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할 걸 그랬다

아내한테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러 가자고 했더니 아내가 이런다.

“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왜?”

“집에 있잖아.”

엊그젠 원숭이가 앉아 있는 <시네 21> 표지를 보고 이런 말도 했다.

“여보는 왜 여기 앉아 있어?”


살아오면서 워낙 심한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젠 이런 유의 농담에 마음이 다치는 일은 전혀 없다.

어릴 적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너처럼 못생긴 애는 처음 본다”는 말을 들었고,

고1 땐 우리반 깡패 하나가 “널 처음 봤을 때 내가 꼴등은 안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라고 하기도 했다.

미팅 때 여자애들한테 당한 수모도 만만치 않았으니,

더 이상 상처받을 가슴이 남아있진 않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못생겼다는 콤플렉스가 날 지배했는데,

다른 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걸을 때 땅만 보고 걷게 된 것도 그 시절의 유산,

하지만 이게 내가 평생 더불어 살아가야 할 얼굴이란 걸 받아들이고 나니

내 얼굴이 좀 사랑스러워졌고,

이젠 그런 시선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가끔씩은 날더러 “귀엽게 생겼다”는 특이한 분도 있고 말이다.



지난주, 의대 졸업 20주년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20년간 얼굴이 가장 안 변한 친구” 경연대회에서

공동 1등을 해서 5만원짜리 상품권을 탔다.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하는 친구가 심사를 했으니 그래도 공정한 심사였을 텐데,

상품권을 탄 건 좋았지만 20년간 줄곧 못생겨왔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럽다.

그러니까 10년쯤 전, 청담동에서 성형외과를 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며 이런 말을 했다.

“넌 성형만 하면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 있어. 공짜로 해줄테니

비포& 애프터 사진만 걸어놓게 해줘.“

공짜로 얼굴을 고쳐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건 여러 번이지만,

솔직히 그때는 마음이 좀 움직였다.

그때 난 혼자였고, 이 얼굴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좀 갑갑했던 터였다.

성형을 하겠단 마음이 절반을 넘어섰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대부분이 “제발 참아줘” “넌 그대로가 좋아”였다.

평소엔 고집 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하필이면 그땐 사람들 말을 듣고

얼굴에 칼을 대는 걸 포기했다.

뭐, 연예인급 미모를 지닌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얼굴을 조금만 손봤다면 그 후의 인생을 좀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래와 같이 말이다 (어느 분이 만들어서 올려 주셨다^^)