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정승일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다가 충격적인 구절을 접했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성향이 농후한 다보스 포럼에서 조사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설문조사에서

매년 1-5등을 차지하는 게 우연이 아니에요.

복지국가의 특징 중 하나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겁니다."(336쪽)

한경 논설위원 김정호는 "핀란드를 알고나 베끼겠다는 건지"라는 칼럼(2012/4/5)에서

핀란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며,

다보스포럼 역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고 반박하지만,

이건 복지에 대한 그의 알레르기 반응이 도진 결과인 듯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이 나라들은 도대체 기업에 얼마나 퍼주기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 상위권을 차지하는가였다.

 

 

작년 11월, 우면산터널을 통과하는 도로의 통행료가 500원이 올랐다.

1.7킬로 거리에 2천원을 내는 것도 바가지를 쓰는 느낌인데 거기서 더 올렸으니 대단하단 말이 절로 나온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터널의 주인공은 바로 매쿼리,

각하의 형님의 아들이 관계된 그 회사다.

통행료를 내려 더 많은 차가 다니도록 하는 게 상식적이지만, 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왜? 차가 덜 다니면 그만큼의 손해를 서울시가 보전해 주도록 계약을 했으니까.

예를 들어 2011년 그 터널을 이용하는 차량을 4만대로 예측했는데

실제로 다닌 차는 27,000대 뿐, 그렇다면 모자라는 1만3천대 곱하기 2천원을

서울시가 물어준다.

차가 덜 다니면 도로보수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 매쿼리 입장에선

통행료를 올리면 올릴수록 더 좋은 거다.

이런 식으로 지난 8년간 서울시가 매쿼리에 물어준 돈은 물경 520억,

게다가 매쿼리가 가진 게 우면산터널만은 아니다.

내가 출장 다닐 때 이용하는, 그 통행료 비싼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비롯해

인천공항고속도로 등 좀 비싸다 싶은 곳은 죄다 매쿼리 소유다.

그러니까 매쿼리는 얘네들은 대체 그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쓸까 싶은,

내 돈도 아닌데 괜시리 걱정이 될만큼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지난 5월 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9호선과 KTX는 다르다는 거짓말'(오건호)을 보자.

그 칼럼에 따르면 지하철 9호선은 작년 한 해 동안 467억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 적자의 대부분(461억)이 바로 이자지출,

다시 말해 그 기업은 고금리 빚으로 지하철 민자사업에 뛰어든 거였다.

놀라운 건 그 기업에 돈을 빌려준 회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

자기가 자기한테 돈을 빌려주고 자기한테서 이자를 받으면

서울시가 그 이자만큼을 보전해주니, 이것 숫제 땅 짚고 헤엄치기다.

그 회사가 지하철 요금을 와장창 올리려고 하는 것도

우면산터널에서 보듯 이런 식의 장사에 재미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짐작했겠지만, 지하철 9호선을 갖고 있는 회사도 위에서 말한 매쿼리,

기업이 돈 벌기에 한국만큼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것도 부족해서 현 정부는 인천공항을 민영화하려고 애를 썼다.

민영화의 표면적 이유는 선진 기술을 배운다는 거지만,

세계 제일의 공항이라 다른 나라에서 배우러 온다는 인천공항이 새삼 뭘 또 배우겠는가?

실제 이유는 2011년에도 3천억 이상의 흑자를 내는 등

6년 연속 돈을 벌어준 인천공항을 정부 혼자 갖고 있기가 미안해서다.

우리는 좋은 게 있으면 우선적으로 기업에 돌리는 기업친화형 대통령을 모시고 있으니까.

아쉽게도 일부 좌빨들, 그러니까 기업이 잘되는 꼴을 보지 않으려는 좌빨들 때문에

인천공항 민영화가 무산되고 말았는데,

그래선 안된다고, 기업들에게 뭔가를 줘야 한다고 열심히 추진 중인 게

바로 KTX 민영화다.

철도공사 중 수익이 나는 유일한 업체가 바로 KTX라는데,

콩 한쪽도 기업과 나눠 먹으려는 각하의 친기업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살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되니까.

재벌에 한없이 관대한 것 역시 각하의 친기업 정신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설문에서 5위 안에 들지 못할까?

한경 논설위원님 말씀대로 다보스 포럼이 공신력도 없는 쓰레기라고 쳐도,

블룸버그 통신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29위로 처진 건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홍콩이 1위고 네덜란드, 미국, 영국, 호주가 상위권을 차지했다는데,

이들 나라들은 우리나라와 차원이 다를 정도로 기업에 퍼주는 모양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많은 외국기업이 들어오고,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우리나라가 더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한다.

친기업 정신의 총아인 각하의 임기가 얼마 안남은 게 갑자기 아쉬워지는데,

혹시 각하가 물러난다 해도 그 정신은 계승돼야 한다.

공기업 중 쥐꼬리만큼이라도 흑자가 나는 것들은 죄다 기업에 팔고,

남대문과 박물관, 진돗개 등 돈이 될만한 것도 모조리 기업에 팔아치우자.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7% 성장, 국민소득 4만불, 세계 7대 강국이 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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