 있어야 했으니까. 교수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던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기에,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재를 털어서 연구를 했고, 돈과 장비가 필요한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학은 대변 검사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하신 교수님은 이렇게 날 꼬였지만, 그 시절에 나온 논문들을 보고 .. 더보기
신종플루가 남긴 것 2009년 하반기, 우리나라를 지배한 단어는 ‘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였다.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신종플루의 공포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이름을 거창하게 붙여서 그렇지, 신종플루도 사실은 우리가 평소 알고 지낸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1918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스페인독감과 같은 H1N1 타입이기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신종플루가 제2의 스페인독감이 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신종플루의 독성이 스페인독감에 비해 훨씬 약해 보이고, 타미플루라는 약이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의 감염자 대비 사망률이 1.2%라고 발표한 바 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사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3%다. 8월15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