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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최악의 개각’은? 국정 현안에 대해 야당에서 내놓는 논평을 보면 과장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두 달 전 민주노동당이 했던 말을 보자. “민주노동당 당사를 압수수색하려고 했던 일은 군사정권시절에도 없던 공당에 대한 폭거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좀 심하다는 일들이라봤자 군사정권 치하에선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던” 운운은 과장일 수 있다. 장관을 임명할 때마다 ‘최악’이란 논평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이번 8·8 개각에 대해 민주당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이번 개각은 한마디로 MB 친위부대를 전면에 내세운, 국민무시 역대 최악의 개각이다.” 여기서 ‘역대 최악’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각이 국민의 여론을 거스르는 오만한 인사라는 점에는 전적으로 .. 더보기
개 기르지 맙시다 엄마, 아빠, 간식, 빵빵, 친구, 잘했다, 이리 와…. 내가 기르는 강아지가 알아듣는 단어들이다. 개들은 보통 30~70여개의 단어를 알아듣는데, 영화 에 출연한 리트리버 달이는 70개 단어를 듣는단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7살짜리 개는 무려 340개 단어를 알아들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이 정도면 심부름 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개가 인간의 벗이 된 데는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충직성이 있고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흔히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쓰지만, 개와 더불어 생활하다 보면 개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진다. 사람은 월수입과 사는 동네에 따라 상대를 차별하지만, 개는 그 주인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정규직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개들은 주인을 .. 더보기
전작권 연기가 ‘자주’인 이유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란 단어가 없었던 데서 보듯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단어의 뜻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떡고물’로, 원래는 떡에 붙어 있던 가루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일을 성사시켰다는 이유로 받아 처먹는 돈’이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의미가 변한 단어가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사회환원’을 보자.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사회환원이라고 하면 할머니가 평생 김밥을 팔아서 모은 돈을 대학에 쾌척한다든지, 불우이웃돕기에 전 재산을 내놓는다든지 하는 일을 의미했다. 하지만 요즘은 ‘재단을 만들어 일단 자기 친구를 이사장으로 앉힌 뒤 나중에 회수해 자손 대대로 .. 더보기
공무원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방법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사찰해 물의를 빚고 있다.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게재했다는 게 사찰 이유인데, 민간인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굳이 나선 이유에 대해 이인규 지원관은 “민간인인 줄 몰랐다. 그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조사를 시작한 지 두 달 후에야 알았다”고 했다. 여론은 “그게 말이 되느냐”고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건 충분히 말이 된다. 1996년 5월부터 3년간 지금은 질병관리본부로 이름이 바뀐 국립보건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적이 있다.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보건원에서 근무하는 전 직원은 이른바 공무원이다. 같은 울타리 안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난 수백명에 달하는 공무원들 틈바구니에서 살았던 거다. 일가친척은 .. 더보기
초등 교육의 필요성 조교 시절, 점심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다. 교수님이 물으신다.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탕수육’이라고 말하려는데 교수님이 한마디 덧붙인다. “난 자장면 시킬 테니까 너희들은 마음대로 골라.”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저도 자장면을 먹겠습니다.” 난 손을 들고 말했다. “저…곱빼기 먹어도 됩니까?” 아랫사람은 늘 윗사람의 심기를 살피게 마련. 자장면을 드시겠다는 교수님의 첨언은 이어지는 “마음대로 골라”와 무관하게 내 선택을 제한했다. “수직으로 누르는 단위 면적에서의 힘의 단위”를 압력이라고 한다면, 교수님의 말씀은 조교인 내게 압력이었다. 점심 한 끼야 자장면을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압력이다. 예를 들어 신영철 대법관을 보자. 그는 법원장.. 더보기
월드컵이 무섭다 2004년 3월12일, 대한민국 제16대 국회는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선거법 위반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대통령을 우습게 본 국회의 객기였다는 게 사실에 더 가까웠다. 금요일이던 그날 저녁,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회 앞에 모여 그런 짓을 저지른 국회를 규탄했다. 이렇게 점화된 촛불은 다음날 광화문으로 이어졌고, 한 달 후 총선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자유주의 세력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줬다. 2009년 5월29일,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예정돼 있었다. 김용철이 쓴 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상식대로라면 대법관들이 영결식 장례위원이므로 선고를 연기하는 게 .. 더보기
좌파 박멸의 시대 “기생충은 망국병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슬로건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호환이나 마마도 아니고 암처럼 무서운 병도 아닌 기생충을 왜 망국병이라 규정하고 탄압을 했을까 의문이 간다. 내가 이해를 하건 못하건 우리 정부는 기생충 박멸협회를 만들어 기생충을 없애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한때 70%를 웃돌던 기생충 감염률은 점점 줄어들어 3% 수준에 이르렀고, 지금은 어쩌다 회충을 보면 반갑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70년대 우리 국민이 원하던 그 수준까지 떨어진 거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우리 몸에 갖고 있던 기생충이 없어졌는데 아무런 일이 없을 리는 없다. 2002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소위 선진국.. 더보기
옜다, 관심! “영양가가 없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맹활약 중인 김태균 선수가 홈런 두 방을 치던 날, 네이버 기사에는 영양가 타령을 하는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첫번째 홈런이 1 대 2로 뒤진 상황에서 나온 역전 3점홈런이고, 두 번째 홈런은 4 대 4 동점에서 친 결승 홈런이건만, 영양가 운운하는 댓글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른바 ‘영양사’라 불리는 이 네티즌들이 그런 글을 올리는 건 관심을 받기 위함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는 그들로서는 자신이 쓴 글의 조회수가 높아지고 많은 답변이 달리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설령 그게 “네 인생이 불쌍하다” “너희 어머니도 너 낳고 미역국 드셨겠지?” 같은 비난일지라도, 무관심보다는 미움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 더보기
삼겹살을 먹자 “저 소는 성찬이에겐 자식이야.” 영화 에서 가장 이해가 안됐던 대목은 주인공 성찬이 자식처럼 아낀다던 소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최고 요리사를 뽑는 대회에 나간 성찬은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할 소를 찾으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자신이 키우던 소를 잡는다. 요리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주위의 강권으로 출전한 걸 보면 성찬에게 최고의 요리사라는 타이틀이나 우승 상품인 ‘대령숙수의 칼’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그래서 난 성찬이 애써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를 잡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다. “제가 아들 등록금을 대려고 이번에 소를 잡았습니다.” 내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찾아오신 학부형의 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처럼 농촌에 사는 분들에게 소는 자식이라기보다 재산목록 1호다. 그분들은.. 더보기
당신 탓 아니에요, 병 때문이에요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대개 65세 이후에 발병하지만 그 이전에도 생길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초기 증상이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오래된 기억도 사라진다. 기억뿐 아니라 신체 기능도 떨어져, 알츠하이머병이 진단된 이후 기대수명은 7년 정도라고 한다. 뇌가 위축되거나 반점이 관찰되고,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인 해마의 손상이 보고되었을 뿐, 어떤 기전에 의해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아직 모르고, 그러다보니 특별한 치료책도 없는 실정이다. 은 알츠하이머병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사에키는 광고회사 임원으로, 일을 하는 데 늘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러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바이어와의 만남에 왜 참석지 않았느냐는 것. 깜짝 놀라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과연 그랬.. 더보기
금자씨의 방귀 내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우수 외국 학술지나 그에 준하는 국내 학술지, 예를 들어 기생충학잡지 같은 곳에 논문을 실어야만 업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업적점수를 못 채우면 승진은 물론 재임용에서도 탈락하므로 앞으로는 좋은 논문이 아니면 써봤자 소용이 없게 되었다. 대체 좋은 논문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을까봐 여기다 그 비결을 공개한다. 첫째, 제대로 된 실험결과가 있어야 한다. 훌륭한 실험결과만 있으면 좋은 논문을 쓰기가 쉽다.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으니 다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며 골치를 썩이는 게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토끼가 방귀를 뀌었다는 논문을 쓰려면 토끼가 앉았던 자리에서 방귀냄새가 가장 심했고, 소리가 그쪽에서 나는 걸 들었다는 증인이 있고, 토끼 주위의.. 더보기
그 많던 카카오는 어디로 갔을까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애인 사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지만, 애인이 없는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초콜릿을 교환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 덕분에 난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초콜릿을 한 다발씩 받곤 했는데, 그런 내게 2007년 화이트데이는 좀 우울했다. 초콜릿을 못 받아서가 아니었다. 심성이 착한 학교 여직원들이 많은 초콜릿을 안겨주긴 했지만, 문제는 그 초콜릿이 너무 쓰다는 데 있었다. 그들이 준 초콜릿에 다량의 카카오가 함유됐던 것이다. 초콜릿은 단맛에 먹는 건데 쓴 초콜릿이 말이나 되는가? 카카오 함량이 50%인 것은 때린다고 협박하면 먹을 만했지만, 99%를 먹을 바엔 차라리 맞는 게 나을 정도였다. 카카오가 몸에 좋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06년 9월, 스크랜턴대학의 연구자들이 “초콜릿.. 더보기
신뢰받는 의협이 되려면 “이번 「PD수첩」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 내용 중 일부가 의료계의 판단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은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판사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내린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그렇지만, 광우병 파동이 잦아들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성명을 낸다는 게 더 이상했다. 광우병 파동이 전국을 강타한 건 2008년 4월29일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직후였다. 협상을 잘못한 현 정부를 질타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농림수산식품부는 「PD수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년이 넘도록 길고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동안 의사협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우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 더보기
네이처와 PD수첩 “내 꿈은 말이지, ‘네이처’지에 논문을 하나 실어보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적잖이 실망했다. 우리 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의 꿈이 노벨 의학상도 아닌, 학술지에 논문 하나 싣는 거라니.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그분의 꿈이 결코 소박한 게 아니었다는 걸.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됐으니까. 좋은 학술지와 그저 그런 학술지는 인용 빈도에 따라 나뉜다. 전자에 실린 논문은 널리 읽히고 오래도록 다른 학자들에게 회자되는 반면, 후자의 논문은 저자마저도 읽지 않는다. 네이처는 그 ‘좋은 학술지’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거기 실린 모든 말은 그 자체가 진리고 빛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누군가가 “저 사람 네이처야”(네이처에 논문을 실어봤.. 더보기
기생충을 닮은 당신께 “기생충학을 해보지 않겠니?” 졸업 후 뭘 할까 고민하던 본과 4학년 때, 기생충학 교수님의 권유는 그후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 그로부터 19년째, 난 앉으나 서나 기생충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특성에 대해 한번 말해 보겠다. 첫번째, 기생충은 남의 것을 뺏는다. 대부분의 기생충은 작은 창자에 살면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우리가 먹는 밥이 스스로 혹은 가족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것인 데 반해 기생충은 편안히 앉아 음식물을 받아먹는다. 자신이 열심히 벌어 얻은, 게다가 소화하기 좋게 잘 씹기까지 한 고기가 회충한테 간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생충을 퇴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건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남이 발로 뛰어 얻은 .. 더보기
욕먹을 때 떠나라 그의 이력서를 본 사람들은 놀라 자빠졌다. 요르단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 친구는 24세의 나이에 내과의와 외과의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그때까지 발표한 논문이 무려 43편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런 화려한 이력서를 손에 쥔 그에게 여기저기서 와달라는 제의가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이름난 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논문은 죄다 남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그는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라크로 도망갔는데, 그 후 종적이 묘연하단다. 에 등장하는 엘리아스 알사브티의 사례다. 1980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사건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사브티가 쓴 방법은 이랬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제목만 바꿔 다른 .. 더보기
연예대상, 방송의 과학화 “어떻게 저자가 스무명이 넘을 수가 있어?” 조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2005년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논문의 공저자는 무려 스물다섯명이었다. “한 사람이 다섯 줄씩만 써도 논문 한 편 되겠다”고 혀를 차는 지인에게 설명을 해줬다. 요즘같이 분업화, 전문화된 시기에 혼자서 논문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특히 자연과학 쪽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연구, 예를 들어 뱀에 사는 기생충으로부터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리한다고 해보자. 우선 아는 분에게 부탁해 뱀을 구해달라고 해야 한다. 뱀이 오면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뱀 백여 마리의 껍질을 나 혼자 다 벗길 수는 없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연구원 두 명을 뽑아 벗기게 한다. 뱀에서 기생충을 골라 내려면 뱀의 근육 .. 더보기
기생충 연구와 4대강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이 탄생한 건 국민의 대부분이 기생충으로 인해 신음하던 1964년. 그 당시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고, 여기저기 기우고 해어진 옷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생충학 강의와 연구는 해야 했는데, 강의야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연구였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고, 실험을 할 장비가 있어야 했으니까. 교수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던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기에,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재를 털어서 연구를 했고, 돈과 장비가 필요한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학은 대변 검사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하신 교수님은 이렇게 날 꼬였지만, 그 시절에 나온 논문들을 보고 .. 더보기
신종플루가 남긴 것 2009년 하반기, 우리나라를 지배한 단어는 ‘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였다.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신종플루의 공포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이름을 거창하게 붙여서 그렇지, 신종플루도 사실은 우리가 평소 알고 지낸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1918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스페인독감과 같은 H1N1 타입이기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신종플루가 제2의 스페인독감이 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신종플루의 독성이 스페인독감에 비해 훨씬 약해 보이고, 타미플루라는 약이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의 감염자 대비 사망률이 1.2%라고 발표한 바 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사망률은 그보다 더 낮은 0.03%다. 8월15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