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샘암이 수상하다



기생충학을 전공한 건 1992년부터다. 그 말은 내가 임상의학을 떠난 지 20년이 됐으며, 내가 아는 의학적 지식이란 게 거의 일반인 수준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질병에 대해 내게 문의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데, 요즘 들어선 그 주제가 거의 갑상샘암(갑상선암)이다. 3㎜ 크기의 갑상샘암이 발견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조직검사를 했는데 세포가 정상이 아니란다, 등등의 질문을 최근 2년간 20차례도 넘게 받았다. 의사면허를 받은 이후 갑상샘암이 이처럼 화두가 된 적은 없다는 걸 상기해보면 지금의 갑상샘암 붐은 좀 이례적이다.




기사에 의하면 지난 8년간 갑상샘암은 남자에게 6배, 여자에게 5배 증가했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2년 전 미국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바 있다.
“최근 10년간 가장 빨리 증가하는 암이 갑상샘암이라는 건 의학계의 미스터리다.” 1997년 이후 해마다 6.5%씩 증가하고 있다니, 신기할 법도 하다. 이럴 때 생각할 수 있는 게 실제 빈도가 증가하는 경우. 환경유해물질이 증가하거나 방사선 피폭량이 X-레이의 10배가 넘는 CT가 대중화된 것 등이 암 발생률을 높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설로는 유독 갑상샘암만 증가된 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진단기술의 발전이다. 대장내시경을 받고 용종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진단법이 도입되면 아무래도 해당 질환 발견이 증가하게 마련이니까. 갑상샘암의 증가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초음파로 갑상샘암을 진단하는 방법이 널리 퍼지면서 1㎝ 이하의 암 발견이 크게 늘었으니 말이다.
 


 


크기가 작은 암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건 환영할 일이다. 암이 더 진행되고 난 뒤 치료를 받으려면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는가? 문제는 갑상샘암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 갑상샘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두형의 경우 전이가 잘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증상도 없는 경우가 많아, 다른 병으로 죽은 환자를 부검하면서 갑상샘암을 발견하는 일도 흔할 정도란다.
한 학자에 의하면 부검 환자의 36%가 갑상샘암을 한 개 이상 갖고 있었음에도 생전에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하니, 암에 대한 기존 통념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술 더 떠서 그 학자는 “내가 마음먹고 갑상샘을 뒤졌다면 모든 사람한테서 갑상샘암을 찾아냈을 것”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갑상샘암의 발생 빈도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갑상샘암으로 죽는 사람의 수가 10만명당 0.5명으로 과거와 전혀 차이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갑상샘암은 대개 수술로 치료하며, 이 경우 갑상샘 조직을 모두 떼어내는 게 일반적이다. 갑상샘이 우리 몸에서 중요한 호르몬을 분비하므로 수술 후엔 갑상샘 호르몬을 평생 먹어줘야 하는 건 이 수술의 가장 큰 부작용. 유방암이나 대장암처럼 위험한 질병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작용이지만,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림설명: 갑상샘암의 빈도(Incidence)는 크게 증가했지만 사망률(Mortality)은 그대로다


지난달 열린 건강보험공단 세미나에서 갑상샘암의 초음파 검진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립암센터 박종혁 과장은 “갑상샘암의 조기 검진은 이득보다는 손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 갑상샘암의 경우엔 예후가 좋지 않아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갑상샘암 관리는 아무래도 과잉인 듯하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모른 채 살아도 괜찮은 병도 있게 마련이다. 미국 의학회지(JAMA)에 실린 갑상샘암 관련 논문은 이렇게 끝난다. “1㎝ 미만의 유두형 갑상샘암은 정상 소견으로 분류되도록 해야 한다.”

 

그림설명: 증가한 암의 대부분은 유두상(papillary) 갑상샘암이고 (왼쪽그림), 크기가 작은 암의 빈도가 크게 늘었다 (오른쪽 그림)


* 진작부터 갑상샘암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쓰게 된 건 그래도 공부를 좀 하고 써야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좋은 논문을 발견해 거의 번역만 한 수준의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논문의 출처는 다음과 같으며, 이 논문이 실린 JAMA라는 학술지는 SCI 학술지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속한다.
 Increaseing incidence of thyroid cancer in the United States, 1973-2002.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 2006; 2164-2167.

* 의사들 중에 이 글을 읽고 항의를 하는 분이 계시겠다 싶어 열명이 넘는 의사들에게 이 글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다행히 그들 모두 내 취지에 동의했다. "갑상샘암 많아진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라고 해준 분도 있었다.  물론 문제가 될 경우 내 변호를 해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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