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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사회

국토부의 무릎반사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어떻게 될까? ‘아프다’라고 할 분이 계시겠지만, 원하는 정답은 발이 위로 올라간다, 즉 ‘무릎이 펴진다’다.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무릎반사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며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해서 ‘무조건반사’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조건반사는 특정 조건을 경험한 사람만이 보이는 반응으로,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외삼촌이 집에 올 때마다 조카에게 용돈을 준다면, ‘외삼촌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조카는 가슴이 뛰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며, 그 돈으로 뭘 살 것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그런데 조건이냐 무조건이냐가 실제 세계에선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대통령 각하의 숙원사업인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기관은 4대강 사업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법조계를 보자. 5000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니만큼 땅을 파면 문화재가 묻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선 문화재가 나오면 일정 기간 공사를 중단한 채 문화재가 얼마나 묻혀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소위 매장문화재보호법이다. 



 하지만 무리한 공사로 인해 마애보살좌상이 박살났고,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된 합천보 등에서는 아예 문화재 조사를 시행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 밖에 하천법이나 환경영향평가법 등을 위반한 사례도 있단다. 하기야, 속도전을 표방한 4대강 공사에서 그런 법규 따위에 일일이 얽매여서야 어느 세월에 마무리를 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법조계는 4대강 공사와 관련된 소송에서 번번이 국가의 손을 들어줬는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지 않다든지 법 규정대로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피고가 4대강 사업이 되면 무조건 무죄를 선언하는 재판부의 태도가 거의 무릎반사 수준이라, 이게 법조인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조건반사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국토해양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4대강 사업이 홍수와 가뭄을 모두 다스리겠다는 취지였으니, 피해가 있으면 4대강 공사가 언급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을 하기 전보다 피해규모가 더 커졌다면 4대강 공사에 원인을 돌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국토부는 4대강 사업 얘기만 나오면 즉각적인 반박을 해댄다. 홍수가 나면 “4대강 사업 탓은 아니다”라고 하고, 104년 만의 큰 가뭄이 나도 “4대강 사업 탓은 아니다”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이니만큼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조사를 해보고 결과를 발표해야 할 텐데, 어쩜 그렇게 초스피드로 반박을 하는지, 이건 망치로 무릎을 때리기도 전에 무릎을 펴는 수준이다. 압권은 공사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피해를 입힌 녹조현상. 전문가들의 모임인 대한하천학회는 그 원인을 4대강 공사로 돌렸다. 


한강 녹조 증식 (경향신문DB)



비단 이분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번 녹조현상은 4대강의 보로 인해 유속이 느려져 생겼다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4대강 사업이 홍수와 가뭄을 훌륭하게 해결했다”는 대통령의 말이 맞는다면, 그깟 녹조 정도야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녹조현상이 4대강 사업과 관계없다고 반박을 하는데, 너무 그러니까 갑자기 실험을 해보고 싶어진다. 국토부 관계자를 앉혀두고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우리나라 공기가 맑아졌다”처럼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 머릿속에 각인된 반박 DNA 때문에 “공기가 맑아진 것은 4대강 사업 때문이 아니다”라고 즉각 반박하는 국토부 관계자의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환경부가 빠질 수는 없다. 원래 환경부는 환경을 지키라고 만든 곳일진대, 녹조현상의 원인이 가뭄 때문이라는 등 4대강 사업 변호를 일삼는 중인데, 최근 빗물요금제가 논란이 됐다. 20여조원을 써서 4대강 사업을 벌였는데 수질이 오염되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니 새로 세금을 만들자는 취지. 위에서 말한 것처럼 4대강 사업의 긍정적 기능이 많다면, 세금을 더 내는 건 국민이 당연히 감당할 몫이리라. 그럼에도 환경부는 “인구 증가가 원인일 뿐 빗물오염요금제는 4대강 사업과 관계없다”고 말한다. 최근에 인구가 줄어서 문제라더니 웬 인구 증가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심지어 4대강 사업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가 줄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도 다 줄고 있다”고 했다니, 이게 무릎반사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국가기관들이 무조건반사만 일삼지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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